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92년부터 NBA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두 번 꼴로 MSG에서 경기를 보기 시작한 것도 이 때입니다. 친구들과 미니 농구골대에서 농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농구 규칙을 배웠고, 그 때 처음으로 닉스의 경기를 보러 가서 패트릭 유잉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그를 처음 본 순간 '무슨 저렇게 큰 사람도 있다냐....' 하는 생각에 입이 떡 벌어졌지만, 산악같이 버티면서 골밑으로 돌진하는 상대편 가드들을 몽땅 시원하게 발라버리는 그의 무쇠같은 모습에 매료되어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용돈 받는 것을 다 포기하고, 간식을 친구 것을 얻어먹으면서, 단식 투쟁까지 해가면서 악착같이 농구 경기를 보러 다녔습니다. ^^; 91년에는 파이널만 봤지만, 워낙에 어렸던 나이인데다가 농구를 전혀 알지 못했고 뉴욕 닉스에 대해 아는 것도 없어서 91년에 대해서는 다른 회원 분들과 마찬가지로 얻어듣고 본 것에만 의존합니다.
여튼, 제가 보고 느낀대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
1.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조영서님께서 댓글로 거의 다 해버리셔서 별로 할 말이 없어지네요. ^^;
말씀하신대로 92년 불스보다 93 불스가 모든 면에서 반 단계쯤 더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었습니다. 조던은 93년에는 거의 초절정 수퍼맨모드로 들어서면서 인간이길 포기한 모습을 보이며 파이널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고, 무엇보다 피펜의 급성장과 호레이스 그랜트의 포스트 무브의 개발이 강력한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핵심으로 굳어집니다. 제 견해로는 불스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모든 조건이 최적이었던 93년이 제일 이상적이었으며 제일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92년 불스와 93 불스는 무려 10승이나 떨어진 승수 차이를 보입니다. 조던의 결장이 있었지만 그것이 큰 변수가 된 것 같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반드시 해야 한다' 라는 의지의 결여가 아닌가 싶습니다. 91년에는 말 그대로 불스의 전체 멤버가 우승만을 위해 죽을 힘을 다 했습니다. 그 칼날같이 날카로운 투지에 결국 매직이 이끄는 레이커스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이었구요. 그렇게 감격의 첫번째 우승을 이룬 후, 불스는 또다른 과제에 봉착합니다. 스스로의 위치를 re-establish. 즉, 디펜딩 챔피언으로 거듭나면서 불스가 '도전'을 받아 그 '도전' 을 무마시키고 최고의 위치를 사수하는 그 아찔하리만큼 큰 자부심을 느끼고자 또다시 말 그대로 죽을 힘을 다 했습니다. 피펜이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길, 91년 우승을 하고 싶다는 열망보다 92년에 챔피언 자리를 지켜야 겠다는 열망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그 엄청난 에너지는 물론 승부의 화신 마이클 조던에게서부터 발생하는 Aura였고, 그 기운을 선수들이 고스란히 받아 정진합니다. 결과는 또다시 우승으로 마무리가 되었죠.
하지만 두 번의 내리 우승을 이룬 불스는 '반드시 우승을 해야 한다' 는 목표의식이 상당히 결여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기쁨을 맛보았고, 그 자리를 끝내 사수하여 스스로의 위치를 재정립하여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습니다. 물론 왜 우승에 대한 열망이 없었겠습니까마는, 91년과 92년의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93 시즌 불스 시즌 경기는 두 번 다 직접 관전했는데, 제가 보기에도 예전처럼 터프한 수비와 근성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습니다. 불스 선수들에게서 여유가 줄줄 흐르더군요. -_- 얄밉게도..,
결국 이 목표 의식의 하락은 고스란히 성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룰 것은 다 이루었는데도 그래도 도무지 만족할 줄을 모르고 마치 그게 인생 마지막 경기인 양 온몸을 불사르며 미친 듯이 뛰는 선수는 조던 하나뿐이었습니다. 팀 스포츠인 농구인데,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다르다면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내기 어려웠겠죠?
2.
말씀하신대로 93년의 닉스는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리그 최고의 수비팀이었습니다. 불스조차도 아직 닉스 수준의 터프하고 강력한 수비력을 갖추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 93년이나 94년보다 92년의 닉스가 더 강력했다고 생각합니다.
닉스의 옛 광팬이자 직접 관전한 경기 수만 백몇십 번이 넘고 TV로 본 경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람으로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부등호로 공식을 쓰자면, 92>93>94 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왜 92 닉스가 93년보다 강했다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92 닉스와 93 닉스에는 로스터의 변화가 있습니다.
주축이 되는 유잉은 그대로지만,
92년도의 핵심은 맥대니얼과 제럴드 윌킨스, 마크 잭슨
93년도의 핵심은 스탁스와 앤써니 메이슨, 찰스 스미스입니다.
92년도에는 위의 세 명의 활약은 공격과 수비에서 (특히 수비) 에서 두드러졌는데, 매우 안정감있으면서도 무게감있었습니다. 특히 윌킨스의 깜짝 활약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터프가이로 소문난 맥대니얼 (조던과 입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트래쉬토킹을 할 만큼 박력있었죠 ^^) 의 전천후 활약도 좋았구요. 주목할 만한 점은, 주전 모두의 활약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93년도에는 윌킨스과 맥대니얼이 사라지고 찰스 스미스가 들어옵니다. 제일 달라진 것은 공격에서 스탁스의 비중이 대단히 커졌다는 것입니다. (17.5득점으로 유잉에 이어 팀내 득점 2인자가 됩니다)
스탁스의 수비력은, 수비에 능한 스윙맨이 즐비했던 90년대에서도 그보다 더 뛰어난 수비수는 몇 명 못 보았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공격력도 뛰어나긴 했습니다만, 치명적인 것은 이 선수는 기복이 심해요. 그것도 "아주" 심합니다. 한 번 불 붙기 시작하면 MSG를 환성으로 뒤엎어 버릴 정도로 대단한 폭발력을 지녔으나, (특히 삼점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지금의 코비처럼 막을 수가 없는 선수였습니다) 좀 안된다 싶은 날에는 48분 내내 뛰어도 10득점도 넘길랑 말랑 하는 X맨이 되어버리는 간신같은 선수였습니다. -_- 이런 선수에게 득점을 전폭적으로 맡겼으니, 득점에 있어서 큰 변수가 생기게 되었죠. 결국 이 간신은 94 파이널에서 제대로 역적질을 하여 결국 팀을 패배케 합니다.
농구는 무엇보다도 안정감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윌킨스와 맥대니얼과 마크 잭슨은 셋 다 꾸준하기로 소문난 선수들입니다. 기복없이 꾸준한 활약을 해 주는 셋에 의지하다가, 불 끓듯 끓었다 얼음 얼듯 얼어버리는 스타일의 스탁스에게 크게 의존하게 되었으니 전력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요.
그리고 스탁스를 빼놓고는 퍼리미터 수비가 크게 약해집니다. (조던에게 마구잡이로 관광당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죠. 조던 뿐만이 아니라 드렉슬러에게도 당합니다.) 맥대니얼의 부재가 컸죠. 맥대니얼의 디나이 디펜스와 패싱 차단은 일품이었습니다. (다른 선수와 비유하자면 01 필라델피아의 맥키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퍼리미터 수비를 스탁스 혼자 다 해야 하는 상황. 코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퉁소 불고 가야금 타야 하는 레이커스의 안습 퍼리미터 수비진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92년도가 팬으로서도 제일 아쉬운 부분입니다. 전 이때만큼은 조던의 불스를 닉스가 넘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플레이오프 7차전까지 갔습니다. 불스와의 그 7차전은, 제가 지금까지 본 경기 중 제일 허망한 경기였습니다. 미친 모드로 들어간 조던에게 작살나는 리그 최고의 수비팀의 애처로운 모습....., 그 귀중한 92년도, 다신 되돌아오지 않을 92년도는 그렇게 조던에게 영원히 빼앗기고 맙니다.
3.
93년도보다 성적이 더 안 좋았던 92년도의 닉스에 대해 질문하셨는데요.
사실 닉스는 정규시즌에 그렇게 도미넌트한 모습을 보여주는 팀은 아닙니다. ^^;
끈적끈적한 수비로 시간을 벌고 진영을 정비하고, 여럿이 골고루 득점하는 스타일의 팀이었죠.
그러다가 플레이오프 가서는 전원 Defense를 외치며, 상대편을 쥐어짜 질식사시킵니다. 전 아직도 그 함성을 못 잊겠습니다. "DEFENSE! DEFENSE!" New York Knicks는 곧 "DEFENSE!" 였죠.
닉스는 92년에도 93년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는 꼽히지 않았습니다. 뉴욕 타임즈에도 항상 '동부 강호' 정도로만 평가를 받았었죠. 이는 닉스가 강력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제 생각에는 전무후무한 마이클 조던의 존재 때문인 것 같습니다. 92년도에는 닉스가 어딜 보나 불스보다 강했는데, 조던의 존재 때문에 불스가 더 강해보이죠. 마찬가지의 현상입니다. 이 때의 마이클 조던의 위력과 입지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뉴욕에서도 패트릭 유잉보다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더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역시 닉스의 색깔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쥐어 짜는 듯한 수비, 유잉의 산악같은 존재감과 강력한 블락샷, 스탁스의 몸을 날리는 스틸, 맥대니얼의 두꺼운 가슴팍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트업 수비와 디나이 디펜스...,
닉스는 여전했습니다.
답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 좋은 밤 보내세요.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이 글 첫 조회자로서의 영광을 안게 되었네요. 1991-92 시즌 뉴욕 닉스의 "Defense"는 80년대 후반 피스톤스의 수비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더러웠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보웬을 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당시의 피스톤스나 닉스의 경기를 보시면 아마 생각이 달라지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남성다운" 멋을 NBA에 선사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요즈음의 경기들을 보면, 그런 박진감과 긴장감이 잘 안 생겨납니다. 제가 그 때보다 더 늙어서 이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90년대초 당시의 닉스가 시카고의 파이널 상대로 올라온 포틀랜드나 피닉스보다 더 강했었다고 봅니다.
맞습니다. 패대기치고 어깨로 퉁겨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파울을 하더라도 최대한 거칠게.. ^^; 제가 90년대 농구가 지금의 농구보다 피지컬한 면에선 대일 바가 아니라고 한사코 주장하는 이유도 제 눈으로 본 게 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신체 접촉을 피하는 요즘 수비는 그런걸 봐온 저에겐 마치 새색시 손결처럼 보드랍게 느껴집니다. 어떤 분은 '닉스만 그랬던 것이 아니냐' 하시는데, 일단 분위기 자체가 전반적으로 거칠었을 뿐더러, MSG를 방문하는 팀들은 닉스의 그런 수비를 접하면 닉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거든요. ^^; 따라서 닉스는 90년대 리그 전체를 피지컬하게 탈바꿈시키는 장본인이라고 할까요. ㅎㅎ
울트라 피지컬 디펜스..팻 라일리 스스로 닉스의 수비에 붙인 호칭이죠..92-93시즌은 전체적으로 리그가 상향평준화된 시즌으로 거론되기도 하구요..그 시절 닉스의 경기엔,숨이 턱턱 막히는듯한 끈기와 거친 기분이 TV로도 전해졌어요..스탁스의 기복은 그의 팬들조차도 공감하는 부분이죠..들어가는 날엔 쓰러지면서 던져도 들어가지만,안들어가는 날에는 와이드오픈에서도 빽차가 나오는..그래도 그는 진정한 '불꽃남자'..
그래서인지 90년대 선수들이 더 정감이 간다는....^^;
닥터 제이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이 때 닉스 경기는 간간히만 볼 수 있었던 저또한, 이 당시의 닉스 선수들은 정말 말 그대로 "전사"들이었습니다. 정말 피가 머리에 쏠릴 정도로 무자비하고, 그러면서도 강력한 수비력.. 항상 유잉의 가장 멋진 조력자로 오클리, 래리 존슨, 또는 스탁스가 거론되지만, 맥대니얼 역시 정말 과분할 정도로 좋은 조력자였다고 봅니다.
nycmania 님께선 조던이 정말 엄청나게 미우셨을텐데 카페에서 조던에 관한 자료 올리시는거나 말씀하시는거 들으면 엄청난 팬이신것 같네요. 그 시절 경기들을 라이브로 직접 느끼지못한것이 평생 한이될듯 싶습니다
조던에 대한 제 감정과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닉스와 패트릭 유잉, 그리고 조던에 대한 관심의 정도는 같았습니다. 조던이 너무나 뛰어나고 멋있었기 때문이었죠. 닉스를 응원할 때는 조던이 죽도록 미울 때가 대부분이었고, 조던 욕을 빠득빠득 하면서 귀가하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가 응원하던 닉스의 모습이 사라지고, 유잉이 사라지고, 조던도 사라지자, 조던에 대한 미움이 동경과 존경으로 바뀌더군요. (이 이야기 예전에 여러번 했었는데요 -_ㅠ;) 레지 밀러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가끔 '너 조던 팬이지' '너 밀러 팬이지' 하는 말도 듣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 보면 부인하고 싶진 않아요
99년도 닉스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던.. 92,93년도였던것 같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기억나는 것은 정말이지 유윙의 골밑 존재감이 남달랐다는 것.. 그리고 고릴라 덩크.. -_-;;
x맨이야 말할나위도 없지만, 제럴드 윌킨스도 원래 수비가 좋은 선수였습니다. 클리블랜드 가서도 조던을 상대했던 선수로써 아마 한경기인가를 완벽하게 틀어막아서 조던 스타퍼라는 별명이 붙을뻔하다가 그 다음에 조던이 개관광을 시켜버렸죠. 그리고 93시즌에 윌킨스와 맥다니엘이 빠졌어도 그뒤를 이었던 리버스나 데렉하퍼, 메이슨도 윌킨스-맥다니엘 라인보다 그렇게 크게 뒤지지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크 잭슨의 경우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부상때문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암튼 당초에 좋은 수비수였다가 발이 느려져서 차라리 그때에는 리버스나 하퍼가 수비가 더 좋았던 걸로 기억이 됩니
부산 갔다오니 이리 훌륭한 답변이 많이...정말 조영서님 nycmania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94년 불스가 무려 55승이나 올린것도 설명이 되는군요. 조던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우승할수 있다는 것보다 큰 동기부여는 당시 불스멤버들에게 없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