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ㅅㅎ)
아래 2016년 민예총 노형동 해웑상생굿 자료 중
(아래: ㅅㅎ)
(아래 글: ㅎ ㅇ)
노형 해원상생굿 끝나고 강덕환 시인님과 김경훈 시인님과
4.3학살터 '도령모루'에 갔다.
여기 지형은 행정적으로는 용담 2동이고, 길 건너면 연동, 공항 인근은 다호마을..
이번에 정리하다 보니 도령마루에서 4.3 당시 희생된 사람은 (확인된 사람만) 66명이라 한다.
하지만 이는 '도령마루 희생자'라던가 '해태동산 희생자'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이고 '소나무밭', '비행장 옆' 등으로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또 특정 지역이 아니어서 희생자 찾기에 소홀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있다.
현기영의 <도령마루의 까마귀>에
보면 시신 수습도 잘 안되었다고 나온다.
"두 사람은 담가를 들고 일부러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밭담으로
향한다. 밭담 밑에 담가를 잠시 놓고 다시 주위를 살핀다. 까마귀
오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앉은 채 이번엔 모자를 벗고 속을 들려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귀리집이 눈짓한다. 둘은 힘껏 담가를 쳐올려 시체를 담 밖으로 내던진다." (현기영 <도령마루의 까마귀> 마지막 대목)
성담을 쌓는 작업 중에 사체구덩이를 발견해서 시체를 인양 하거나, 몇
년 후에 찾거나, 또 소문 듣고 와 시체를 인양 했다 한다.
공항에서 보면 제주로 가는 관문인 이곳에 '해태동산' 말고, 옛지명 '도령마루'라는 이름을 찾는 작업과 표석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강덕환 시인님은 대학 때 현기영의 <도령마루의 까마귀>에 당신이 태어난 노형 마을의 낯익은 지명들이 나와 그 소설에 천착하며
4.3 연구 또한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노형마을은 4.3당시 단일 마을로서는 최대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마을이다. (서귀포 강정동의 영남마을은 비율상 가장 많은 피해가 있던 마을이기도 하다.)
약 90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은 4.3 때 560여 명이 목숨을 잃고, 함박이굴, 방일이, 개진이, 드르구릉, 뱃밭, 새동네(괭이술), 물욱이(수옥동), 숙이못(석숙이못) 등 많은 자연마을이 사라졌다. 지금의 노형동은 신제주라 불리며 수많은 아파트와 높은 건물들에 그 지형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그 땅과 원혼들은 여전히 기억해야 헐 것이다. 특히나 노형마을 4.3희생자 중에는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아 '서천꽃밭 질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