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러드의 창작 절차는 시간을 ‘파멸과 구원이라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는 것으로 간주한 베케트의 관점을 준수한다. 미래의 신문 헤드라인을 환각에 가깝게 예지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재능이다.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밸러드의 벌거벗은 서술은 섬뜩할 정도로 정확해진다.
_ 이언 싱클레어 「해제」에서
“우리는 신시대의 프롤레타리아”
중산층의 혁명과 목적 없는 테러의 시대
21세기의 예언자, 20세기 SF 최후의 거인
J. G. 밸러드의 묵시록적 스릴러
『밀레니엄 피플』은 폭탄 테러에 휘말려 사망한 아내의 살인범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산층 혁명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어느 심리학자의 4개월간의 행보로, 탐정물을 가장한 밸러드식 포스트모던-내우주 SF이다. 말년의 밸러드가 밀레니엄을 맞은 후에 발표한 단 두 권의 문학작품 중 하나이며, 과거와 미래를 한자리에서 아우르는 그의 특기가 탁월하게 발휘되었다.
‘중간관리직의 정신건강 문제’가 전문 분야인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컴은 미국의 산업심리학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히스로 공항으로 출발하려던 중, 2번 터미널의 수하물 벨트컨베이어에서 폭탄이 터졌다는 뉴스를 접한다. 주동자는 물론이고 범행 성명조차 없는 이 테러로 전처 로라가 희생되었음을 알게 된 그는 그 죽음의 무작위성에 큰 충격을 받는다(만약 그 테러범이 3번 터미널을 골랐더라면, 그리고 한두 시간 정도 늦게 결행했더라면, 집중 치료실에 누워 있는 사람은 샐리와 내가 되었을 것이다. _36쪽). 아름답고 다리가 불편한 부인 샐리는 과거에 본인이 당했던 노면전차 사고의 무작위성을 떠올리며(“‘왜 나야?’ 대답해 봐요. 할 수 없을걸요.” _43쪽) 마컴에게 로라를 죽인 범인을 알아내라 종용하고, 의심스러운 개인과 단체를 찾아 시위 현장들을 떠돌던 그는 마침내 런던의 호화로운 동네 첼시마리나에서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곳에서 그는 ‘지나간’ 20세기를 전복시키려는 급진적인 몽상가 무리를 만나는데, 그들의 배후에는 기이한 카리스마를 휘두르며 사람을 조종하는 소아과 의사 리처드 굴드가 있었다. 굴드와 어울리면서 마컴은 지금껏 20세기가 만들어 낸 틀에 스스로를 욱여넣어 자발적으로 왜곡시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로라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다닌 여정은 보다 강렬하고 충동적인 존재 방식을 발견하기 위한 여행이었던 셈이다. _239쪽). 그런데 사실 이들 무리는 마컴과 같은 유순한 중산층을 일깨워 해방하려는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고, 전향과 저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태풍의 눈에 있음을 깨닫는다.
『밀레니엄 피플』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억압받던 프롤레타리아가 봉기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전문직 중산층 계급이 반란을 도모했다는 데 있다. 소설의 주 무대는 런던의 가상 고급 주택단지 ‘첼시마리나’로, 이곳의 주민들은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법규를 준수하며 의회 민주주의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러한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첼시마리나의 혁명가들은 중산층이 교육(“그들은 사립학교가 아이들을 세뇌해서 온순하게 사회에 적응하도록 만들고 소비 자본주의 사회라는 허상을 이끌어 가는 전문가로 개조하는 시설이라 여깁니다.” _171~172쪽)과 미디어(BBC는 국가를 지배하는 문화를 규정했고, 중산층은 그 속임수에 넘어가서 절제와 시민 도덕이 전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_246쪽)를 통해 ‘시민의 의무와 책임’을 세뇌당하고 ‘수동적인 태도와 자제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요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20세기가 낳은 싸구려 환상―고등교육, 전문 자격증, 교양에의 취향, 사치품 등―에 홀려 자신들이 ‘100년 전의 공장 노동자와 똑같은’ ‘신시대의 프롤레타리아’임을 깨닫지 못한 채 허덕이며(“급여는 고정되어 있죠. 조기 퇴직의 위협도 등장했고요.” _129쪽 / “이 동네는 똥통이라고요. 보수 정비는 거의 하지도 않는데 관리비는 끝없이 오르기만 하죠. 이 아파트는 우리 아버지가 평생 벌어들인 것보다 더 비싸게 먹혀요.” _129쪽 / “세상에,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첼시마리나에다 처박았다고요. 다들 엄청난 주택 융자금에 묶여 있어요. 학교 수업료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은행은 사람들 목을 부러트리고 있죠. 게다가 가면 또 어디로 가겠어요? 서리의 숲속으로 들어갈까요? 통근에 두 시간이 걸리는 레딩이나 길퍼드로 가라는 건가요?” _130~131쪽) 자발적으로 굴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혁명가들은 ‘중산층이 모든 선의를 거두면 사회는 붕괴한다’(“우리는 당연히 존재하는 취급을 받는 데 이제 질렸소. 이용당하는 일에도 질렸고. 우리가 이런 자들이 되었다는 것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소……” _252쪽)는 것을 새로운 의미의 계급투쟁으로써 과격하게 실천해 보이고, 첼시마리나 바깥으로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는가 싶던 이야기는 지극히 밸러드스러운 결말로 질주한다.
한편 등장인물들은 밸러드의 작품답게 한없이 뒤틀린 군상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영국적인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훨씬 생동감 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개개인으로 그려진다. 할리우드를 증오하는 뇌쇄적인 전직 영화 이론 강사, 죄책감을 느낄수록 신앙심이 커지는 할리데이비슨 마니아 교구 목사, 어린 시절의 학대로 폭발물에의 재능이 개화한 전직 국방부 화학 전문가 등이 통제를 벗어난 과학자이자 구세주 같은 사이코패스 리처드 굴드에게 감화되어 첼시마리나의 혁명을 음양으로 견인한다. 밸러드의 작품에는 주인공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구현하여 그를 농락하며 계시로 이끄는 샤먼적인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마컴에게 있어 단테의 베르길리우스 같은 굴드가 바로 그러한 존재이다. 뇌 손상을 입은 아이들을 통해 일찍이 세계의 무의미함을 감지했던 굴드는 폭력이 품은 강렬한 진실성을 신봉하고 진정한 동기의 부재에서 힘을 끌어내는 광조狂躁의 혁명가이다.
밸러드는 자신의 작품에서 한결같이 현대 문명의 병리학적인 잔혹상을 폭력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이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같은 강렬한 이미지에 매료되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냉정하며 분석적인 시선으로 묘사했다. 또한 외부 환경과 인간의 내면에 펼쳐지는 의식/무의식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SF의 우주 개념을 ‘내우주’로 전환시킴으로써 문학성을 꾀했다.
『밀레니엄 피플』에서 밸러드는 기독교 천년왕국설의 ‘종말’의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새로운 천 년의 전환기에, 집단 붕괴 직전의 영국 사회(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잔혹한 지루함이 세상을 지배했고, 의미 없는 폭력 행위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_49쪽)를 무대 위로 불러 올렸다. 그는 중산층의 소외에 항거하는 폭동이란 화두를 던지면서 현대적 안온함의 허상과 인간 조건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했다. 중산층을 떠받치는 토대가 이전보다 불안정해짐을 느끼게 되는 2022년의 대한민국이 20년 전에 쓰인 소설 속 런던과 닮아 있다는 사실은 ‘21세기의 예언자’ 밸러드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하도록 해 준다. 《가디언》의 표현대로, ‘우리의 세상이 마침내 밸러드를 따라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