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위기의 시대
예수동행일기를 쓰는 일을 목회에 적용해 보라고 권했더니, “성공할 자신이 없어 못하겠다”고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시대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매일 일기를 쓰고 그것을 나누며 살라 하면 좋아할 교인들, 따라올 교인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강한 자극의 시대입니다.
TV와 휴대폰, 인터넷 영상이 우리 안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끊임없이 부추김으로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기쁨과 평강의 은혜를 빼앗아갑니다.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시대는 없었습니다.
이 현상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여 매일 일기를 쓰는 일도 너무 지루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너무나 부담이 되고 본성상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영적 암흑시대가 닥칠 것입니다.
엄청난 영적 미혹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성경 지식이나 율법주의적인 종교생활로는 우리의 영혼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다음 세대가 직면할 심각한 미래입니다.
반응이 없어 보여도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자’ 계속 외쳐야 합니다.
특히 다음 세대들 안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심어 놓아야 합니다.
그들 또래 안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증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신학교 안에 예수동행운동이 필요하며 예수동행 청년집회와 예수동행 청년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말씀과 성령으로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주일 예배 때나 부흥회 때, 제자훈련에서 은혜를 받아도 우리의 삶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 3:13)고 한 것입니다.
“오늘이라 일컫는 매일 매일” 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인의 삶은 매일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롯이 날마다 보고 듣는 것으로 인하여 심령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벧후 2: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 바라보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살만 하니 예수만 바라보라고 한다’ 고 말한 목회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살만하면 오히려 주님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도무지 살 길이 없어져야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미국에서 한 안경점 광고가 히트를 쳤답니다. “나는 안경 밖에 몰라요.”
이 광고가 그 해 전 미국에서 광고대상을 받았답니다.
안경 밖에 모르는 안경점 주인이 최고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 밖에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을 친밀히 아는 것은 황홀할 정도로 복되고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리스도인들, 심지어 목회자 조차 그 즐거움을 모릅니다.
매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친밀한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주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 전부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하여 주님이 하실 일을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