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신명기의 말씀 30,15-2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16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7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20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 ‘재의 수요일’을 지내고 맞이하는 첫 번째 날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 수난을 예고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곧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사명, 곧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루카 9,22)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일어날 일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반드시'(이백주년 성서; '마땅히')라는 단어는 이 모든 것이 필연성이나 당위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 일은 첫째는 '많은 고난을 겪는' 일이요, 둘째는 '배척을 받아 죽는' 일이요, 셋째는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수동형으로 표현되어 하느님의 권능이 개입할 것임을 시사해줍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당신을 따르는 길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지만, 세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요, 둘째는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요, 셋째는 이를 '날마다' 지속적으로 지는 일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의 ‘제 십자가를 지고’에 대해서만 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곧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떠올리는 ‘신약의 십자가’가 있기도 전에 사용되고 있는 이 ‘십자가’.
곧 ‘구약의 십자가’란 대체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은 우선 '계약'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구약에서 ‘십자가’(타브)는 ‘계약의 표’로서 소유, 선택을 나타내는 동시에, ‘구원의 표’로 주어졌으며(에제 9,4.6.), 주님을 따르는 ‘하느님의 종’과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에게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레위기(25,55)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종들’이라 칭하며, 탈출기(19,6)에서는 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또 하느님의 제사장으로서 ‘계약’을 짊어지는 것이며, 동시에 구원의 표시로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진다’는 곧 '계약'을 지키는 것이며, 하느님의 소유로 선택되어 거룩한 백성의 삶을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당신을 따르는 이’는 ‘계약’을 짊어지고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이 됩니다.
곧 생명의 길이며, 그것은 목숨을 내놓은 결단을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카 9,24)
이러한 결단은 제1독서에서 생명과 죽음의 길로 드러나며,
생명의 길은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신명 30,20)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사랑으로 그분께 매달려 있고, 생명의 길을 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루카 9,22)
주님!
길을 인도하시는 당신을 따라 걷게 하소서.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따라 걷게 하소서.
한 두 번이 아니라 많은 고난을 겪어도 피하지도, 거부하지도 말게 하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살리기 위해 고난을 스스로 끌어안고 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첫댓글 사랑으로 그분께 매달려 있고, 생명의 길을 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 님 고맙습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 멘 !
감사합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