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섭다는 중2가 곧 도래하고 있어선가. 큰 아이와 싸움에서 이겨본적이 없다. 독감 예방접종 문제도 그랬다. 보호자 싸인이 필요해서 동반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수능이 있는 날부터, 그 다음날은 제량휴업이었고 그리고는 토요일이었다. 게으른 사람 특증은 마즈막 순간까지 미루고 보는 점이 아닌가 싶은데, 큰아이가 그랬다. 엄마 나가는 길에 함께 가서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누누히 말했고, 내가 함께 가주겠다고 설득도 했지만 번번히 내일로 미루고 또 미루었다. 출장가있는 아빠의 호통이 떨어진 다음에야 겨우 어제, 그것도 마즈막 순간까지 미루다가 마지못해서 나와 동행을 했다. 내가 더 한심한가. 엄마가 없는 애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들 맞을텐데, 왜 자꾸 내가 안달을 하는 것일까. 예방주사는 맞아야 하는 것이고, 맞아야 하는것이라면 빨리빨리 맞는게 낫지않는가. 이건 내 생각이고, 손주나 며늘의 생각은 다른수도 있는데, 왜 강요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이것 또한 폭력이라고 한단다. 나는 내가 고처야 한다는 것에 동의 못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서다. 돌아오는 길에 아주 우연히, 스타박스 앞에서,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 모자달린 롱패딩에 털 방한화까지)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며늘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니, 꼭 며늘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손주가 엄마 같다고 해서 그럼 가서 확인해봐라고 했고, ㅎㅎㅎ. 자동차 뒷쪽으로 슬쩍 피하길레 나는 모르는체했지만 손주가 엄마 맞단다. 손주를 향해 며늘 악담을 쏟아놓을수는 없었지만 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나는 나 자신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며늘은, 잘난 며늘은 더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처음있는 일도 아니다. 언젠가도, 벌건 대낫에, 성당 앞에서 혼자 담배를 빠는 모습을 정면으로 목격했다. 며늘이 나만끔 민망했을까. 아닌가. 담배피우는게 범죄도 아닌데 민망할게 뭐 있는 일인가, 할수도 있다. 그런 터무니 없는 세상을 살고있다. 사실 나는 며늘을 높게 보았다. 내가 가보지못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2개나 받았고, 결혼 당시만해도 아들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말도 들었다.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기도 해서 그만한 능력이 되는줄 알았다. 어쩌면 며늘을 통해서 궁상인 내 인생까지 업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했을수도 있다. 직장을 나와서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한다고 했을때도 어련히 알아서 잘 할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대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려서 빈둥대는 일상에 묻혀버린것 아닌가 싶다. 주부로서도 엄마로서도 그렇다고 생활인으로서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길을 잃어버린줄도 모르는것 아닌가 싶다. 삶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매일이 있다. 뒤로 미루워서 저절로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가 끊임없는 현실인데, 아니, 미몽에서 못해어나고 있는것은 며늘이 아니라 '나'가 아닌가. 아들의 어께가 무겁다. 손주들이 길을 못찾고 있다. 가족이란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고 자기몫을 다할때 비로서 형통한 일상이 번성을 누리게 될텐데, 아니, 부모는 물을 줄뿐이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게 맞나? 부모가 물을 주지않는다면 아이들은 고사를 면치 못하게 되지 않을까,,, 자기가 잘난줄로 알고있는 사람은 사실 위험하다. 악은 거기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아니, 모르겠다. 다 지 복이겠다. 어떤것도 복있는 사람을 따를수 없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주님, 복 주시길 원합닌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