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발간하는 월간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5년 12월호(2025년 12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지난 9월과 10월 정상급 인사들이 베이징과 평양에서 모여 전략적으로 연대하는 3국간 협력의 허와 실을 따졌다. 장여진씨(석사 과정,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다시 만난 북·중·러, 협력의 화려한 외형과 현실'이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ss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사회주의 형제국의 귀환?
지난 9월 3일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열병식에 중국, 러시아, 북한 정상이 66년 만에 한자리에 섰다. 시진핑 국가 주석을 중심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선 모습은 냉전 시기의 ‘사회주의 형제국 연대’를 떠올리게 했고,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모았다.
한 달 뒤인 10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는 중국의 리창 국무원 총리와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안보회의 부의장이 참석해 이른바 ‘베이징-평양 2단계 회담’의 흐름을 완성했다. 중국과 러시아 최고위급 인사의 방문은 단순한 축하를 넘어선 외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혈맹의 복원’을, 메드베데프 안보회의 부의장은 ‘안보협력의 심화’를 각각 상징하며 연대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북·중·러는 베이징과 평양 두 무대를 오가며 연속된 외교 이벤트를 통해 ‘전통적 연대의 복원’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부각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협력이 부활한 듯 보이나, 그 이면에는 각국의 현실적 계산과 고유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전략의 교차점, 3국의 계산된 동행
이번 회동의 핵심은 세 나라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지점에 있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전선의 구축 필요성이 이번 3자 회동의 토대를 제공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이후 자신의 전략적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을 고려해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서둘러야 했다. 특히 올해 연말을 시한으로 한 ‘경제·군사 발전 5개년 계획’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중국의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이번 회동을 통해 북한은 안보 분야에서는 러시아와 협력을 지속하고,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국익을 극대화하는 이중 전략을 구현했다. 동시에 첫 다자회의 참석을 통해 ‘정상 국가’로서의 외교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외교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중국의 입장에서 이번 회동은 대미 견제 구도 속에서 세력 결집을 도모하고,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할 수 있는 기회였다. 베이징 회동과 평양 방문에서 공개된 장면들은 중국이 여전히 동북아의 중심이자 ‘조정자’임을 과시하는 상징적 메시지로 활용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서방의 제재로 외교적 고립이 심화한 상황에서, 러시아에게 중국과의 협력은 제제를 회피할 수 있는 현실적 돌파구였다. 동시에 북한과의 협력은 한반도에서 영향력 회복을 위한 전략적 지렛대가 될 수 있었다. 이번 회동을 통해 러시아는 국제사회에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 여전히 블록 내 ‘핵심 행위자’임을 보여주려고 했다.
결국,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와 서방의 대러 제재는 세 나라 간 이해관계가 일시적으로 수렴되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이번 회동은 화려한 외형 뒤에 각국의 전략이 교차하는 계산된 동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북·중·러 3자 협력의 현실
북·중·러 협력은 표면적 결속과는 달리 느슨한 성격을 띠고 있다. 최근 회동을 두고 일부에서는 3자 협력체제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세 나라의 이해관계와 전략적 목표는 서로 상충하는 지점이 많다. 북·중·러 3자 관계에는 공식적인 문서나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며, 3자 관계의 핵심 변수는 여전히 미국의 정책이다.
북한은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목표를 위해 양자 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러시아와는 군사 협력을 통해 안보를 강화하고, 중국과는 경제 협력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이중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북한이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하여 제한된 국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이다.
중국은 북·중·러 3자 관계에 완전히 구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목표는 미·중 관계의 안정화이며, 신냉전적 구도 속에서 러시아·북한과 같이 묶이는 상황은 중국이 추구하는 강대국 외교 전략과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은 러시아·북한과의 협력을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하되, 주도권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서방의 제재 속에서 중국·북한과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 아래 종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3자 협력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자신의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며, 국제질서의 핵심 행위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한다.
결국 북·중·러 삼각 협력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라기보다는 편의에 의한 임시적 결합에 가깝다. 외형적으로는 결속이 강화된 듯 보이지만, 이 연대가 견고한 삼각 파트너십이나 제도화, 심지어 동맹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당분간 세 나라 모두 자국의 이해관계와 목표에 부합하는 호혜적 양자 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한반도
오늘날 국제 관계의 핵심은 바로 이익의 분배와 균형이다. 모든 외교적 결속은 기회와 제약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북·중·러 3자 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번 회동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협력과 갈등이 얽힌 복잡한 외교적 계산 속에서 각국이 전략적 협력을 통해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현실이다.
이것이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외형적 연대나 상징적 장면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각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국제질서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경제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전보다 더 현명하고 유연한 외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