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8]아름다운 사람(44)-사진작가 김수오
가을이 가기 전에 제주를 다녀오자고 한 것은, 올해가 지나면 그동안 쌓인 마일리지가 소멸된다 해서였다. 제주는 1년에 몇 년인들 간다해도 싫을 이유가 전혀 없는, 외국과 다름없는 우리나라의 보석같은 섬이다. 영어로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이그재틱exotic하기가 말로 못한다. 제주 토박이들의 말부터가 그렇다. 이번에 하나 배운 재밌는 말을 먼저 소개한다. “살암시민 살아진다”가 그것이다. 정확치는 않겠지만, 뜻은 조금 짐작이 가시는가? 비바리(제주 처녀)에게 “(어떻게든) 살다보면 (결국) 살아지게 마련이어서 살아진다는 뜻이 아니냐”하자 “그렇다”며 약간의 보충설명을 해줬다. 본인도 어릴 때 엄마에게 많은 들었다면서 ‘어렵고 힘들어도 견디고 살면 산다(살 수 있다)’는 의미인데, 주로 제주 어머니들이 딸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란다.
나는 ‘제주 어머니’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게 해녀海女들의 숨비소리다. 해녀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우리나라로는 19번째). 제주는 역사적으로 ‘고난의 땅’인 듯, 4.3항쟁을 아시리라. 또한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넘어 19세기초 양제해모변사건과 20세기초 이재수의 난 그리고 시대를 거슬러 항몽투쟁을 하던 삼별초들의 진지들을 보면 숙연해진다. 제주 엄마들의 ‘고달픈 삶’은 안봐도 비디오인 듯하다.
아무튼, 이번엔 나흘을 머무르며, 정말 유니크unique한 사진전을 관람하면서 아름다운 사진작가를 만나 잠시잠깐 얘기를 나눴다. 서울에서도 아니 전국을 순회 전시를 했으면 좋겠지만, 돈이 되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일 터. ‘제주마馬’들의 탄생과 죽음까지의 과정도 우리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제 보는 것처럼 리얼하게 사진으로 보여주는, 어쩌면 국내 유일의 제주마 전문작가일 듯. 벌써 5년이 넘게 말들의 가족과 ‘친구’가 되어 아픔과 기쁨을 같이 하고 있다. 오죽하면 말의 새끼가 다가와 입으로 소매를 물며 진드기로 가득한 등을 긁어달라고 했을까.
그의 경력이 특이하다. 대학때 전자공학을 전공해 유명 대기업에서 일하다, 어떤 계기로 고향인 제주에서 아픈 사람들을 위하며 살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즉시 사표를 내고 한의대에 입학, 한의사가 됐다. 귀향한 때가 하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운동이 심해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낮에는 병원에서, 퇴근 후에는 그들을 돌보며 그의 시야를 사로잡은 게 한라산 중산간지역의 말목장과 말가족들.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도 예술작품이 되는 세상인지라, 시도 때도 없이(밤낮 가리지 않고) 말사진을 찍었단다. 수만 장도 족히 될 사진 중 32장을 골라 처음으로 전시를 했다. 사진전 제목 <가닿음으로>도 심상치 않다. 말에 다가가 닿음으로써 인간적으로 사귀게 되었다는 뜻일까.
<순이삼촌> 현기영 작가의 사진설명도 귀에 쏙쏙 박힌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강 작가도 이 사진들을 감상하면 정말 좋겠다. 이 사진전과 작가를 알려준 전전전 직장 선배께도 이 글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사람이다. 선배는 은퇴후 동호인들과 한라산 중산간지역에 '별도 마을'을 만들어 7년째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다. 얼마전 이 사진전을 관람한 후 작가와 인터뷰를 했다.
한밤중, 들판에서 목격한 제주마의 슬픈 죽음 - 오마이뉴스
말에 관한 한, 보고 듣고 공부도 많이 한 ‘말박사’. 평균수명은 개와 비슷해 15-20살, 서서 잔다거나, 새끼는 1년에 1마리씩 봄에 낳고, 하얀 말은 늙어서 털이 하얗게 된 거라고 했다. 작가의 얘기를 듣다보니 작가가 마치 말들의 ‘석가모니’인 듯했다. 엄마말이 새끼를 낳자마자 1시간도 넘게 태아막을 걷어내고 핥아주며 젖을 먹이고 서너 시간이 되면 새끼를 앞세워 그 자리를 곧바로 떠나는 까닭도 알았다(피냄새를 맡고 온 사나운 짐승의 습격을 대비). 새끼가 끝내 죽자 글썽글썽 눈물이 보이는 듯한 리얼한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엄마말의 슬픔을 말없이 위로하는 딸말. 새끼말의 미라같은 해골. 다시 여지없이 떠오르는 장엄한 태양. 싯다르타 태자가 궁궐의 사대문을 돌면서 인간의 생노병사를 목격한 후 충격으로 스님이 되어, 마침내 참진리를 깨우쳐 석가모니가 되었듯, 김수오 작가는 마음이 따뜻해도 너무 따뜻했다. 얘기를 들으며 간단한 팸플렛에 나도 모르게 “憐憫연민”이라고 적었다. 강정마을에서 시위하면서 다친 분들을 치료하는 마음과 하등 다를 게 없잖는가.
개와 말 그리고 소, 짐승이 말을 못한다고 어느 누가 미물이라고 무시하는가. 말을 못하면 마음이 없는 것인가. 그는 이미 두 가족(two family) 말들과 프렌드가 되었다하지 않은가. 말에 다가가 말에 닿은 그는 분명코 성공한 사람이자 아름다운 사람에 틀림없다. 누가 그 힘든 일을 시켰을까? 억만금을 주며 시킨다고 그게 할 일인가? 말 주변을 빙빙 돌며 잠복형사도 아니면서 깊은 밤까지 또는 여명도 트지 않은 한라산 새벽 노을을 배경으로 홀로 외롭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 사진을 숱하게 찍은 저 사람은 사람인가, 귀신인가? 무섭지 않았냐는 우문愚問에 사람이 무섭지 귀신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현답賢答하는 작가는 내년이 환갑이라는데 너무 약오르는 동안童顔이다. 아니, 무엇보다 얼굴이 도인道人처럼 맑아도 너무 맑다. 삿된 기가 ‘1도’ 없다. 나이가 익어갈수록 얼굴은 자기 책임인 것을.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알코올릭으로 추하게 찌그러들고, 그렇게 보일 것을 생각하면, 아아 나는 한심하다. 자존심이 빵점이다.
아무튼, 섬나라 제주에는 재야의 고수들이 너무 많이 사는 것같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고인이 된 김영갑이라는 사진가를 아시리라. 제주에 가면 꼭 들렸던 어느 초등학교 폐교에 마련된 김영갑갤러리. 엊그제 들으니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는데 다시 열었다던가. 지자체에서 나설 일이 아닐까. 정치가 그렇지만 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는 나와 동갑인데, 야심차게 준비한 첫 전시회도 못보고 가버렸다. 오름에서 날밤을 까며 찍었던 ‘바람의 얼굴’. 그의 사진을 감상하다보면 진짜 바람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또 한 사람의 사진작가를 알고 있다. 김민덕기념관을 지나다 우연히 감상하게 된 ‘제주의 밭’사진전. 그는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서울 제주를 왕래하며 밭사진만을 찍었다. 그런가하면 어느 후배는 368개나 되는 오름을 다 올라 멋진 오름책을 내기도 했다. 사진도 그렇지만, 음악은 또 어떤가. 기똥찬 뮤지션들, 유명 건축사들이 살고 작품을 만들고 있다. 미술관이 즐비한 지역은 축복의 땅이다. 이중섭미술관을 비롯해 이왈종미술관, 김창열미술관 등은 우리의 눈을 호사시키기에 충분하다. 취미가 특기가 되더니 예술가로서 생업도 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인가. 건강만 받쳐준다면 100세는 시간문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작품 감상도 좋았지만, 평생 옆지기와 고급취미를 같이 하면서 더 관심깊게 좋아하는 것같아 더욱 좋았다. 작품을 사주려 했는데 기어이 만류해 못사온 게 마음에 걸린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