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 한국 프로야구판에
수백억원대 ‘돈 광풍’이 불고 있다. 상당수 프로야구단이 FA선수(Free Agent·자유계약선수)들에게 비정상적인 고액을
제시하며 선수 몸값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판 전체의 붕괴를 불러올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 FA선수 자격을 확보한 선수는 8개 구단에서 모두 21명이었다. 이 중
19명의 선수가 FA 선언을 했다. 지난 12월 3일까지 최종 계약을 마친 사람은 15명이다. SK 와이번스의 3루수
최정(27)은 계약금 42억원·연봉 10억(2년)~12억원(2년) 등 총 86억원을 챙기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사인, 역대
최고액(총액 기준) 몸값을 가뿐히 갈아치웠다. 최정의 뒤를 이어 두산 베어스의 투수 장원준(29)이 계약금 40억원·연봉
10억원(4년)·옵션 4억원 등 총 84억원을 받아 냈고,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윤성환(33) 역시 계약금 48억원·연봉
8억원(4년) 등 총 80억원짜리 초고액 FA 잭팟을 터뜨렸다. 이들 외에도 삼성의 투수 안지만과 SK 와이번스 외야수 김강민
역시 각각 총액 65억원과 56억원의 대박을 터뜨리며 FA 광풍에 불을 붙이고 있다.
현재까지 계약을 마친
프로야구 FA선수 15명의 몸값만 무려 611억1000만원(계약금+연봉 총액)에 이르고 있다. 계약을 맺지 않은 선수들 중 몇 명
역시 최소 20억~30억원 이상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거나, 구단들이 이미 엄청난 액수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이번 겨울 FA선수 19명의 몸값이 700억원대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한국 프로구단들이
FA선수들의 몸값 폭등을 주도하면서, 가뜩이나 열악한 ‘구단 재정 악화’와 ‘야구의 질’ 추락을 동시에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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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각각 86억원, 84억원, 80억원의 몸값(총액)을 챙긴 SK 최정, 두산 장원준, 삼성 윤성환(왼쪽부터). /조선일보DB
구단은 엄연히 기업이다. 기업인 프로야구단에 가장 큰 자산은 당연히 ‘선수’다. 프로구단은 ‘선수’와 ‘코치’, 즉
팀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가치가 만들어진다. 이 점에서 ‘비싼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프로야구단의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드시 ‘비싼 선수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실력은 좋지 않은데 비싼 몸값만 챙겨 가는 선수들이 있는 프로구단이라면, 그것도 구단이 나서서 비싼 몸값을 챙겨 주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같은 선수는 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팬과 구단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프로구단) 가치 추락과 부실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프로구단의 현실은 후자다. ‘실력은 별로인데 구단이 나서 몸값을
폭등시킨 선수들’이 넘친다. FA선수들에 대한 한국 프로야구단들의 ‘선수 평가 능력 부재’와 ‘엉터리 투자’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FA선수에 대한 잘못된 몸값 폭등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 구단으로는 ‘롯데 자이언츠’(사장 이창원)가 꼽힌다.
롯데는 2013년 11월, FA선수였던 강민호(29)에게 계약금 35억원·연봉 10억원(4년) 등 총액 75억원이라는 당시
역대 최고액을 챙겨 줬다. 75억원을 챙긴 2014년 강민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총 128경기가 열린 올 시즌 불과
98경기밖에 출전하지 않았다. ‘타율 2할2푼9리·71안타·16홈런·40타점·33개 볼넷’을 기록했고, 삼진은 무려 92개나
됐다. 이 기록을 기자가 각 부문별 순위로 환산해 봤다. 타율은 선수 평가의 최소 기준인 기준타석(396타석)도 채우지 못해 평가
대상조차 안 됐다. 안타는 71위, 타점과 볼넷은 각각 공동 59위와 56위, 반면 ‘삼진’은 전체 선수 중 11위(순위가
높을수록 성적이 나쁜 것)였다.
이 성적이라면 프로야구판에서 주전은 고사하고 2류 선수라 부르는 것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FA 계약 전 강민호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은 있었는지, FA 투자 이후 성과 평가는 했는지”를 롯데 자이언츠
이상우 홍보팀장에게 물었다. 롯데 이상우 팀장은 이 질문에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강민호에 대해) 한 해만 보고
(총액 75억원에) 계약한 게 아니고, 타격(공격)은 아쉬웠지만 포수로서 수치화하기 힘든 수비와 경기·팀원 조율이 좋았다”며
“FA 첫 해란 부담감에 성적이 (안 좋은 것이지)… 이전까지 (성적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곤 “(FA 투자 적절성과 선수
성적 평가는) 유보하고 있다고 생각해라”라고 했다.
강민호에게 총액 75억원이라는 비정상적 거액을 챙겨 준
이유로 밝힌 “이전에는 (그의 성적이) 좋았다”는 롯데 이상우 팀장의 말은 사실일까. 강민호의 FA 직전 성적을 확인해 봤다.
2013년 시즌 강민호는 105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3푼5리·77안타·11홈런·57타점·60볼넷·87삼진’을 기록했다. 이
팀장의 말과는 달리 2014년 시즌만큼이나 좋지 못한 성적이었다. 2004년 데뷔한 강민호는 2010년 딱 한 번 3할 타율을
기록했다. 홈런 역시 이때만 20개를 넘겼다. 11년 통산 2할6푼8리에 974안타, 볼넷은 373개밖에 안 된다. 그런데 삼진은
무려 768개나 당했다. ‘평범한 성적’으로 표현해 주기도 민망할 만큼 좋지 못한 성적을 이어왔다. 롯데는 2013년과
2014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상위 4위 이내) 진출에 실패했다. “수치화하기 힘든 수비와 경기·팀원 조율이 좋았다”는 롯데 측의
주장 역시 동의가 쉽지 않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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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억원 몸값을 챙겼지만 먹튀 논란이 일고 있는 롯데 장민호. /조선일보DB
익명을 요청한 야구 전문가에게 강민호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성적만을 보여줬다. 그에게 “적정 몸값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자 “6000만원 이상 주기는 힘든 투자”라고 했다. 그에게 강민호의 성적임을 공개하자 “그렇죠. 75억원을 준 데는 이유가
있겠죠”라며 그냥 웃었다.
롯데는 올해도 FA선수들의 비상식적 몸값 폭등을 주도했다. 장원준 선수에게 사상
최고액인 무려 총액 88억원을 제시했었다. 이 같은 롯데의 FA선수 평가와 투자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는 장원준 선수의 실제 FA
계약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이없게도 장 선수는 롯데의 제시액 88억원보다 4억원이나 적은 84억원에 두산과 계약했다.
장원준 선수는 2004년 데뷔해 통산 85승77패·방어율 4.18로, 한 시즌 10승 정도 올려 줄 무난한 선발 투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특급투수로 평가하기엔 무리인 선수다.
롯데 자이언츠의 다른 관계자에게 “FA선수에 대한 구체적 평가와 몸값 책정 기준이 있는지, 장원준 선수의 88억원 몸값 책정
근거는 무엇이었는지”를 묻자, 그는 구체적인 답 대신 “장 선수가 프랜차이즈 스타란 점을 감안한 것”이라며 “특히 올해 롯데에서
터진 (구단의 CCTV 선수 사찰, 감독·코치와 프런트 간 분쟁, 몇 건의 초고액 FA 투자 실패) 사건으로 팬들의 커진
실망감과 (나빠진 구단) 이미지 개선을 위해 사상 최고액을 주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라고 했다.
롯데의 FA 몸값 책정이 정확하고 치밀한 선수 분석과 투자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저 ‘사고를 친 야구단에 화가 난 팬들을 상대로 화제를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롯데 이외 다른 상당수 프로구단에서도 FA선수들에 대한 이해하기 힘들 만큼 이상한 투자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2월 2일, 한화 이글스가 FA 투수 송은범에게 계약금 12억원·연봉 4억5000만원(4년)·옵션 4억원 등 총 34억원 거금을
챙겨 준 게 대표적 사례다. 송은범은 올해 4승8패에 방어율이 무려 7.32일 만큼 성적이 나빴다. 2013년에는 1승7패밖에 안
됐고, 방어율은 심지어 7.35에 불과할 정도로 성적이 엉망이었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투자 및
시장분석 전문가는 “미국과 유럽 등 프로스포츠가 발달한 해외 스포츠구단에서는, 거액의 선수 투자 뒤에는 시즌이 끝난 후 반드시
FA 영입 선수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분석·평가한다”며 “이 평가를 토대로 최고 경영자와 FA선수 투자에 직접 관여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거나 반대로 상당한 보상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는 “프로스포츠팀은 분명 ‘기업’”이라며 “기업이라면 당연히
소비자(팬)와 주주들에게 투자한 규모에 맞는 성과를 보여 줄 경영자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는
“‘100만원짜리 제품을 A기업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1000만원에 구입하고, 이로 인해 시장 경쟁에서 뒤처졌다’면 A기업
최고경영자와 이 구매 결정에 관여한 이들은 ‘배임 논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면서 “만약 최고경영자와 이 구매 결정에 관여한
이들이 100원짜리 제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정말 1000만원짜리로 잘못 알고 구매(투자)를 결정했다면, 이는 심각한 능력
부족으로 절대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의 스포츠팀들은 경영자와 책임자급 인력들에게 ‘투자와 성과에
대한 책임’을 크게 묻지 않는 것 같다”며 “엉터리 FA 영입으로 프로구단이 수십억원씩 손해를 보는 투자 실패에도 이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투자에 대한 재평가, 관계자들의 능력 검증, 감사 같은 것을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실력과 성적이 100만원짜리밖에 안 되는 FA선수에게 구단(혹은 구단 관계자가)이 나서 1억원을 챙겨줬다면 이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라며 “프로야구단 경영자와 임직원들의 수준을 높이지 않는 한 FA에 대한 미숙한 엉터리성 투자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구단은 FA선수들의 비정상적 몸값 폭등에 대해 “수요보다 공급이 적기 때문”이란
이유를 들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이상우 홍보팀장은 “경제 논리가 적용되는 게 FA선수 몸값”이라며 “선수 수는 적고 선수를
필요로 하는 팀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는) FA선수들의 몸값이 뛰는 것”이라고 했다. 이 팀장은
“한국의 야구선수 인재풀이 적기 때문에 (FA선수에게 비싼 몸값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MBC
야구해설가이자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 허구연씨는 “선수 공급 부족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지적됐다”며
“프로구단이 엉뚱한 투자를 했기 때문에 선수 공급 부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구연 위원장의 말이다.
“선수의 공급이 부족하다면, ‘선수가 왜 부족한지’ 이유를 찾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요. 프로구단들이 초·중·고등학교 등
청소년 야구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로구단들이 선수 수급 차원에서 초·중·고 선수들에게 일정한 지원을 하고, 또
우수한 선수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투자를 했어야 합니다. 이 같은 투자와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선수가 없다’고 하니 답이 없는
것이지요.”
허 위원장은 “‘초·중·고 학생들에게 투자를 좀 하자’라고 부탁하면 구단들이 ‘우리는 돈이
없다’고 말한다”며 “투자해야 할 곳(초·중·고등 청소년)에는 투자하지 않고, 제대로 된 평가도 없이 FA선수 몸값으로 수십억원을
쓰는 엉뚱한 투자만 되풀이하는 악순환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다.
KBS N 스포츠 야구해설위원(전 KBO
사무총장)인 하일성씨 역시 “엉터리 FA 몸값 문제는, 쓸 만한 선수가 부족하다는 인식도 큰 이유”이라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청소년 야구에 투자해야 하는데, 프로구단들이 이 같은 투자에 인색하다”고 했다.
프로구단들이 청소년 야구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기자가 롯데 자이언츠를 통해 확인해 봤다. 롯데 자이언츠는 매년 봄 초·중학교 대상, 가을에는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야구대회를 열어준다. 이 두 대회의 운영비와 상금으로 총 1억4000만원을 쓴다. 또 부산·경남 지역 학교에
공·배트·장갑 등 야구용품 3억원어치를 지원한다. 즉 롯데는 청소년 야구선수들을 위해 1년에 4억5000만원 정도밖에는 쓰고 있지
않는 것이다. 강민호에게 챙겨주는 1년 연봉(10억원)의 45%밖에 안 되는 규모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롯데 외에 다른
구단들 역시, 몸값이 부풀려진 선수 한 명 연봉의 채 절반도 안 되는 돈만을 청소년 야구를 위해 투자하고 있는 게 한국 야구판의
현실이다.
하일성 해설위원은 “FA제도, 특히 잘못된 ‘FA 보상 제도’가 FA 몸값 폭등과 구단들의 잘못된
투자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현재 구단들이 다른 팀의 FA선수를 데려오려면, ‘보상선수 1명과 FA선수의 직전 연도
연봉의 두 배’를 FA선수 원래 소속 팀에 줘야 한다. 만약 보상선수를 주지 않으면 FA선수가 받았던 직전 연도 연봉의 세
배’를 원래 소속 팀에 줘야 한다. 예를 들어 A구단이 B선수의 몸값으로 1년에 10억원을 줬다. 그런데 B선수가 다음 해에
FA를 통해 C구단으로 옮기게 되면 C구단은 A구단에 최소 20억원에서 최대 30억원의 현금을 줘야 한다. 때문에 각 구단들이
FA선수의 몸값을 실력보다 부풀려 책정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야구 전문가 역시 “잘못된 FA선수 보상제도가 ○○○ 선수처럼
수십억원을 챙기면서도 실제 성적은 엉망인 ‘먹튀’들을 양산하고 있다”며 “판은 커지는데 야구의 질은 우려할 수준으로 떨어지는
엉터리 FA 투자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전문가는 “결국 구단들이 돈을 특정 FA선수에게 몰아주는
구조”라며 “저연봉 선수들과 2군 선수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재 한국 야구판”이라고 했다.
허구연
위원장은 “FA제도가 엉망이 된 근본적 이유가 있다”며 “한국 프로구단과 구단주, 경영자들이 프로야구를 ‘스포츠산업’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FA선수 몸값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은 성적과 실력, 스타성과 팀
기여도 등으로, 이들 요소가 종합적이고 꼼꼼하게 평가돼야 한다”며 “그런데 한국은 이 같은 평가는 제쳐두고, 모그룹의 체면과
모그룹 오너의 의중, 오너가 가진 선수 기호와 선호도에 따라 몸값이 책정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허 위원장은 “이런 식의
주먹구구식 운영이 결국 문제를 키우기만 할 뿐 전혀 개선되지 않는 원인”이라고 했다. 허 위원장은 “프로야구를 산업으로, 야구단을
정상적인 기업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FA 문제는 물론이고 다른 문제들 역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게 한국 야구의
현실”이라고 했다.
한국 프로야구단 1년 매출은 약 200억~500억원대로, 단 한 구단도 예외 없이 모두
적자다. 한국 야구의 미래이자 뿌리인 청소년 야구 투자에는 매우 인색하다. 그러면서 FA란 이유로 특정 선수들에게 최대 86억원
등, 수십억원을 챙겨 주고 있다. 비정상적 FA 몸값 폭등과 미숙한 투자, 그 뒤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는 먹튀 선수 양산이 인기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 야구에 숨겨진 씁쓸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