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Bruin 입니다. BK.. 혹시 메이저리거(제가 아니라고 써놨었는데 다시 검색해보니 던컨&파커님 말씀대로 플로리다로 복귀했었네요. 죄송합니다) 김병현 이라던지, DJ 샤인,투컷, 등등.. 음악쪽분들을 떠올리고 들어오셨나요? 제가 오늘 번역한 칼럼은 BK, Bernard King과 DJ, Dennis Johnson이라는 두명의 레전드에 관한 글입니다. 아직 대학생에 불과한 저로써는 이름만들어서는 누구인지 몰랐으나, 칼럼을 번역하는 동안에, 역시 세상은넓었고, 괴물들또한 많았다라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조금은 생소한 이들. 확실한 레전드 입니다. 많은분들이 미흡한 제번역을 통해서라도 꼭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배우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고수분들께선 댓글로 칼럼에 없는 사실들도 가르쳐 주시면 금상첨화일듯. 부탁드릴께요^^; 오역+의역+평어체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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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 Should Call King and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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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9 --
It defies basketball logic. A gross injustice that simply doesn’t make sense. Why aren't Bernard King and Dennis Johnson in the Naismith Memorial Basketball Hall of Fame? The 15 finalists were announced by the Hall of Fame on Friday and the only candidates with NBA credentials as players making the cut were Richie Guerin, Adrian Dantley and Chris Mullin.
Huh?
이건 정말 농구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정말 이해할수 없는 불공평함. 어째서, Bernard King 과 Dennis Johnson은 명예의 전당에 아직까지 이름을 못 올리는가? 지난 2월달, 15명의 명예의전당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사람들중, NBA 의 플레이어로써 뽑힌사람은 Richie Guerin, Adrian Dantley,그리고 Chris Mullin 뿐이었다.
What about BK and DJ, two premier players and difference makers of their respective era?
한시대를 주름잡았던 프리미어 플레이어, BK 와 DJ는 어찌된걸까?
“I have never feared anybody that I’ve played against ? Bird, Magic, Doctor, Michael ? and I respect and love all of those guys,” said Dominique Wilkins who entered the Hall last
Fall. “Bernard King is the only guy that ever scared the hell out of me.”
도미닉 윌킨스 曰, "내가 NBA 에서 두려워 한 선수는 없었다. 당신이 나열할수 있는 최고의 이름들, 래리버드, 매직, 닥터J, 그리고 마이클 조던 까지...나는 그어떤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나의 NBA 커리어중 유일무이한 예외는 BK, Bernard King 뿐이다."
Johnson starred for three teams --- Sonics, Suns and Celtics -- and played a key role on three NBA championships. Johnson won Finals MVP honors with Seattle in 1979 and served as an indispensable guard on two Boston Celtics title teams in the mid-’80s.
소닉스, 선즈, 그리고 셀틱스의 스타로 확약했던 Dennis Johnson은 NBA 에서 세번의 우승을 일궈내었으며, 1979년도엔 소닉스의 일원으로써 파이널MVP의 영광을 누렸다. 또한, 80년대 중반엔, 대체할수 없는 가드로써 셀틱스와 함께 두번의 우승을 이루어내었다.
“Everywhere he went, he won,” said Hall of Famer Bill Walton who teamed with Johnson on the ’86 championship Celtics. “Isn’t that the measure of greatness? And he was the reason they won. He was the reason they won in Seattle. He was the reason they won in Phoenix. “I have never been so disheartened and embarrassed in my life that Dennis Johnson is not already in the Hall of Fame. It’s a travesty.”
HOF 멤버이자, Johnson의 86년도 셀틱스 동료였던 빌 월튼이 말하길, "어떤팀으로 옮기든, 그는 항상 승리했왔어요." "승리가 위대함의 척도가 되야하는게 정상 아닌가요? 그리고 항상 그는 팀의 승리에 이유였어요. 소닉스의 승리의 주축이었으며, 선즈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가 아직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저는 그 어떠한 순간보다도 부끄러우며, 이해할수가 없어요. 말도 안되는 일이죠."
The career numbers for King are no doubt Hall worthy --- 19,655 career points for a 22.5 points per game average over 16 seasons, only 10 of which consisted of 60 or more games.
Bernard King 의 스탯또한, 의심할 여지없이 HOF의 그것이다. 커리어 통산 19655점을 득점하였으며, 무려 16년(!!) 동안 평균 22.5점 (ㅎㄷㄷ)을 올렸다. 이런 16시즌 동안 단 10시즌만 60게임 이상을 뛰었다는점을 감안할때, 실로 엄청난 기록이다.
There are 30 players in NBA history who have scored 20,000 or more points and all are either in Hall of Fame (Kareem Abdul-Jabbar, Wilt Chamberlain, Moses Malone) or will soon be inducted (i.e. Michael Jordan, Hakeem Olajuwon, Karl Malone Reggie Miller). Only Gary Payton, Tom Chambers and Mitch Richmond among the 30 aren’t locks for Springfield with The Glove having the most realistic chance to gain entry.
리그 역사상 단 30명의 선수들이 커리어 통산 20000점이상을 올렸으며, 이중 거의 모든선수가 이미 HOF에 헌액되었으며 (압둘자바, 체임벌린, 모제스말론 등), 아니면 곧 헌액'될' 선수들 (조던, 드림, 칼말론, 그리고 레지밀러 등) 이다. 30명중, 게리페이튼, 톰 쳄버스, 그리고 리치몬드만이 아직 입성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나마 Glove 가 가장 근접해 있다고 할수 있겠다.
When King was healthy, he was on par with the most dominant player of the mid-’80s -- Larry Bird, who went on a historic three year MVP run in ’84, ’85 and ’86. King earned All-NBA First Team honors in two of those seasons and even was recognized as the NBA MVP by The Sporting News in 1984, which was voted by NBA players. They selected King, not Bird.
BK가 건강했을 당시에는 80년대 중반의 가장 도미넌트 했던 래리버드와 동급으로 평가 받을 정도의 선수였다. 래리버드는 84년부터 86년사이에 MVP 삼연패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이러한 세 시즌중, 무려 두시즌에서 Bernard King은 All-NBA First Team 에 선정된다. (*역주: 다시한번 제 짧은 지식이 드러난 순간입니다^^;; 켑인가넷. 님의 지적처럼 이당시에 BK가 버드를 밀어내고 선정된게 아니라. 같이 포워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뜻이네요~) 퍼스트팀 선정 뿐만아니라, 1984년 NBA 선수들을 상대로 실시한 MVP 투표에서는 버드가 아닌 BK가 선수들의 MVP 로 선정되었다.
King played in an era when forwards ruled the NBA. With all due respect to Magic and Michael, the forward position reigned supreme in the ’80s. Julius Erving, Alex English, Kevin McHale, James Worthy, Mark Aguirre, Kiki Vandeweghe, Adrian Dantley, Dominique Wilkins, Marques Johnson and an up and coming Charles Barkley all headlined yet no forward was more prolific or unstoppable in any one game than King.
킹은 포워드들이 NBA를 주름잡던 시대에 플레이했던 선수였다. 가드포지션의 매직과 조던도 훌륭하긴 하지만, 80년대는 분명히 포워드들의 시대였다. Julius Erving, Alex English, Kevin McHale, James Worthy, Mark Aguirre, Kiki Vandeweghe, Adrian Dantley, Dominique Wilkins, Marques Johnson, 그리고 바클리 경 까지 모두 한가닥하는 인물들이었지만, 그어떤 선수도 킹보다 도미넌트 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So, why isn’t a player who shot 50 percent or better from the field for seven consecutive seasons given more consideration?
도데체 왜 7시즌 연속으로 5할이상의 야투율을 보여준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하는가?
Why isn’t a player who posted back-to-back 50-point games against the San Antonio Spurs and Dallas Mavericks (on the road) in the Hall?
스퍼스와 매버릭스를 상대로 백투백 50득점을 올렸던 선수가 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하는걸까?
“Bernard went toe-to-toe with every small forward in this league,” said Wilkins. “How many people do you know gets 50 on back-to-back nights.
"버나드킹은 리그의 모든 스몰포워드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보여주었다." "당신은 백투백으로 50득점이상 올린 선수를 몇명이나 알고있는가?" 도미닉이 말했다.
There aren’t many people that do that, especially in our era when you can hand check, elbow and there weren’t flagrant foul calls. That tells you how good he was.”
플래그런트 파울 콜도 없도 없었으며, 핸드체킹과 엘보우가격등이 모두 가능했던 우리시대에는 특히나 더 힘든 기록이었다. 이러한 기록이 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가?"
Remember the 1984 Eastern Conference Semifinals between Boston and New York? The Celtics who went on to win the championship that season couldn’t win a game at Madison Square Garden and needed all seven games to eliminate the Knicks. King averaged 34.8 points in that postseason, which included the Knicks’ first-round series victory over the Detroit Pistons.
1984년, 보스턴과 뉴욕의 동부결승을 기억하는가? 그해 리그의 우승팀인 보스턴은 뉴욕의 홈인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쳐야 했다. 이때 포스트시즌에서 BK는 무려 평균 34.8득점을 올렸다. 이 기록에는 첫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를 물리치며 올린 득점도 포함되어있다.
Why isn’t the man who tore his anterior cruciate ligament in his right knee only to bounce back to average 28.4 points still waiting for the call? And successfully change his style of play from feared post-up player to feared face-up player.
앞쪽십자인대를 파열당하는 부상을통해서, 도미넌트한 포스트업 플레이어에서 페이스업 플레이어로 스타일을 바꾸며, 그래도 28.4득점 (;;) 이라는 기록으로 컴백한 위대한 선수가, 어떠한 면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 부족한가?"
Since the Hall of Fame rightfully honors basketball at every level and not solely at the professional, look at King’s collegiate career at the University of Tennessee where he starred
alongside Ernie Grunfeld --- 26.4, 25.2 and 25.8 points per game in three seasons for a 25.8 career average.
명예의전당의 기준이 프로선수 뿐만 아니라 다른 커리어도 포함함으로, 킹의 대학교 시절 기록도 살펴보자. 그는 Ernie Grunfeld와 함께 University of Tennessee의 스타였으며, 26.4, 25.2, 그리고 25.8 평균득점을 올리며, 대학 커리어 평균 25.8득점을 기록했다.
“The Ernie and Bernie show, we played them when I was at UCLA, and those guys were great,” said Kiki Vandeweghe.
그당시 UCLA 소속이었던 키키 벤더웨이의 말을 빌리자면, Tennessee의 Ernie 와 Bernie 콤비는 환상적이었다고 한다.
Perhaps Johnson retired too early at age 35 for him not to receive stronger consideration. DJ was not only one of the premier defensive guards of his era (see Magic Johnson shut down job in the ’84 Finals), earning NBA All-Defensive First Team honors six times and was certainly more than capable of lighting it up on the offensive end when called upon (see 32-point performance in Game 4 of the 1979 Finals between Sonics and Bullets).
어쩌면, Johnson의 경우에는 35살의 나이로 조금 이르게 은퇴했다는 점이 선정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DJ 는 엄청난 수비력을 보유했던 가드였다. (84년도 파이널에서 매직존슨을 봉쇄해버리는 모습을 꼭 보길 바란다.) 뛰어난 수비력을 반증하듯, 그는 무려 6번이나 디펜시브 팀에 선정되었다. 또한, 그는 수비력만을 갖춘 반쪽짜리 가드가 아니었으며, 팀이 필요할때는 공격적인면에서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79년도, Sonics와 Bullets의 파이널에서 32득점을 올리기도 하였다.)
“Dennis Johnson defines competitive greatness,” said Walton.
빌 월튼 曰, "데니스 존슨은 그의 뛰어난 경쟁심에서 위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He was at his best when his best was needed. He always made the biggest of shots. He always guarded the toughest opponent. The Boston Celtics and Larry Bird have the ’84
and ’86 championships because of Dennis Johnson, who the Celtics had to acquire so they could beat Philadelphia and the Lakers. Without Dennis Johnson, those banners would
not be there.”
"그는 항상 팀이 필요로할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었죠. 팀의 빅샷들은 항상 그의 손에서 터지곤 했습니다. 또한, 상대팀의 에이스들을 봉쇄하는 스탑퍼 역할도 수행했었구요." "데니스 존슨이 없었다면, 아마도 셀틱스와 래리버드는 84년과 86년에 우승을 이루지 못했을거에요. 필라델피아와 레이커스를 꺽기 위해 데니스 존슨은 꼭 필요한 존재였으며, 그가 없었다면 셀틱스홈에 걸려있는 우승배너들또한 존재하지 못했을겁니다."
Have off court problems haunted King’s election? No doubt. Should it prevent him from entering? Absolutely not, especially since past transgressions aren’t an official criteria for
entry.
그렇다면, 코트외적인 요소가 킹에게 문제가 되었을까요? 의심할 여지가 없죠. (*역주: 여기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 당연히 적용되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당연히 코트 외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는 뜻인지 애매모호하네요. 아마도 전자가 맞을듯 싶은데..고수님들께 도움요청합니다. 코트 외적인 면에선 킹은 어떠한 선수였나요?) 이러한 문제들이 그의 명예의전당 입성을 막아야 하는가? 당연히, 절대 아니다. 코트외적으로 위배했던 과거의 일들은 공식적인 HOF 선정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For whatever reason, people get overlooked and I can’t explain it,” said Wilkins. “I don’t know. But the funny thing is, his peers know. They know what Bernard King meant to this
game. They know what he did to players in this game. People at the small forward position, guys did not want to play against Bernard King because they had to work too hard. He
was relentless.”
윌킨스 曰,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상에는 과소평가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왜 그렇게되는지 이해가 안가요. 하지만, 재밌는 점은,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의 가치를 알아본다는 점이죠. 그들은 버나드킹이 농구라는 게임에서 어떠한 존재였는지 잊지 않고있어요. 동시대의 스몰포워드 들은 버나드킹을 잊을수가 없겠죠. 그들이 킹과 매치업되었을때는 죽어라고 뛰어다녔어야 했으니까요. 킹은 그의 매치업 상대들에게는 막을수 없는 악몽같은 존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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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괴물맞죠?ㅎㅎ..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구요.
조만간 또 찾아뵙겠습니다~
*첨부자료 : BK 와 DJ의 커리어 스탯입니다*
Nickname: DJ
Height: 6-4
Weight: 200 lbs.
Honors: NBA champion (1979, '84, '86); NBA Finals MVP (1979); All-NBA First Team (1981); All-NBA Second Team (1980); All-Defensive First Team (1979-83, '87); All-Defensive Second Team (1984-86); Five-time NBA All-Star 1979-82, '85).
첫댓글 보자마자 bk love가 떠올랐습니다
bk ㅋㅋ 난 왜 김병현이 떠올랐을까 ㅋ
김병현 , 김대중
이럴수가 김대중대통령이 안떠올랐다니...ㅎㅎ
저도 BK LOVE, DJ는 대중
'컴백플레이어오브더이어'란 것도 있었나요? 처음보는 상장...
80년대 초반에 있었던, 현 Most Improved Player 상의 전신입니다. 일년간 부상등 여러가지 이유로 제대로 뛰지 못했던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며 컴백했을 때 주는 상이었는데, 약물등 좋지 못한 이유로 한 시즌을 날려버린 선수들이 이 상을 탐으로써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되어 총 5명의 수상자만 배출하고 폐지됐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BK는 지금 메이저리거입니다. 수정부탁드립니다^^
아..다시 복귀하였나요? 애리조나에서 방출된뒤 어디로 복귀하였는지..?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갔습니다^^
병헌하고....닥터J요..ㅋ
222222
Berger King과 데이먼 존스가 떠올랐습니다.-0-
버드는 데뷔이후로 88년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올NBA퍼스트 팀에 올랐습니다. 물론 킹과 버드가 동시에 퍼스트 팀 포워드 자리에 올랐단 거겠죠. 올 NBA팀은 포워드-가드-센터 포지션 구분을 하지 굳이 PF-SF로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올해 둘다 PF인 노비츠키와 던컨이, 몇년전만 해도 둘 다 PF인 가넷-던컨이 퍼스트팀에 올랐죠
헉!! 켑인가넷님 좋은지적 감사드립니다. 가넷과던컨이 같이 퍼스트팀에 선정되어왔단걸 잘 알고있었는데, 번역하는동안 잠깐어떻게 되었었나봅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제가 지적하느라 눈이 벌게서 좋은 글 감사하다는 말을 잊었군요 -문젭니다 ^^;;- 솔직히 킹, 득점력이 좋고 부상후 성공적으로 재기한 선수로만 알고 있었는데, 버드와 함께 퍼스트 팀에 오를 정도의 괴물이란거 처음 알았습니다. 참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다는 ..허허
BK는 김병현이죠. ㅋㅋ
김병현, 김대중 ㅋㅋ
NBA 매니아칼럼 게시판에 신무학 님께서 1654번에 버나드킹과 관련된 게시물을 올려주셨었네요. 같이 읽어보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김병현선수와 단테 존스
22222222222
정말 그리운 선수들입니다. 데니스 존슨은 거의 혼자 힘으로 1979년의 시애틀 수퍼소닉스 우승을 이끌어냈던 선수입니다. 물론 그 팀에는 거스 윌리암스나 잭 시크마와 같은 올스타들이 포진해 있었지만 공수 양면에서 팀의 심장은 데니스 존슨이었습니다. 이 선수의 83년 보스턴 영입을 추진했던 것이 래리 버드였는데, 그 이유는 셀틱스가 81년에 우승을 한 뒤에, 82년에는 식서스의 슈팅가드 앤드류 토니에게 크게 당해 떨어졌고, 83년 플옵에서는 밀워키의 시드니 몽크리프를 막을 선수가 없어서 또 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버드의 예상대로 데니스 존슨은 상대방 슈팅가드를 셧다운 시키면서 84년 셀틱스 우승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버나드 킹은 어빙과 버드가 이구동성으로 '가장 두려운 스몰 포워드'라고 말해 이채로웠던 적이 있습니다. 립써비스는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그 정도로 1984년과 1985년의 킹은 무서웠습니다. 부상때문에 그 실력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지만, 이 선수가 무릎만 온전했었다면 80년대의 농구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을 선수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전문가들이 버드와 어빙을 역대 최고 스몰포워드 반열에 올려 놓지만 80년대 중반만 해도 이 세 선수는 동포지션에서 호각지세였습니다. 그리고 게임장악력의 "체감도"면에서는 84년과 85년의 킹이 셋 중에서 단연 최고였습니다.
저도 김병현.김대중
김병현,김효범(브라이언 킴) 단테존스 ㅋㅋㅋ
김병현 김대중
Dr.J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