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 일을 하면서 저녁에 무얼 할꺼냐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래서 모텔에 가서 목욕도 하고 편히 쉴거라고 했더니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이상한 상상들을 했다.
<거긴 왜 가는데?
뭐하러 가는데 ? 부부끼리 그런델 왜 가는데......>
아니 모텔에 잠자고 쉬러 가지 왜 가냐구?
보통 사람들이 이렇게 은근 야한 생각을 하며 불륜남녀들이나
가는 퇴패업소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모텔
그런 모텔에 모텔에 대한 나와 남편에 대한 생각은 남들과 약간 다르다..
나와 남편이 모텔에 가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런 쉼의 장소이다.
내가 스무살 시절에 외갓댁에서 오색이라는 설악산 자락에다
산장을 차렸다.
그 시절에 별장을 짓겠다고 사 놓으신 땅 근처에서 온천이 나오자
온천장겸 산장이었다.
객실이 20여개 그 중에는 특실이라고 하여 보료가 깔려 있고
뒤에는 산수화가 수 놓인 병풍이 쳐 있었다.
식당도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전망좋은 공간도 있었다.
거기에 공직에 계시다 퇴직하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방도 2층에 자리하고 있어서 외가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나는
자연스레 외가를 따라 그리로 갔고
거기서 일을 보게 되었다.
카운터 일을 보았으나 급할 때는 식당일도 돕고 청소도 하고
차 마시는 손님이 오면 차도 내고
당귀차등 약초차도 직접 달여 손님들에게 내기도 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점잖은 외가댁 지인들이 많았고
건강이 안 좋아져서 쉬러 오는 분들은 한달씩 많게는
서너달씩 계시다 가셧다.
또한 성당에 다니는 할머니와 외삼촌 내외덕에 주로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이 쉬러 오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야말로 말 그대로 온천장이며 산장의 역할이 맞은 거였다.
결혼을 하고서도 거의 2년여를 남편과 그곳에서 일했으니
모텔이나 온천장등이 나에게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쉼의 장소가 확실할 것이다.
지난 한주간 아니 그 지난주간 후반부터 나는 하루 만보를
넘기며 열심히 일했다.
날씨가 추워 지면서 여름에 임시로 해 놓은 씻을 수 있는 목욕탕이
물이 얼을 정도로 추워서 도저히 샤워도 할 수가 없었다.
샤워를 한다고 쳐도 다시 밖으로 나와 방으로 들어 가는
곳까지 가려면 차가운 찬바람에 감기가 걸리기 딱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참았다가 한방에 따끈한 모텔방에서 아주 목욕을 할 판이었다.
아들과 만나 저녁을 먹으며 아들이 물었다.
어떤 곳을 갈 것이냐고
특별히 이번에는 새로 생긴 호텔을 가 보라고 권했다.
왜냐하면 지난 월요일이 나와 남편의 29주년 결혼기념일 이었으니
하루 정도는 좋은 곳에서 자 보아도 될만 하다는 아들의 주장이었다.
조금 마음이 동했다.
외국에 나가서는 좋은 호텔에서 자 본적이 많았으나
국내에서는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해 보지 못했다.
1984년 11월 25일
남편과 결혼식 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방지축 새댁이 되었는데 .......
처음 예약을 한곳은 수안보온천장
지금 생각하니 늘 온천장에 살았으면서 신혼여행지를
그리로 잡아준 시숙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건줄만 알고 가던 길이었다.
좀 사는 집은 그래도 경주나 부산으로 가고
더 괜찮은 경우는 제주도를 갔다고 하나
그 때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안해 보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나마도 멀미가 나서 신혼여행을 가다말고 중간에 내려야만 했는데
그래도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하고 이천에 새로 생긴 호텔에 차를 대 달라고 했다.
아마도 렌터카 였던 듯 싶다.
여주에서 결혼식을 했으니 지금은 10분이면 닿는 이천까지
그 때만해도 택시를 타고도 40분 이상을 갔던 때였다.
렌터카를 몰던 이는 아마도 횡재를 했지 싶다.
어차피 혼주에게서 수안보까지 경비를 다 받았는데
그리 가까운 곳으로 갔으니 .......
그런데 처음 가 보는 호텔비는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아마도 온천장의 20이상 했지 싶다.
짐을 끌고 호텔을 나와서 시내에 있는 호텔까지 걸어 갔다.
거기는 그래도 10배정도
그런데 그것도 아까워서 결국은 허름한 모텔에 들어가 신혼첫날밤을 지냈다.
그 호텔비를 아껴서 돌아 오는 날
우리는 살림장만을 제법 햇다.
텔레비젼을 놓을 수 있는 장식장
세탁기 등등.......
신혼살림에 왜 세탁기가 없었는고 하면
세탁기는 씻어 버린다고 사 가지고 가면 안되는 품목이었다.
남편 구두는 왜 안 사 주는고 하면
신고 도망 간다고.......
하여튼 그런저런 속설 때문에 세탁기를 못 산것이
아쉬워서 그 호텔비를 아껴 세탁기를 샀던 것은 오래도록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잘한 일로 기억이 된다.
아무튼지 50년을 살면서 우리나라의 호텔에는 아직 자 본적이 없으니
호텔이 어떤가 궁금도 하고
아들 말따나 이 나이에 호텔에 한번 자 보는 것도 괜찮은 듯 싶어서
알아 보았더니 역시나 내가 가는 모텔비의 열배가 넘었다.
패스~
결국은 본래 우리가 잘 가는 모텔로 결정했다.
몇년전부터 이용하는 모텔은 아직도 가격이 3만원이다.
주말에는 3만5천원이라고 써 있기는 하나
단골이라고 전과 같이 해 주었다.
가격은 싸나 방 따뜻하고 뜨거운 물 잘 나오고 텔레비젼이며
컴퓨터까지 있으니 쉬고 목욕하기는 딱이다.
나는 이 쉼을 위해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다.
오직 목욕하고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푹 자고
쉬어가기 위해서.......
하다 못해 화장품 하나도 안 가져온 것이다.
방도 아예 창이 없는 곳으로 달라고 했다.
햇볕이 안들어 오게.......
들어 가자마자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
욕조 가득 물을 받아서 몸을 담그었다.
정말 편안하고 따뜻했다.
오늘 아침
열시까지 푹 자려던 내 계획은 다섯시도 안되서
잠이 깨서는 눈이 말똥말똥 해졌다.
거의 한시간에 걸쳐서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고
누구에게 뭐 보내줄것 잊은 것 없나 어둠속에 앉아서
차분히 생각도 했다.
다시 목욕물을 받아 놓고 또 목욕을 하고.......
그리고 시계를 보니 아직도 일곱시도 안 되었다.
컴퓨터를 켜 보았다.
읽는 것은 되는데 자판 입력이 안된다.
결국 포기
텔레비젼을 켰다.
남편이 자고 있으니 조그맣게 켜 놓아도 소리에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 뒤척여서 그도 꺼 버렷다.
남편도 나 못지않게 피곤하고 힘든 요 며칠을 보냈다.
날씨는 점점 추워 지고 집수리는 생각 보다 느려지고 .......
남편은 정말 곤히 잘도 잔다.
이번에는 가방을 꺼내 정리를 했다.
뒤적뒤적 차곡차곡 내 가방에는 별아별 것이 다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책이라도 한권 가지고 올걸
약간의 후회가 되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시험공부 할 일이 있었다.
사실 다음주가 시험인데 나는 이번에 하나도 공부를 안했다.
뭔지 모를 학교에 대한 불만을 시험공부를 안하므로써 누구에겐가
반항하고 싶었다.
어린 사춘기 소녀마냥 반항하고 싶었다.
그 제도 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를 하다가도 이해가 안되었다.
늘 조금씩 준비하던 시험을 아예 책도 안 펼쳐 보고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도 안 갔으니 가뜩이나 어려운 시험을 잘 보기는 틀린 일이다.
그러므로 해서 아무튼지 성적을 뚝 떨궈서 괜히 반항을 해 보고 싶어
아예 책도 안 들여다 본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가까운 모텔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
3년동안 같이 공부를 한 학우 현영씨가 시험공부할 키워드들을
복사해 가지고 가지고 왔다.
스스로 문제까지 만들고 필기한것을 복사해서 꼼꼼히 철을 만들어 왔다.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엊저녁까지 그래도 안 보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남으니
안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아무튼지 그렇게 모텔에서의 내 아침이 다 채워졌다.
쉼을 얻기는 얻었다.
공부도 했다.
목욕도 마음껏 했다.
점심은 고향친구 내외가 오랜만에 쉬러 나왔다고 보리밥을 대접해 주었다.
잘 먹고 ~
저녁은 뜻하지 않게 옙분님과 강선생님 덕에 불고기와 생선백반을 먹고
이야기가 되어 황둔으로 가서 함께 영화를 보았다.
4000원을 내고 넷이 보았으니
즐거운 쉼의 시간의 연장이라고 해야지
이런 저런 덕분에 잘 쉬고 늦은시간 집으로 돌아 왔다.
24시간 잘 놀았다
내 몸도 잘 쉬었으리~
오랫만에 늘 만보가 넘던 내 걸음수가 3000보 대에 머물렀다.
첫댓글 나도 한번쯤 모텔에 가서 푹 쉬고 와봐야겠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