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FIBA(국제농구연맹, International Basketball Federation)는 처음으로 프로 선수의 올림픽 참가를 허용했다. 이에
미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대비해 스포츠 역사상 가장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한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존 스탁턴, 클라이드 드렉슐러, 스카티 피펜, 래리 버드, 찰스 바클리, 칼 말론,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
빈슨 등 12명으로 구성된 드림팀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크로아티아와의 결승전 117대 85 승리를 비롯 8경기에서 평균43.8
점차로 승리를 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상대가 승리라는 단어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경기를 보여주었다. 바르셀로나에 입성하기 전부터 당연히 세계 최고
라는 자만심을 가질 수도 있었고, 경기를 하는 동안에도 확연한 실력차를 보면서 방심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고라는 자신감은
있으되 방심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드림팀의 유일한 패배, 단지 몇 명의 사람만이 지켜보았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그런 경기가 있었다.
올림픽을 한 달 정도 남겨둔 1992년 6월 24일, 샌디에고에 훈련캠프를 차린 드림팀은 며칠째 멤버끼리만 연습을 하고 있었다.
척 데일리 대표팀 감독은 승부욕을 자극할 수 있는 연습 경기가 필요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드림팀의 연습 상대로 대학 선발팀을
불렀다.
페니 하더웨이(20세, 멤피스 대학), 그랜트 힐(19세, 듀크), 바비 헐리(20세, 듀크), 자말 매쉬번(19세, 켄터키), 앨런 휴스턴(21
세, 테네시), 에릭 몬트로스(20세, 노스 캐롤라이나), 로드니 로저스(20세, 웨이크 포레스트), 크리스 웨버(19세, 미시건)
이렇게 8명으로 선발된 대학 선발팀은 코트 위를 빠르게 누비고, 골 밑을 파고들다가 외곽으로 연결해 많은 3점슛을 던지는 유럽
팀을 표방해 구성된 팀이었다. 그리고, 1984년과 1988년 올림픽 대표팀에서 코치로 뛰어 국제 무대 경험이 많은 조지 래벌링이
감독을 맡았다.
척 데일리 감독의 요구대로 대학 선발팀은 공을 골 밑까지 몰고들어가 바로 외곽으로 연결해 3점슛을 던지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
전략은 제대로 적중하여 20분 연습경기에서 대학 선발팀은 62대 54로 드림팀을 눌렀다.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일어난 것이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올림픽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 뜻밖의 일격을 당한다면 그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고, 드림팀의 전설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경기에서 7개의 3점슛을 성공시킨 앨런 휴스턴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렸다. 그리고, 정말 고요했다. 드림팀은 호흡
을 맞춘 지 얼마되지 않기도 했지만, 많이 방심한 듯 보였다. 처음에는 그들을 상대로 경기를 한다는 설레임과 경외심으로 뛰어다
니는 것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몇 개의 슛이 그물을 통과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드림팀이 결코 바라지 않았던 일이 일
어나게 된 것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패배로 드림팀은 엄청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척 데일리는 원하는 바를 이룬 듯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드림팀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장담을 그 누구도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 체육관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모든 것을 짐작하게 했다.
다음날이 되었다. 어제 경기로 눈빛부터 달라진 드림팀 선수들이 하나둘 체육관으로 들어왔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이 세 사람은 특히나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번의 20분 연습 경기가 펼쳐졌다. 말그대로 무차별공격이 시작되었다. 어제와는 판이하게 다른 팀이었다. 드림팀이
38점차로 대승을 거두었다. 척 데일리 감독은 경기 시간을 10분 더 연장시켰고, 경기는 56점차로 끝이 났다. 조던은 공격에서
맹활약 했을 뿐만 아니라 앨런 휴스턴을 꽁꽁 묶어버렸다.
드림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그만큼 대학 선발팀은 자신들의 몫을 충분히 한 것이었다.
그 경기를 마지막으로 샌디에고에서 있었던 5일 동안의 훈련이 끝났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단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웃음을 보였던 드림팀의 머릿속에는
그들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어린 선수들이 잠시 떠올랐을 지도 모를 일이다.
첫댓글 역시, 승부욕 대단하군요.. 대학팀,, 절대 약하지 않아..-_-;; 대충 읽다가 놀랬다는,, ㅋㅋ;;
이 얘기 들었는데, 20분 연습경기였군요. 역시 방심하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와...영화같다
이당시 대학 선발 멤버들..다들 유망주였지만 특히 웨버, 페니, 힐의 데뷔 후 센세이션은 엄청났죠 뭐. 차세대 슈퍼스타 정도가 아니라 데뷔 시점부터 슈퍼스타였으니..그러나 이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부상악령..ㅠㅠ
소름이 돋는데요 허허
드림팀 대 올스타팀이었네요. 페니-휴스턴-힐-매쉬-웨버... 한번쯤 이길 만도...
흠 방심했다고 해도 그들에게 이긴 대학팀의 실력도 대단하고.. 그렇다고 20분 경기에서 38점 차를 내는것도 대단한데요 --; 공격 안풀릴때는 20분 동안 38점 득점하는 것도 만만찮은데. ㅎㅎ
그래도 첫 게임도 풀게임으로 했으면 드림팀이 이겼을거 같네요. 하프타임때 세수 좀 하고 와서 안드로메다 관광행 버스 태우기 시작했을듯.
이걸보니 바르셀로나 드림팀이 더 두려워 지는군요...20분짜리 한겜지고 바로 38점차 승리면 대략 60:22? 이정도 겜이 나왔다는건데....-_-a 한마디로 마음만 먹으면 이긴다?
아니..내가 좋아했던 선수들이 다 한팀이었다니..패니,휴스턴,힐,웨버...ㅠㅠ
정말 간지팀이군요 ㅎㅎ 얼굴도 다 미남이고 플레이도 멋진선수들
글 잘 읽었습니다.
오 그런일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페니 힐 웨버 휴스턴...중심으로 언급하시는데 당시 멤버였던 에릭 몬트로스와 로드니 로저스도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었습니다...바비 헐리두 마찬가지구요... 에릭은 당대 대학리그 최고의 센터였고 로드니도 작은키로 SF와 PF를 오가며 대단한 3점슛과 골밑플레이를 선보였던 선수였죠...로드니야 클리퍼스-매직에서 많은 활약을 했고 많이 알려졌지만 에릭은 셀틱스에 픽되어 피지 못한 꽃이 되었죠...
에릭은..안타깝게도 프로에 와선 이렇다 하게 보여준게 없죠..사실 대학에서도,당시 노스 캐롤라이나의 강력한 수비농구와 팀 바스켓에 맞추어진 롤플레이로 제역할을 다했을 뿐..그 덕에 결국 NCAA챔피언에도 올랐구요..NCAA우승팀의 주역인데도,93년 드래프트의 조지린치나 94년의 에릭 몬트로스 모두 드래프트에서 그리 좋은 픽을 받지도 못했죠..린치는 건실한 수비수로 장수했지만,에릭은 금방 저니맨화 되었죠..
에릭 몬트로스는 로터리였는데.. 94년 1라운드 9번~
정신이 확실히 없긴 없는지..예전에 알던것도 다 까먹고,그나마도 마구 헷갈리고..지적 감사합니다-.-
웨버와 하워드를 꺽어버렸던 몬트로스군요..몬트로스나 오배넌 클리브스 같은 선수들은 워낙 안따까운 선수들이죠... 뜬금없이 레딕 화이팅~^^
저 경기 끝나고,조던이 바비 헐리를 그렇게 극찬했다고 하죠..바비 헐리를 지목하며,코치 K에게 "듀크가 왜 강팀인지 이제야 알겠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생각해보니,당시 얼마전까지만 해도 헐리와 힐의 동료였을 레이트너는 드림팀의 일원으로 뛰었네요..헐리도 참 안타까운 선수죠..운동선수가 아닌,한 생명이 왔다갔다 할 만한 대형 교통사고를 루키시즌에 몇경기 뛰지도 못하고 당했으니..복귀했지만,결국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리없이 사라져버린..흔히 말하는 '듀크의 저주'의 시작이죠..레이트너의 조로..힐의 부상..제이 윌리암스의 오토바이 사고..
매직,버드,조던의 저주를 한몸에 밭아서 모두 부상에 시달린걸까..
몰랐던 일.. 멋지네요
정말 드림팀1 다큐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네요-바로 지릅니다ㅋㅋ
바비 헐리,,,,생각나네요,,,,아마 사고가 없었다면, 우린 제 2의 스탁턴을 찾지 않았을지도,,,,,그립네요,,,그때 선수들이,,,
96년도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뻔 했죠. 당시는 공개로 대학선발팀과 드림팀과 붙었었는데... 정말 간신히 드림팀이 이겼습니다. 당시 브레빈 나이트와 팀덩컨은 정말 엄청났죠. 특히 덩컨은 샤크나 올라주원과 붙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드림팀의 조직력은 개판이었고, 피펜과 바클리만이 제 몫을 해주었습니다. 아마 이 경기가 끝난 후에 드림팀 또한 긴장하며 많은 준비를 했으리라 생각되네요.
그 경기 AFKN에서 라이브로 해주었는데..던컨의 플레이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대학 최정상급 인사이더였지만,그래도 NBA의 벽은 높을거라 생각했는데..(설렁설렁 뛰긴했지만)3대 센터를 상대로 대등한,어떤 면에선 우세의 경기력을 보여주었죠..저도 이경기 보고 던컨은 NBA 입성 즉시 탑클래스 인사이더,즉시 올스타감이라고 확신했구요..
이거 예전에 XXL인가 그 잡지에서 읽었었는데 ㅋ 무지 충격이었다는 ㅋ 드림팀이 패할줄이야 ,,, ㅋ 오랜만에 들으니 또 신선하네요 ㅋㅋ 페니 힐 웨버의 조합이라 ㅋ
오... 역시 페니... 눈에 띕니다.
저때의 페니 힐 웨버조합이라 으야 멋지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