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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樂民(장달수)
연구윤리교육 강의안
- 학술물의 표절예방을 중심으로 -
이일호 박사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 일러두기: 아래 제시된 내용은 남형두, 표절론: 표절에서 자유로운 정직한 글쓰기, 현암사, 2015의 내용 중 핵심적인 내용 위주로 정리한 것입니다.
1. 표절의 정의
가. 표절(plagiarism)이라는 술어의 기원
표절은 남의 것을 베껴 자기의 것인 것처럼 다른 학자, 학문후속세대 및 일반대중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표절자를 말하는 plagiarius는 라틴어에서 어린이 납치범을 뜻하는데, 로마시대 한 시인이 자신의 시를 동료시인이 자신의 것처럼 하여 발표한 일을 두고, 해당 동료를 plagiarius로 묘사하면서 표절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나. 학술적 표절
표절은 연구 데이터의 조작과 함께 전형적인 학문적 부정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학자는 학술적 결과를 통해서 학문과 대중에 기여하고, 학문의 연속성과 진보성을 가져오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직업군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학문의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상태로 기록하고, 전달하며, 축적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술적 표절의 핵심은 남의 학술적 성과를 자기의 것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인용(직접인용, 간접인용, 패러프레이징)을 하면서 출처를 표시하지 않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 표절의 해악(피해자론)
가. 정보의 공공성과 지식
정보는 공공재(public good)적 성격을 갖는다. 비단 정보를 비밀로 하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정보를 소수의 사람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식도 정보라는 형식으로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정보사회에서 지식을 특정인의 공로로 삼기는 어렵고, 이러한 이유에서 표절규범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학문적 글쓰기에 있어 표절하지 않는 것은 윤리와 학자로서의 양심의 문제로 학문 자체에 대한 윤리의식이 급변하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종종 Copy/Paste 문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중문화가 그렇게 바뀌었다거나 예술영역에서 그러한 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문화가 학계에까지 침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 피해자론
“표절은 나쁘다”라는 말은 늘 있었지만, 표절이 나쁜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표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기초가 된다. 표절의 해악은 표절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면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표절은 일단 학자들을 속여서 다른 사람의 지식과 아이디어가 자신의 것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주어 학문세계를 혼탁하게 한다. 특히 남의 아이디어를 차용하면서 자신의 것처럼 행세한다면, 제3, 제4의 학자들이 이를 표절자의 아이디어로 여겨 정작 정직한 학자/선각자의 업적이 드러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둘째, 표절은 학문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나쁜 습관을 갖게 하고, 본인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아무리 학교에서 표절예방과 표절윤리에 대한 교육을 하더라도 모범이 되는 학술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실천이 없는 교육으로 정직한 학문문화가 선순환될 수 없다.
표절은 대중에게 큰 실망감을 주고, 학문세계에 대한 평판을 저하시킨다. 미디어를 통해 표절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대중은 표절자 개인을 넘어, 대학, 연구소, 해당 학문분야, 학계 전반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소속집단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찍으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낙인은 지나친 것이지만, 그만큼 학자들은 단순한 전문가가 아니라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직업군이라는 인식은 늘 필요하다.
3. 무엇이 표절의 대상인가?
가. 문제제기: 지식은 사유화될 수 있는가?
앞서 지적한 정보의 공공성 논의와는 별개로 혹자는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식의 공공성이라는 논거를 통해 반박하고 있다. 지식은 계속 누적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개개인은 이렇듯 누적된 지식에 작은 부분을 기여하고, 이것이 모여 새로운 학문분야가 형성된다. 하지만 이러한 학문의 “누적적 성격”이 표절이나 베끼는 행위를 정당화시켜주지는 못한다. 표절하지 않는 것, 즉, 정립된 인용방법에 따라 인용하고 출처를 밝혀주는 것은 해당 지식이 다른 사람의 ‘소유’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라기보다는 해당 지식이 나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님을 나타내는 일종의 겸손과 겸양의 행위이다. 이는 유수한 역사를 통해 학자가 가져야 하는 덕목과 불문율로 여겨져 왔으며, 우리는 –다소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더라도- 이러한 전통을 지킬 책무를 지는 것이다.
나. Copy/Paste만 나무랄 것인가?: 번역표절의 문제
종종 외국 학자들의 저술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자신의 저술에 끼워넣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외국어의 보급이 확산되고, 학자사회에서 상호비판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이러한 관행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번역하여 베끼는 현상은 종종 문제가 되고 있으며, 수면 아래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일도 빈번하다.
아무리 명번역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성과가 되지 않는다. 원전을 명시하고, 자신이 번역했다는 것을 밝힌 경우에 번역자로서 또는 선구자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저자로 하는 것은 남을 속여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즉, 위에서 제시한 피해자론의 관점에서 표절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모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 사상과 아이디어의 중요성
위에서 제시한 피해자론의 관점에서 표절은 비단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몇 페이지가 연속해서 동일한 경우, 한 문단 혹은 한 문장 전체가 같은 경우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분야에서 일반지식(general knowledges)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을 가져다 쓰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일반지식이란 너무나 자명해서 누구의 연구성과로 특정하기 곤란한 영역을 의미한다.
논문에 있어 아이디어는 때때로 표현(문장, 논의의 구체적 구성 등)보다 중요할 수 있는데, 해당 아이디어가 본래 누구의 것이었는지 밝히지 않는다면, 이는 짜깁기 논문이나 이른바 표지갈이와 같은 해악은 없을지라도 다른 학자들, 학생들, 일반대중을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속였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은 매우 크다.
한편 정식의 학술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더라도 –대중에 공개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세미나, 워크샵, 콜로키움, 회의 등에서 제시된 아이디어 등 역시 자신의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아이디어는 착안하여 애초에 발표한 사람의 업적으로 보는 것이 옳고, 다른 사람은 인용과 출처표시를 통해 이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논문이나 단행본만이 아이디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라. 사실도 보호해야 하나?
종종 다른 사람이 고증을 통해 조사한 자료, 인터뷰에 의해 수집한 자료,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 받은 내용들을 학술적 논의에 포함시켜야 할 때가 있다. 특히 문서로 되어 있지 않은 자료들을 인용/출처표시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때 문제된다. 이들은 출처에 따라 다소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직접 조사하여 반영한 경우에, 또 직접 인터뷰를 실시한 경우에 사실조사나 조사의 대상이 된 사람이나 인터뷰에 응한 사람을 일일이 명시할 필요는 없다. 단지 사실조사/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사실과 정황을 알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면 족한 것이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인터뷰한 자료, 설문조사를 한 자료들을 다수 참고하면서 출처표시를 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를 이용한 경우에는 해당 사실을 적시해두어야 한다. 그것이 학문적 논의와 향후 연구에 기여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어떠한 자료를 수집해둔 것을 보고, 그곳에서 좋은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 원칙적으로 출처표시를 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도서관을 출처로 표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4. 얼마나 표절해야 문제되는가?
언론에서는 “경미한 표절”, “실수로 인한 표절”, “비의도적 표절”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는 표절의혹을 받는 사람이 주로 하는 항변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과연 어떠한 단계에 이르어야 표절자로 비난 받아야 하는지 문제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표절여부와 표절에 대한 징계나 제재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즉, 작은 부분을 실수로 표절했다고 하더라도 표절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표절까지 제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표절판정이 아니라 판정결과에 대한 평가의 문제이다. 가령 표절은 발견되지만, 졸업을 취소할 정도의 심각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판단은 가능하다. 이는 학칙, 근무규정, 출판계약, 윤리규정 등에서 정해야 할 문제이고, 아무리 경미한 표절이라도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더 이상 경미한 것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비의도적으로 한 표절 역시 표절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경미한 표절과 다르지 않다. 다만, 경미한 표절에서와 같이 표절에 대한 제재에서 이 부분은 참작될 수 있다.
5. 표절관념은 변하는가?
모든 사회적 현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도덕관이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절관념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표절의혹을 받는 학자가 표절이 ‘관행’이었다는 호소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더욱이 일부 언론/학자/대중들은 이러한 주장에 공감하기도 하였다. 물론 학문세계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즉, 표절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때 발생한 표절에 대해서까지 비난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표절에 대한 판단은 당시 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윤리의식과 표절관념에 기초해서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표절에 대한 비난이 비단 최근에 형성된 것은 아니었으며, 우리 선조들 역시 표절을 경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또 현재의 학술사회가 표절을 용인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즉,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학문적 토대가 무너진 일부 과도기를 제외하고, 우리에게도 비교적 엄격한 표절기준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평가할 수 있다.
6. 표절과 저작권의 관계
흔히 저작권침해와 표절은 혼용되고 있는데, “음악표절”, “표절작” 등이라는 표현 속에는 보통 저작권침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에게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을 복제하고, 이를 개작할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저작자의 권리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여기에는 몇몇 제한이 따르는데, 저작권법은 인용(quotation)이라는 목적을 위해 저작물 중 일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다만 저작자, 저작물명 등 이른바 출처를 적절한 방법으로 표시하도록 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용과 출처표시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데,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인용하거나 출처표시가 되지 않으면, 저작권침해가 성립된다.
저작권침해는 대부분 표절에 해당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가져다 쓰면서도 그것이 남의 것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거나 –최소한- 학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성실함 내지 정직함을 가지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절과 저작권침해가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며, 저작권침해에 해당하지는 않으나 표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저작권법은 창작물을 아이디어와 표현으로 구별하고 있는데, 보통 아이디어에는 보호가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앞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 사상, 논증과정 자체도 –그것이 추상적인 상태로 베껴진다고 하더라도- 표절로부터 보호 받는 대상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를 출처표시 없이 이용하는 것은 표현만을 보호하는 저작권법상 저작권침해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학문윤리(표절윤리)에 의하면, 표절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저작권침해와 표절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표절이 갖는 고유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7. 표절은 어떻게 피할 수 있나?
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자세히?
논문에 따라 본문보다 각주가 많거나 일반지식에 해당하는 내용에 대해서 수십개의 문헌을 장식적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 성실성을 인정해주어야겠지만, 이러한 학자를 좋은 학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현학”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현학을 피하기 위해서 인용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논증, 견해, 연구성과에 대한 존중과 ‘글올 틍한 논의와 대화’라는 전통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 논의, 연구성과를 나의 그것과 엄밀하게 구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인용을 얼마만큼 해야 하고,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자세하게 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학문분야와 관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디까지에 이르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 독자가 인용된 문헌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은 학문분야를 넘어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재인용의 문제
재인용이란 다른 문헌에서 참고만 문헌을 직접 찾아보지 않고, 원전과 원전을 인용한 문헌을 표시한 후 원전을 확인하지 못 하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경우를 말한다. 문헌에 대한 접근성이 아직까지 떨어지고, 외국의 고전을 직접 입수하기 곤란한 우리 학문 인프라를 고려해본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원전을 읽지 않았음에도 이를 인용한 문헌을 제외하고, 마치 원전을 직접 본 것처럼 인용/출처표시하거나 원전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를 인용한 문헌만으로 출처표시를 하는 것은 표절 혹은 불성실한 학문행위가 될 수 있다.
다. 공저자/교신저자의 의무
종종 공저자로 낸 논문에 표절이 발생한 경우에 책임소재가 문제되고 있다. 각각의 영역을 나누어 따로 집필하고, 집필부분에 대해 논문에 표시해두는 경우에는 표절이 문제된 부분을 집필한 사람의 표절만 문제된다. 하지만 서로 협의와 토론을 통해 논문을 작성한 경우에 논문에 대한 책임을 전반적으로 함께 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표절을 한 사람과 이를 바로잡지 못한 사람의 책임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다른 저자의 표절을 감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교신저자, 특히 지도교수가 교신저자가 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책임이 발생한다.
8. 비전형적 표절
가. 자기표절
다른 사람의 논문/문단/문장 또는 아이디어를 출처의 표시 없이 가져오면서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이 전형적인 표절이라면, 이러한 범주와 다소 거리가 있는 이른바 비전형적 표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자신의 선행연구를 후행연구에서 사용하는 것을 자기표절이라고 한다. 자신의 선행연구를 자체를 상이한 학술지에 기고하거나, 학술지에 기고한 원고를 이후에 단행본의 일부로 삼거나 외국에 기발표한 원고를 번역하여 우리나라의 학술지에 기고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의 논문 중 일부를 발췌하여 다른 논문이나 단행본에 옮기는 것 등도 자기표절에 속한다. 자기표절에 대한 평가는 극히 상반되며, 아직까지 확고하고 일관적인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현재까지 주로 문제되는 것은 출처표시, 즉, 자신의 선행연구를 옮겨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이용하는 경우, 매우 유사한 연구이면서도 제목 등만을 달리하여 연구성과를 부풀리는 경우 등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선행연구를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학문분야에서 자기표절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를 스스로 정하고, 그 규범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주로 문제된 사안들을 피하는 것이 차선으로서 선택될 수 있다.
나. 저자 끼워넣기/바꿔치기
학문분야에 따라 명확한 기준이 다를 수 있으나 학문적 기여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도교수, 학회장, -명목상의- 연구책임자라는 이유로 논문이나 단행본에 저자로 등재되는 것은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했다는 점에서 표절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또 기존의 연구자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저자로 표시되는 것 역시 표절로 볼 수 있다.
다. 아이디어 훼손/명의도용
학자들은 종종 남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형적인 경우 외에 자신의 주장을 권위 있는 사람의 논의를 통해 강화하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 즉, 저명한 학자는 그러한 주장을 한 바 없으나 자신의 주장을 위해 해당 학자가 그렇게 말한 것으로 꾸미는 경우가 있고, 자신의 빈약하고 미성숙한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학자들을 동원하는 수도 있다.
이는 표절의 정의인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해악과 학문세계 및 일반대중이 입는 피해 측면에서(피해자론) 비난 받아야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자연과학계 및 의학계 논문에서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해악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라. 이면저술/논문상납
우리에게 유령작가(ghost writer)라는 술어는 이미 익숙한 것이 되었다.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등이 자서전이나 에세이를 낼 때, 이들이 원고를 직접 작성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 뒤에서 이들을 인터뷰하고, 부수적인 내용을 상상해서 쓰는 이면작가들이 있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학술적 이면작가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가령 제자나 학생의 논문을 가로채는 것은 –아무리 해당 제자/학생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표절이 된다. 피해자론을 통해 설명한 바와 같이 학문세계나 일반대중은 이름을 걸고 학술결과를 발표한 사람이 해당 연구를 수행했다는 점에 대해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뢰를 저버린 이면작가의 논문작성은 용인될 수 없다.
9. 표절에 대한 제재
우리나라 현행법에서 학자들로 하여금 표절을 하지 말도록 하는 규정은 없다. 표절에 대한 제재는 대체로 윤리적 비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윤리적 비난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며, 학자들은 특히 명예와 중립성이 중요하게 여기므로 윤리적 비난은 결국 법적책임을 추궁당하는 것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
물론 표절에 대한 제재는 단지 도덕적 비난에서 끝나는 것만은 아니다. 교육기관은 교원과 체결한 계약과 학칙에 근거하여 제재를 가할 수 있고, 학회는 학회윤리규정과 정관에 따라 학술지 게재취소, 손해배상, 학회원 신분에 관한 조치 등을 취할 수 있고, 학술지 및 학술서적 출판사는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과 계약해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0. 표절의 검증시효?
시효란 법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기한을 미리 정해두어 해당 기한이 경과한 후에는 문제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이다. 법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거나 국가 수사력의 분산과 비효율성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평가된다.
표절에 이른바 검증시효라는 것이 있는가? 즉, 표절행위가 있은 후 문제제기 없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표절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앞서 피해자론을 통해 본 바와 같이 표절이 갖는 악영향은 단지 몇 년의 기간만큼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표절로 인해 일어나는 학문세계 및 대중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해본다면, 시효라는 법적 수단을 표절‘윤리’에 대해서까지 적용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11. 가이드라인의 필요성
가. 학술규정의 제정필요성
각 학문분야는 고유의 합리성을 가진다. 인용방식과 표절판정에 있어서도 개별 학문분야가 갖는 고유한 성격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이 대학 분야의 학자들 모두에게 공유되는 것은 아니고, 우리의 학문적 역사가 비교적 짧고, 학문적 문화가 상이한 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 다수가 함께 구성된 개별 학문분야에서 공통의 윤리의식이나 행동양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표절논쟁을 줄이고, 표절문제가 사적인 다툼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표절규범(학문윤리규정)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표절규범은 학회의 구성원의 의견개진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단지 학회실무자에 의해 다른 학회의 규정을 다소 수정하여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모범이 될만한 논문/학술물들의 인용과 출처표시를 모니터링하고, 다양한 견해를 가진 학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나. 인용 및 출처표시 방법의 개선필요성
최근 학술지에 포함된 투고규정, 원고작성원칙, 각종 가이드라인에는 학술지의 목적에 따라 다양하고 상이한 방법으로 인용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대체로 논문을 인용하는 경우, 단행본을 인용하는 경우, 논문집을 인용하는 경우 등에 대해 형식과 예를 정해두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자료가 확산되고, 전자정보(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등이 다양하게 활용됨에 따라 이른바 비전형적인 자료와 출처가 빈번하게 사용되면서 학술지의 규정들에서 이들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렇듯 학술지의 규정들은 때때로 비현실적이거나 부실한 경우가 많다. 더욱이 이러한 인용과 출처표시의 방법을 지적하며 심사논문을 탈락시키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고,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각 학회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이는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유사한 성격을 지닌 학술분야의 학회들이 모여 타당한 인용방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통일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국외에서 개발되어 검증된 MLA, APA, Chicago, Bluebook 등 통일규정을 적절하게 변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 이른바 Impact Factor의 문제
톰슨 로이터사에 의해 주도되는 SCI/SCIE/SSCI/A&HCI 학술지에는 학술지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Impact Factor라는 것이 집계된다. 즉, 해당 학술지에 기고된 논문이 다른 논문들에서 얼마나 인용되었는지에 따라 학술지의 영향력을 평가한다. 우리나라 한국연구재단 역시 이러한 요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이른바 피인용지수를 학술지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학회지가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자신의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자주 인용할 것을 강조하면서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외국학술지에 기고하면서 자신과 동료의 선행연구를 지나치게 인용/출처표시하는 예로 인해 저널 에디터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학술지 줄세우기 관행은 없어지는 편이 낫다.
다만, 학술지가 전문성보다는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고, 오랜 역사를 통해 관련 분야에 대한 아카이브로서의 기능까지 하고 있다면, 다소의 인용과 참고를 강제하는 것 자체를 불합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더욱 바람직한 것은 동료학자들의 논의에 대한 관심과 논문을 통해 무엇인가를 소개하려고만 하지 않고, 진정한 논쟁을 통한 학문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12. 누가 표절을 판정해야 하나?
가. 객관적 판단과 제보자 보호의 중요성
표절판정은 어렵고, 표절을 판정하는 사람은 학문세계/대중 혹은 표절의혹을 받는 사람으로부터 비판과 압력을 받기 쉽다. 또 표절판정은 해당 학문분야의 일반지식을 판단할 수 있는 식견이 있어야 하고, 관련문헌에 대한 정보를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표절판정은 표절규범에 대한 이해와 학자들의 윤리의식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학문분야의 연구자, 학문윤리의 연구자, 표절방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참여하여 표절여부를 엄밀하게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표절판정은 적어도 판정시까지 비밀로 진행되는 것 바람직하며, 정치적 쟁점화가 되거나 외압에 의해 판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표절판정은 사안의 시급성보다는 검증의 정밀성을 보장하기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의혹제기만으로도 학자의 명예와 인격에 큰 손상이 가해지는 우리 사회와 대중심리를 고려해본다면, 이는 외국의 사례에서보다 더욱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사항이다. 이와 함께 피해자와 제보자의 비밀보장 역시 지켜져야 한다.
나. 이른바 Copykiller 문제에 관하여
세계적으로 표절추적 및 표절검색 소프트웨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 한국연구재단은 얼마 전 Copykiller라는 민간개발 프로그램을 재단의 논문투고 및 심사시스템에 탑재하여 이른바 논문유사도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통상 10-15퍼센트 이상의 유사도에 대해 표절의심의 판정을 하고, 학회와 기관에 따라 유사도가 20퍼센트 이상인 경우에 심사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은 학문분야의 특성 및 직접인용을 통한 비판과 평론이라는 학술활동을 도외시한 것으로, 이러한 유형의 프로그램은 단지 참고용으로만 고려하되 유사도 자체를 근거로 논문심사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천편일률적인 유사도를 통해 심사에서 배제하는 제도 내지 관행을 가진 기관은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
13. 중복적 판정의 문제
만약 학교의 교원이 표절의혹을 받는 경우에 학교, 소속학회, 관련단체 등이 표절판정을 각기 달리할 수 있다. 물론 이들 모두 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이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먼저 판정한 곳의 결과를 따라가는 현상, 먼저 판정이 이루어진 곳의 표절판정을 다른 기관에서 뒤집기 위한 압력과 로비 현상, 판정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분상의 변화 등으로 인해 여러 곳에서 표절을 판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비슷한 학문분야에서는 공통된 표절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가급적 중립적인 표절판정기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14. 표절예방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
표절하지 않고, 정직한 학술적 글쓰기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학생, 신진학자들에게 표절을 하지 말 것을 단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표절이고, 학술적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표절하지 않는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전수될 수 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진학자들의 진지한 자세가 학문선배들에게까지 귀감이 될 수 있다.
미국은 텀페이퍼 중복사용도 학생상벌의 대상이 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각 사회의 문화와 윤리의식은 다를 수 있지만, 학생들 역시 학자적 윤리의식이 습득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15. 표절방지를 위한 제언
● “성직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글쓰기”
● 남보다 나에게 엄격하게
● 의심스럽다면 가급적 불리하게
● 학술적 글쓰기는 곧 겸손의 실천
● 논문심사관행의 개선: 충분한 심사시간 부여; Peer Review 활성화 등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표절논란에 관하여
● 출처: 남독일신문(Süddeutsche Zeitung), “Zur Plagiat-Dabatte”, 2012년 6월 14일자, 18면.
● 아래 내용은 독일에서의 표절논의에 대한 기고문을 우리 말로 옮긴 것입니다. 우리 학계에 주는 시사점을 고려하여 교육자료의 일부로 첨부합니다.
학문의 자기책임에 관하여
다음 기고문의 작성자들은 모두 대학교수이며, 전직 혹은 현직으로 독일내 혹은 국제적 학술기구들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이다. 일부는 독일학술협회(Deutsche Forschungsgemeinschaft)의 의장으로서, 유럽학술이사회(Europäischer Forschungsrat)의 이사장, 막스플랑크협회 의장, 학술이사회(Wissenschaftsrat)와 라이프니츠 협회, 알렉산더 폰 훔볼트재단 대표위원 등으로 활동한 바 있다. 많은 수의 서명자들은 대학 및 총장회합을 주관한 바 있다. 무엇보다 모든 저자들은 전문적으로 기관들에서 학술의 윤리문제들에 대해서 다루어온 바 있다.
수많은 영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박사학위논문에서의 표절에 대한 추적은 학술 스스로에 의한 명확화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표절(Plagiat)"은 데이터 조작과 함께 학술의 정직성(Integrität der Wissenschaft)을 침해하는 주된 침해행위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학술영역에서 텍스트, 사상 및 논의들을 다루는 어떠한 행위가 "표절"에 해당하는지는 자명하지 못하다. "베끼다"라는 말로부터 무엇을 구하는 등 개념들은 너무나 추상적이다. 법적 관점에서 표절, 즉, 제3자의 지적재산을 침해하는 것 혹은 사기의도에 의해 행위하는 것은 단지 학술에서 "표절"이라고 일컫는 것에 대한 외연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학술에서 표절금지는 이보다 범위가 넓은 것이다. 표절금지는 학술의 목적 및 학술의 학술성(Wissenschaftlichkeit)을 지키는 것에 기여한다. 하지만 탐구로서의 학술이 갖는 목적은 인식의 확장이다. 따라서 표절금지는 학술의 영역에 속하여야 비로소 탐구물 속에서 설명되는 학술적인 사상들을 그것의 독창성 속에서도 명백하고 검증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학술에 의해 스스로 확정되어야 한다. 마치 당해 학술분야에서 규범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방법론들이 개개의 학술분야에 속한 학자들에 의해 스스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처럼 기존의 학술적 성과에 대해 다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행위들이 어떠한 기준에 의해 다루어져야 하는지는 다른 누구보다 학술사회(scientific community) 스스로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당해 학술사회는 각 학문분야의 학술실무에서 따라야 할 요소들에 대해 정의하며, 논리필연적으로 이것을 지켜나가며, 이것에 대한 침해에 대응할 의무를 부담한다. 자신의 규정들을 스스로 만들어낸, 학술에 의해 스스로 구성된 기관들(대학, 전문협회, 학술원 등)은 이러한 이유에서 이러한 기준을 지키는 것을 필수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학문분야에서 어떠한 기준이 요구되며 규정될 것인지는 학문영역의 학술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윤리적인 것이 구속력 있는 것이라고 규정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몇몇 영역은 변화 속에 놓일 수 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기준은 몇몇 측면에서 발전할 수 있음은 물론, 특정 요구들(가령 정확한 입증수단/출처표시의 제시)은 강화될 수 있다. 출처와 텍스트, 사상, 논의들을 다루는 것에 대한 기준은 학술이 스스로 이러한 기준에 기초한 방법론에 구속됨으로써 학술활동에 대한 구속력 있는 규범이 된다. 이것과 관련하여 디지털 시대라고 하여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 역시 이러한 의문에 대한 명확화에 있어 학술물에서 제3자의 지적재산이 침해되었는지 혹은 사기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준을 지키는지 감시하고 판단하는 것은 각 전문분야 학자들의 본래적 과제이자 의무이다. 여기서 형식적 정확성에서 기술방법에 이르는 모든 정황이 고려되어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출처가 반드시 표시되어야 하며, 사상을 전개함에 있어 기존 연구성과들과 명확한 관련성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단어 혹은 텍스트를 비교해주는 새로운 가능성들은 유용하며, 심지어 필수적이라고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은 당해 연구가 기존의 연구성과에 대해 충분히 분명하고 입증가능할 정도의 관련성을 설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라는 질문에 대답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자명하게도 학술에 의한 평가는 대중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남용되는 일이 없도록 법적으로 평가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 몇몇 사례에서 학술에 의한 학술적 정직성에 대한 기준준수에 대한 평가가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그러한 의무에 대해 주의가 환기되어야만 했던 것은 학술의 시각에서 역시 가슴아픈 일이다. 데이터를 취득하고 처리하는 새로운 기술적 과정을 통해 밝혀지지 않는 학술적 부정행위와 관련하여 학술 스스로가 현재 전세계적으로 학술적 정직성을 지키고, 이러한 행위를 조기에 발견하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한 메커니즘과 체계를 확립의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의도는 단지 정해진 기준에 따라 표절의심작과의 비교 외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텍스트 비교가 활용되는 경우에 방해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염려스럽게 지난날 자의에 의해 주어진 학술논문에 대한 기준과 나중에 성립된 기준을 이후에 활용하는 것을 통해 형성된 의혹과 협박의 기후가 조성된 점, 그 안에서 신뢰가 그럴듯한 투명성에 의해 대체되는 것, 젊은이들이 검증작업을 통해 혼선을 주고, 대중과 학문의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의혹이 제기된 저술에 대해 필수적인 객관적 판단을 방해하고, 주장되는 잘못을 지속적 반복을 통해 고착화시키는 관행은 문화사회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놀라운 사건이라 할 것이다.
WOLFGANG FRÜHWALD(독문학자, 뮌헨), GERHART VON GRAEVENITZ(독문학자, 콘스탄츠), LUDGER HONNEFELDER(철학자, 본 및 베를린), REIMAR LÜST(물리학자, 함부르크), CHRISTOPH MARKSCHIES(신학자, 베를린), ERNST THEODOR RIETSCHEL(화학자, 베를린), ERNST-LUDWIG WINNACKER(생화학자, 뮌헨 및 스트라스부르그), RÜDIGER WOLFRUM(법학자, ,함부르크 및 하이델베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