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의 불교수용
2) 토착 신앙과 불교와의 융합
전국 어느 사찰에 가더라도, 불교 본연의 불사를 드리는 본당 이외에 토착신을 모시는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등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불교가 인도 ·중국 ·한국에 있어서 각국의 토착신앙과 융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산신을 모신 산신각은 우리 나라 토착신앙과 불교가 융화된 모습을 나타내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또한 산문 근처나 사찰 입구에서 장승이나 돌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산신각이나 사찰입구의 장승은 한국사찰의 특징이며, 이는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융화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가람의 배치에서뿐만 아니라 사찰연기설화 ·연등회·팔관회·탱화 등에서도 볼 수 있다. 한편 토착신앙 내에도 무당의 무의 ·무구 ·무신도 ·무속용어 등에 불교적 요소가 융화되어 있다. 이렇게 토착신앙과 불교는 상호 영향을 끼치며 융화되었던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토착신앙이 불교화한 것으로 환인천제가 불교의 제석천 곧 제석환인의 신앙으로 변화한 것과 국조 단군이 독성님이나 불교적 산신으로 변화한 것을 들 수 있다. 불교신앙이 토착신앙화 한 경우로는 불교의 미륵신앙이 화랑국선으로 변화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토착신앙과 불교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자료는 토착신앙의 성역과 불교사찰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이 아도본비를 인용하여 신라는 그 서울 안에 일곱개의 가람의 터가 있으니
하나는 금교 동쪽의 천경림(天鏡林이)요,
둘째는 삼천기(三川岐)요,
셋째는 용궁(龍宮)의 남쪽이요,
넷째는 용궁의 북쪽이요,
다섯째는 사천미(沙川尾)요,
여섯째는 신유림(神遊林)이요,
일곱째는 서청전(壻請田)이니 모두 전시에 가람의 터로 법수가 길게 흐르는 땅이라 하였다. 여기서 천경림, 삼천기, 용궁 남, 용궁 북, 사천미, 신유림 및 서청전 등은 토착신앙의 신성지역들이다. 사원 건립 이전부터 토착신앙의 종교적 공간으로 여기에 불교사찰이 들어섰던 것이다.
그러나 토착신앙의 신성지역에 불교사찰이 들어섰지만 불·보살에 대한 숭배와 의례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토착신에 대한 숭배와 의례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삼국유사]의 선도산 성모수희불사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선도산에 산신과 신모의 신사(神祠)가 있었는데 이들 산신과 신모의 도움으로 새로 불전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신모가 불상과 더불어 벽상에 53불(佛)과 6류(類) 성중(聖衆) 제천신과 오악신군을 그려 받들며 점찰법회(占察法會)를 베풀어 이를 항규로 삼으라 하였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고려시대에도 이와 같은 일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음을 주기하였다.
진평왕대(579∼631)의 이 기록은 산신과 비구니, 신사와 불전, 불상과 천신, 산신탱화가 융화하고 있는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일연이 주기한 오악에 대해 살펴보면 산신과 불사와의 관계를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일연은 여기의 오악을 [삼국사기] 제사지에 보이는 오악으로 보았으나 안흥사의 비구니 지혜가 모신 오악신군은 경주평야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오악에 있는 산신이다.
[동국여지승람]의 경주 산천조에 의하면 선도산이 서악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의상이 전교활동을 하던 화엄십찰이 오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의상이 부석사를 지을 때 이미 이교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의 이교도는 바로 토착신앙을 믿는 무리들인 것이다.
결국 삼국시기의 경주평야를 중심으로한 지역의 오악과 남북국시기의 [삼국사기] 제사지에 보이는 오악 모두 토착신앙과 불교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선종이 수용된 9세기 이후 산지가람으로 발전하면서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관계는 보다 긴밀하게 된다.
산신이 사원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러한 산지의 가람건립 과정에서 보다 확대되어 갔다. 토착신앙의 성소는 산신각과 장승의 형태로 불사와 융화하거나 민간에서는 계속 신성지역으로 숭배되어 산신당 ·서낭당 ·장승과 솟대의 형태로 남아 있다.
위치 상으로 보아 산신각이 상위, 불당이 중위, 장승이 하위에 위치하는 우리 나라 가람의 삼중구조는 상당으로 관념되는 산신당, 중당으로 관념되는 서낭당, 하당으로 관념되는 장승과 솟대의 동제당의 삼중구조와 상호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산신각과 장승은 단순히 토착신앙의 잔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토착신앙 성역의 구조 안에 불단을 받아들이는 특유한 복합 형태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신당은 불교의 수용과 함께 융화되어 토착신앙의 가람 건립화에 따라 사원내에 존재하며 현세구복, 기복불교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