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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탐방후기 사진 등 스크랩 류순정 묘소 갔던 사진
산바위솔 추천 0 조회 406 16.07.09 13:28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2016년 7월 8일 (금)


류순정 (1459~1512) 묘소 가는 길 입니다.


 류순정은 연산군의 폭정에 반정을 한 정국공신 중 1등에 책봉된 8인 중에 한 사람 입니다.              

정국공신엔 103명이 책봉 됐는데 1등이 8명, 2등이 13명, 3등이 30명, 4등이 53명 이었지요.        

1등공신 중에도 성희안 (1461~1513), 박원종 (1467~!510), 류순정 (1459~1512)  3인은  나머지

  5인인 유자광,신윤무,박영문,장정,홍경주, 와는 격이 다른 1등 공신이랍니다.                               

   류순정등, 3인은 병충분의결책익운정국공신(秉忠奮義決策翊運精國功臣) 이며                               

        유자광등, 5인은 병충분의협책익운정국공신(秉忠奮義協策翊運精國功臣) 입니다                                 

 중종반정 후  유래가 없이 많이 책봉된 공신 중에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 상당 수 포함되어 있어       

         후에 기묘사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기묘사화시 위훈삭제 됐던 사람이 76명이나 됐습니다.                   

                                                                                                              

오늘 역사방에 처음 나오신 분들입니다.  세 분인줄 알았더니

네 분이나 되는군요. 첫 방문을 환영합니다. 처음 오신분들을 포함해서 35명이 함께 했습니다.

류순정의 묘소에는 아들을 비롯해 7대 후손 까지의 묘가 있습니다.

우측 상단에 보이는 묘가 류순정의 묘이지만 아들의 묘 부터 갔습니다.


류홍의 묘 앞에 있는 장명등입니다. 사진에도 나타나듯, 장명등의 화사석은 새로 만들었네요.         

아마도 화사석이 없어진것 같습니다. 그런데 화사석의 화창이 동그란 모양이네요. 사진에는 없지만

반대편은 달 모양입니다. 앞뒤는 물론 네모난 화창입니다. 이런 모양의 장명등은 현재 우리나라엔  

박중손의 묘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장명등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 됐는데요, 류씨 후손은

아마도 보물인 일월형 화창을 가진 장명등을 알고 있었나 봐요.                                                

 박중손의 박원종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박원종의 아버지는 박중선입니다. 착오하지 마세요.           

류홍의 묘소에서 내려와


두 기의 비가 나란히 서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두 비 모두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니고     

옮겨 세운 비지만 크기나 모양이 흡사합니다. 하지만 내용은 다릅니다.좌측의 비는 류홍의 신도비고

  우측의 비는 류사필의 묘갈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비의 머리 글자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좌측 비의 비문을 확대한 사진입니다. 비문을 찍어 왔어야 했는데 못 찍어서......                     

어쨋던  빨간줄 친 부분에 신도비명"이란 글씨는 보이죠.  전체의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유명조선국 증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겸 판의금부사 행분의정국 공신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

오위도총무도총관 진산군 류공 신도비명 병서" ㅡㅡㅡㅡㅡ 에~휴 길기도 하네요.                  

우측 비의 비문입니다.  류홍의 아들인 류사필의 묘갈인데요. 빨간줄 친 부분에 "행 온양군수"란

 글씨가 보이죠.  유명조선국 통훈대부 온양군수 류공 묘갈명 병서"란 글이 있다는데,,, 글쎄요.   

   우쨋든 통훈대부는 정3품 하관의 벼슬로 당하관입니다.                                                        

류순정의 신도비입니다.

신도비 받침돌에 "안상"이 세개 새겨저 있습니다. 안상은 탑,비,건축물 등의 하단에 주로 있는데

코끼리의 전면 모습, 코끼리의 눈, 소반의 다리,등 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 안상을 왜? 기단에  

 새겼을까요. 이는 불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부처님(싣달타 태자)이 코끼리를 타고 세상에 출현해

  코끼리는 부처님을 모시는 동물로 인식되는 까닭입니다.                                                      

류순정 묘비의 이수입니다. 이수"란 비의 머릿돌에 이무기를 새겨 놓은 것을 이르는 말인데요.

처음엔 이무기를 새겼으나 후대로 오며 용으로 변해서 용을 새긴 머릿돌도 이수라고 합니다. 

  이무기와 용이 다른 것은 뿔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물론 용이 되어야 뿔이 납니다.          

류순정 부인의 묘 비입니다. 머릿돌에 구름과 함께 해를 새겨 놓았습니다.

연산군은 1494년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 1498년 무오사화, 1504년 갑자사화를 일으켜 

사림은 물론 훈구파까지 많은 사람을 죽였을 뿐만아니라. 할머니와 아버지의 후궁이였던 귀인 엄씨

와 정씨 그들의 아들인 안양군과 봉양군도 잔혹하게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세자때 스승이던 趙之瑞도 죽였고 내시 김처선이 바른말을 했다고 그의 다리와 혀를 잘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7촌까지 찾아 처형 하고 전의 전씨의 본관도 없애고 김처선의 處자와 善자를 이름에

 쓰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24절기의 하나인 처서를 조서로 부르게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처용무도   

풍두무로 고처 불렀습니다. 과거 시험에 이미 합격한 사람의 답안지에 處자가 있다고 해서 불합격  

 시키기도 했습니다. 연산군은 백번 ?겨나도 마땅한 임금이였습니다.                                         

 그럼에도 연산군의 총애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죠 .                                                                   

   장녹수와 임사홍,신수근 그리고 구수영과 임승재 등이 였습니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의 노비였는데     

    연산의 눈에 들어 벼락 출세한 여인이였고 구수영과 임승재는 연산에게 여인들을 뽑아다 바친 채홍사 

 역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반정 전야에 반정에 가담한 구수영과 달리 임승재는  반정 한 해 전인    

  1505년 죽었습니다. 죽을때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으나 다만 전하께 더 예쁜 여자를 바치지 못해   

  안타깝다고 유언을 했답니다. 아부를 하려면 이정도는 해야 사는것이 편해집니다요 ㅋㅋㅋ             

 

참고하셔서 여러분도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사시기를 바람니다 ㅋㅋㅋ

날씨가 엄청 더웠습니다. 나중에 보니 금년 중 제일 더웠다고 하더라구요.

그럼에도 여유가 있는 분들도 계셨으나

에궁,,, 못살겠더라구요.

그늘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어쩔 수 없어 항동 철길에서 해산 했습니다.

잘 들 가셨는지요.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역사탐방은 앞으로 2주간 박물관 가는 것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항동 철길은 폐 철길이 아닙니다. 현재도 하루에 한 두번씩 기차가 다니는 철길입니다.                       

항동 철길은 지금부터 57년 전인 1959년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 (KG케미칼)가 원료와 생산물을 

  운반하기 위해 오류동에서 부천시 옥길동 까지 4.5 키로의 철로를 깔은 오류동선입니다.              


그런데 지자체에서 걷기 좋은 길을 만든다며 한 쪽에는 마사토를 한 쪽에는 섬유로 짠 그물을

깔았습니다. 자갈을 걷어 내고요.                                                                                                          

원래는 이렇게 자갈이 깔려 있었습니다 (2013년 6월 28일 촬영)

이랬는데

이렇게 된거죠.

철길로 사람이 다니면 안됩니다. 절대로요.

사고의 위험이 있거든요.


철길가에 만들어 놓은 설치 작품.


호호호

간이역도 생겼군요.

항동철길역 이라네요, 역장은 토끼입니다.





철도청에서 지자체에 정식으로 요청 했습니다. 모든 시설물을 철거해 달라고요.(영국님)

     지자체에서 타협하자고 하지만 철도청에선 불가"라는 입장입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또 "헬조선"이라는둥, 난리가 날것 아닙니까

                           (2013년 6월 28일 촬영한 사진, 그때 요긴 황톳 길)                                                                            

또 헛발질 한 것 같습니다.


정말 오늘 더워서 죽는줄 알았습니다. 지금 집에서 요양중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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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7.09 13:58

    첫댓글 감사합니다.
    두뇌와 마음을 살찌게 하는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 16.07.09 14:20

    무더운 날씨임에도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수고 마니마니 하셨습니다~

  • 16.07.10 23:44

    다시 한번 자세하게 설명 첨가해 주시니 놓쳤던 것까지 이해가 잘 됩니다.
    즐겁고 의미있는 역사탐방이었습니다.
    회장님, 진심으로 존경하며 감사드립니다.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고 즐거운 시간 되세요~^^

  • 16.07.09 15:31

    올여름제일더운날 진행하시느라 수고하셧습니다 빠른판단으로 해산하신건정말 잘하신 듯합니다 정말수고하셧습니다~

  • 16.07.09 16:22

    고맙습니다
    더운 날씨에 애 많이 쓰셨습니다.
    관심은 있어 자주 들러볼뿐
    이러저러한 괜한이유로 참석을 못하고 ,
    또 가봤던길에 ??? 잠시 머뭇하다 다녀온 길 .
    모두가 더웠다 하시는 길을
    저 만이 그 느낌 잘 모르고 즐겼던 시간 이었습니다.
    해설이 있어 더욱 좋았고 ,
    놓친 부분 아쉬움이 있었는데...
    자상히 정리까지 해주셔서
    더욱 역탐방에 빠져들게 됩니다.
    더욱 발길이 잦아질것같습니다.
    깊은 감사드립니다 .

  • 16.07.09 16:28

    더운날씨에 산을오르고 해설을하고 수고 많으셨습니다.늘 건안하십시요.

  • 16.07.09 17:18

    무더운 날씨에 인솔과 해설~ 수고 많으셨습니다

  • 16.07.09 19:21

    정말 무더운 날씨에도 회원님들 위하여 열심히 해설 하시느라 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 16.07.09 19:48

    고생하셨습니다
    이런기회아니면 언제 그곳엘 가보겠습니까
    수목원과 연못까지챙겨보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16.07.10 12:31

    회장님 유난히 더운 날 수고하셨습니다
    건안하시기 바랍니다 ~~~

  • 16.07.10 13:43

    더울땐 시원한 박물관이 최고의 피서지 입니다 ㅎ

  • 16.07.10 17:15

    하나라도 더 알려 주시려고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감사하고 송구하고 ..그렇습니다.
    늘~~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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