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차별은 왜 생겨났을까?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성 정체성을 정형화시킨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남자와 여자의 생리적 차이를 열등한 시각으로 보아왔던 시기는 의학이 아직 발달하기 전의 시대다. 지금은 양성평등의 시대로 집안일도 육아도 여성 혼자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사회 문화 곳곳에서 우월한 남성 의식이 공격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여성에 비해 크다고 한다.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이유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한 방법일게다. 욕구가 자연적 현상이라고 눈 감아 버릴 일이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문화도 분명 옳지 않다. <호기심 소녀의 아주 특별한 세계 견문록>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금기시 되어 왔던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냄으로써 성차별에 소리없이 저항했던 인물들이다.
편견에 맞서 자신의 길을 찾은 여성들로 엘리자베스 블랙웰(미국 최초의 여성 의사), 에드모니아 루이스(차별을 딛고 최고의 예술품을 남긴 조각가), 넬리 블라이(탐사 보도를 개척한 저널리스트), 마리 퀴리(방사성 원소를 처음으로 발견한 과학자), 가브리엘 샤넬(20세기 패션을 선도한 패션 디자이너), 에텔 레진스키(뉴욕 국립 여성 교향악단을 창단한 지휘자), 아멜리아 에어하트(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비행사), 이태영(여성 인권을 위해 싸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헤디 라마(현대 문명을 바꾼 발명가이자 배우), 황혜성(궁중 음식을 대중에게 알린 대가), 박병선(직지를 세계에 알린 역사학자),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1980년 아이슬란드에서 민주 선거로 당선된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 투 유유(개똥쑥 추출물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해 인류를 구한 중국 과학자), 말랄라 유사프자이(교육권을 위해 투쟁한 인권 운동가)를 소개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역사 기술로 사실 여자들의 이야기는 많이 숨겨져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만 하더라도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로 그림에 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19세 최고의 여성 실업가 헤티 그린은 동시대를 살았던 '강철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천재적인 금융업자' J.P. 모건 등 오늘날까지 희대의 거부로 이름을 남기고 있는 남자들처럼 세계적인 갑부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지금보다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히 훨씬 심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자손 실비아는 1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공립도서관과 하버드, 에일 등의 대학들과 병원 등 여기저기에 기부했다.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한 모습이다.
위 책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남녀 간에 차별이 심했던 조선 중기 조선이 낳은 최고의 여류 천재 화가 사임당은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여성들은 비록 사대부 집안 사람이라 해도 호를 갖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신사임당은 자기 자신의 뜻을 세우고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자신을 바로 세워주는 인생의 이름을 짓고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다고 한다.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기도 한 '불의 여신 정이'에는 조선 선조 임금 때 여자로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인 사기장(자기를 빚어내는 직업)의 일을 해 낸 여인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소설 속 주인공 '정이'는 흙의 본질을 마음에 담아 고스란히 손끝으로 표현해해는 사기장으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픈 여성이 있다. 역사 앞에 책임을 다한 사람으로 백사 이항복의 자손으로 조선 최고의 명문가 후예이자 8만 석을 거두는 대부호였던 이회영의 6형제를 들 수 있다. 나라가 망하자 재산을 정리하여 중국으로 망명했고 해방된 조국에 살아 돌아온 것은 막내 이시영뿐이었다. 이회영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당해 죽었고, 형제들 중 가장 많은 돈을 내놓은 이석영은 굶어 죽었다. 8만 석이라면 삼성, 현대 같은 재벌은 아닐지라도 '황제 노역'했다는 토호보다는 훨씬 큰 재산이었다. 그 재산을 바쳐 이회영 형제가 한 일이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것이다. 독립군 양성 기관에 들어간 청년 중 상당수는 집에서 부리던 종이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대갓집 마나님으로 불리던 여자들이다. 그들은 새벽 같이 일어나 만주 칼바람을 맞으며 집에서 부리던 종들을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버선을 기웠다. 이분들의 수고와 헌신을 잊으면 안 된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계급, 인종, 성을 차별하는 철저한 위계 사회였던 로마 제국 안에서, 남녀가 함께 교회 생활을 하고 노예들까지 '형제'라고 불리우면서 로마 당국의 눈에 매우 무질서한 집단으로 비춰졌다. <호기심 소녀의 아주 특별한 세계 견문록> '여성인물편'을 통해 가부장 중심의 문화적 전통과 남녀의 문화적 차이가 제도적으로 차별로 고착된 것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