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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 책을 읽고 이상하게도 살고 싶어졌다. 그것도 너무나 뜨겁게!”
영국의 존경받는 호스피스 의사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살았던 환자들과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들
가디언 선정 2020 읽어야 할 책, 선데이타임즈 top 10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김소영 책발전소 대표, 이해인 수녀 추천
죽음을 앞둔 환자들로부터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웠다고 자부하던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비로소 깨달은 삶의 의미를 담았다.
사람들은 흔히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게 힘들고 우울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라고 대답한다. 호스피스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용기와 연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 자신의 아픈 심장보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혼자 남겨질 것을 더 걱정하는 마이클,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브리지 게임을!”이라며 끝까지 일상을 이어 간 도로시, 손자의 여섯 번째 생일까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먼, 80년간 숨겨 온 비밀을 마지막 순간에 털어놓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죽은 아서…. 별것 아닌 삶에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리석고 아름다운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더불어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겪으며 깨달은 사랑의 의미, 즉 이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헌신하려는 용기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운명이라는 깨달음을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전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에 대해, 〈옵저버〉는 “의학 관련 회고록이 거의 5분에 한 권씩 나오는 와중에 이 책은 단연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훌륭하다”라는 찬사를 보냈고, 〈가디언〉은 “이 책에서 나를 울컥하게 만든 부분은 죽음에 관한 구절이 아니라,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법을 배우는 구절이었다”라고 평했다. 선데이타임즈 top10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평가하는 2020 코스타 바이오그라피 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가디언 선정 2020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되었다.
👩🏫 저자 소개
레이첼 클라크Rachel Clarke
영국의 공중 보건 의사이자 완화 의료 전문가.
윌트셔 시골에서 지역 보건 전문의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가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며 성장했다. 아버지의 진료소에서는 해마다 동네 아이들이 태어나고, 노인들이 눈을 감았다. 언제나 환자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아버지를 보며 친절하고 인정 많은 의사상을 가슴에 새겼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알카에다, 콩고 내전 등 다양한 주제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그러나 1999년 런던에서 발발한 테러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의대에 진학했다.
의사 면허를 딴 후 고된 응급실 근무를 자처하며 사람을 살리는 의학의 역할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환자를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장기나 부속품 정도로 대하는 차가운 의료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의사들은 환자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에 무감했고, 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들은 병원에서 쉽게 내동댕이쳐졌다. 결국 그녀는 환자 중심의 의술을 펼칠 수 있는 분야를 고심한 끝에, 동료 의사들이 꺼리는 분야이자 말기 환자들의 인간다운 죽음을 위해 애쓰는 완화 의료(호스피스)를 전문으로 삼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흔히 호스피스 업무가 무척 힘들고 우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에 저자는 그와 정반대라고 대답한다. 호스피스에는 용기와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서도 최선의 모습을 선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저자는 호스피스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2017년 아버지의 대장암 투병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겪으며 사랑이야말로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며, 이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운명임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호스피스 환자와 보통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단 하나뿐이다. 그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시간을 가진 것처럼 산다는 것. 이 책은 의료의 본분을 몸소 보여 주는 따뜻한 호스피스 의사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살았던 환자들과 아버지에게서 배운 삶과 사랑의 의미를 담았다. 선데이타임즈 top 10 베스트셀러, 2020 코스타 바이오그라피 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가디언 선정 2020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되었다.
📜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PART 1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 인간다운 죽음을 위한 이야기들
1. 아버지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몰랐던 것
-두 젊은 병사의 마지막 순간
-삶에 관한 아주 다른 이야기
-동네 진료소에서 만난 자연스러운 삶과 죽음들
-내가 살아 있는 건 우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 참 별것 아닌 삶
-그는 죽고 나는 살았다, 단 1초 차이로
-언제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어이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
-죽음을 회피하는 태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다시, 의사의 길로
3. 죽음을 피하려고 애쓰는 동안 잃어버리는 것들
-인생에서 다정함이 가장 필요할 때
-평범한 사람이 의대생이 되면서 서서히 잃어버리는 것
-병원에서 죽음을 다루는 냉정하고 차가운 방식
-인간다운 죽음을 위한 질문들
4. 죽을병이 삶을 바꾸는 방식
-암과의 아슬아슬한 만남이 내게 남긴 것
-아픈 사람에겐 어떤 배려가 필요할까
-삶과 죽음 사이, 소중한 것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야만 한다면
5. 드라마 같은 소생술은 없다
-생을 다하고도 편안하게 죽지 못하는 사람들
-의사가 말하길 꺼리는 단 하나의 진실
-우리의 심장이 멈추는 이유는 우리가 떠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환자를 죽이고서 깨달은 것
6. 어떤 결말을 준비할 것인가
-응급실과 인생의 공통점
-삶이 평균과 통계치를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1퍼센트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어떤 결말을 준비할 것인가
PART 2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이야기들
7. 내 삶은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까
-“이렇게 사는 게 다 무슨 의미죠?”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가 80년간 숨겨 온 비밀을 마지막 순간에 털어놓은 이유
-내 삶은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까
8. 죽어 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하루에 대하여
-호스피스에 즐거움이 가득한 까닭
-암담한 순간에도 기쁨은 존재하는 법
-무엇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나
-실체 없는 두려움은 내려놓고, 구체적인 희망을 만들어 가며
9.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브리지 게임을!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
-삶은 마지막까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브리지 게임을!
-살아 있는 한 함부로 끝이라고 단정 짓지 말 것
10. 지혜로운 포기와 좋은 선택에 대하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대하여
-의사의 말만 따르던 그 남자의 마지막 선택
-빌어먹을, 죽을 때만큼은 내 뜻대로 죽고 싶다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
11. 별것 아닌 삶에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리석고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삶도 사랑도 슬픔도, 결국 한순간일 뿐이지만
-그의 아픔이 내 것과 같음을 느끼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닿을 수 있는 슬픔
-그럼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12.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이 남긴 것들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위로
-인생을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상관없어지는 때가 온다
-아버지가 마지막 여행을 떠난 이유
-운명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달라지는 것
13.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
-보통의 삶은 어떻게 위대해지는가
-죽음 후에 남는 것들
-작고 약한 인간이 서로를 돌볼 때 일어나는 기적
14.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아버지가 남긴 이야기들
15.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위한 삶
습관적으로 대충 보낸 나의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더 깊이, 더 뜨겁게 살기 위하여
사랑과 용기를 가슴에 품고 끝까지 나아갈 것
감사의 글
📖 책 속으로
여든 살 나이에 불구나 병자가 아니라면,
건강을 유지하고 여전히 산책을 즐기며 식사를 맛있게 한다면,
약을 먹지 않고도 잠을 잘 잔다면,
꽃과 새, 산과 바다에 여전히 마음이 동한다면,
당신은 참으로 운 좋은 사람이니
아침저녁으로 무릎을 꿇고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나이는 더 어린데도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서
하루하루 기계처럼 살아간다면,
상사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작은 소리로.
“빌어먹을! 난 당신의 졸개가 아니야!”
거듭해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당신을 세상에 내놓은 죄를 저지른 부모를 용서할 수 있다면,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하루하루 만족하며 산다면,
과거의 일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용서할 수 있다면,
점점 더 심술궂고 독하고 냉소적으로 되지 않을 수 있다면,
확실히 당신은 인생을 참 멋지게 살고 있다.
-‘지혜로운 포기와 좋은 선택에 대하여’ 중에서
“알았소,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 어쩌면 내가 우리 꼬맹이 생일날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지. 고맙소, 레이첼. 진심이오.”
나는 불쑥 올라오는 감정에 잠시 평정심을 잃을 뻔했지만, 꾹 눌렀다. 그 앞에선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집에 가서야 내 마음을 돌아봤다. 죽어 가는 남자가 자신의 최후를 목격했다. 최악의 형태인 숨 막혀 죽는 모습을 전부 다 보고 말았다. 그런데 최후의 심판이 닥친 순간에, 마지막 불꽃이 꺼지는 순간에, 기를 쓰고 바라본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죽음 앞에서 벌벌 떨면서도 어떻게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날 밤 나는 혼자서 눈물을 흘렸다. 상실의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인간의 본성 때문이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우리 인간이 나를 늘 감동시켰다. 사람들은 흔히 호스피스 업무가 무척 힘들고 우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와 정반대라고 대답한다. 호스피스에는 용기와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 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최고의 모습을 선보이는 사람들을 수시로 목격한다. 내 주변엔 자신의 최고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로 가득하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브리지 게임을!’ 중에서
“난 자네가 상상하는 이유로 눈물짓는 게 아니야.” 아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네가 모르는 게 있어. 세상 누구도 모르는 게 있어.”
망가진 폐가 허락하는 한에서 사랑과 인내에 관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서와 나는 둘 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한 사람은 숨을 죽였고, 한 사람은 숨을 헐떡였다.
“레이첼, 난 평생 거짓말을 하고 살았어. 성인이 된 뒤로 줄곧.” 아서가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하지만 자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난 50년대 사람이야. 내가 어렸을 땐 나 같은 사람은 존재 자체가 범죄였어.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든, 아니면 내가… 변종이라는 걸 받아들이든 내 뜻대로 선택할 수 없었어.”
나는 미동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참으로 소중하고 심오한 뭔가를 건네받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성스러운 비밀이기에 의사가 아니라 신부가 된 기분이었다. 한 남자가 임종의 순간에 자신을 피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서는 수십 년 동안 동성애를 지속했다. 남부끄러운 관계를 평생 은밀하게 이어 왔다. 아서는 사회적 편견과 개인적 의무감에 짓눌린 채 평생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고, 그 점을 무척 애통해했다.
“난 내 파트너 조나단이 죽을 때 곁에 있을 수 없었어. 내가 아니라 그의 자식들이 곁을 지켰지. 설사 조나단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 해도 지금 내 곁을 지켜 줄 수 없을 거야. 우린 이렇게 평생 드러낼 수 없는 사이였어.”
나도 모르게 아서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인생의 실타래를 풀어 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자신의 참모습을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서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그의 증인이었다. 이제 그의 참모습을, 그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고마워요, 아서.” 내가 거듭 말했다. “애써 감춰 온 이야기를 내게 들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내 삶은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까’ 중에서
“줄리, 론에게 작별을 고하고 싶으세요? 내 말은, 그러니까 남편 옆에 눕고 싶으세요?”
흐느낌이 뚝 그쳤다. 줄리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래도 될까요? 그… 그게 가능한 건가요?”
그래도 되는지는 나도 잘 몰랐다. 론은 쿠션이 보강된 침대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를 불편하게 할까 봐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 간호사들과 힘을 합쳐 무기력해진 그의 몸을 옆으로 살짝 옮겼다. 시간과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다. 한참 만에 줄리가 누울 만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줄리는 조심스럽게 남편의 품으로 파고들어 손을 잡고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주문처럼 속삭이면서 뺨에 와 닿는 가냘픈 그의 숨결을 느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사랑하는 부부의 너무도 소중한 마지막 순간을 위해 우리는 조명을 낮추고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
그날 내가 취한 행동이 옳거나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그걸 의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통곡하면서 몸을 일으키는 줄리를 간호사가 얼른 부축해 주었다. 우리는 따끈한 차를 건네고, 안아 주고, 기댈 어깨도 제공했다. 어떤 위로도 줄리의 상실감을 덜어 준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몇 주 뒤, 줄리가 선물 바구니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줄리는 비탄에 잠겨 눈앞이 캄캄할 때 호스피스 의료진이 보여 준 호의와 배려가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하루에 대하여’ 중에서
“다 빼 주세요.” 헨리가 내게 요구했다. “난 내가 무엇에 서명하는지 몰랐습니다. 이 망할 것들을 얼른 다 빼 달라고요.”
“튜브를 빼내면 신장이 제 기능을 못 할 거예요.” 나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얼마 못 가서 죽게 될 거예요. 상황을 되돌리는 게 불가능할 수 있어요. 그 점을 제대로 알고 하는 얘기인가요?”
헨리가 격분해서 대답했다. “이봐요, 난 처음 진단받을 때부터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요. 아무도 내게 뒷일을 생각해 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요. 내가 이 지경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병원에서 보낸 4개월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야 온갖 수술의 위험과 혜택에 대해서 설명했겠지만, 헨리는 한 번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정작 중요한 질문을 빼먹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얼마만큼 감내할 수 있는가?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 것까지 수용할 수 있는가? 헨리는 지난 몇 달 동안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안다고 착각한 의료진의 강압으로 고통스럽고 모멸적인 수술을 받으며 무의미한 시련을 겪었다고 느꼈다.
-‘지혜로운 포기와 좋은 선택에 대하여’ 중에서
메리 올리버 시인의 말처럼 인생은 참으로 거칠고 소중하다. 아버지는 한 번뿐인 거칠고 소중한 인생에서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토리돈 산맥의 거친 야생에서 보내기로 흔쾌히 결정했다.
아버지는 산기슭에 서서 마음속으로 산봉우리들을 정복했다. 사암으로 된 산자락을 하나씩 음미하고 흰꼬리수리의 비상에 전율했다. 그냥 평범한 독수리가 아니었다. 아버지에겐 마지막 독수리였다. 마지막 산행이었고, 마늘 버터에 푹 절인 마지막 바닷가재 요리였다. 우거진 히스와 화강암, 붉은 사슴과 석영도 모두 마지막이었다. 그렇기에 더 감격스러웠고 더 소중했다. 아버지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서 매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음미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이 남긴 것들’ 중에서
아버지가 떠난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장례식을 치르고 업무에 복귀했을 때, 나는 다른 의사가 되어 있었다. 이젠 슬픔의 맛과 무게를 알았다. 병실에 들어서면, 조만간 떠나보내야 할 사람의 소중한 생명에 매달리는 가족들의 퀭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슬픔도 사랑처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슬픔의 고통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임을 나는 이제 속속들이 알았다.
나는 특히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통해 말기 진단이 모든 걸 바꾸지만, 또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진단을 받기 전까지 일흔네 살인 아버지는 자신이 언젠가 죽을 걸 알았지만 그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몰랐다. 진단을 받고 나서도 아버지는 자신이 언젠가 죽을 걸 알았지만 그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몰랐다. 아버지가 평생 사랑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바뀐 거라고는 남은 나날을 더 깊이, 더 뜨겁게 음미해야 한다는 자각뿐이었다. 아버지가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남은 나날을 ‘왜 나지? 도대체 왜 나야?’라고 따지면서 낭비할 수도 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아니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 가고 있어.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저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갈 거야.”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전히 놀라우리만치 감미로운 순간이 있을 수 있다. 완치는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고 기뻐하고 함께 지낼 수 있다. 웃고 울고 감탄하고 위로할 수 있다. 더 농축된 상태로 삶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나날과 마찬가지로, 삶의 마지막을 호스피스에서 보내겠다고 선택한 내 환자들을 위해 나는 죽어 감이 살아감과 공존하도록 열과 성을 다했다.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위한 삶’ 중에서
🖋 출판사 서평
“별것 아닌 삶에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리석고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나이 들어도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들이 전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
호스피스보다 두려움과 금기로 둘러싸인 건물은 없다. 흔히 호스피스 병동을 삶의 이야기가 뚝 끊기는 벼랑으로 여기고, 이곳에 오면 곤두박질치며 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스피스 전문의인 저자에게 묻는다. “그런 일을 어떻게 견디세요?”
하지만 호스피스에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 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말기 환자들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남은 삶의 순간을 깊이 음미한다. 호의와 미소, 품위와 기쁨, 친절과 예의, 사랑과 연민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얄궂게도, 의사이자 인간으로서 자신을 성장시켜 준 곳이 바로 대다수가 꺼리고 두려워하는 호스피스였다고 말이다.
환자들도 호스피스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도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루는 갑상선 암을 앓고 있는 60대 환자 사이먼이 종양으로 인해 기도가 눌리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구급차를 타고 호스피스에 실려 왔다. 기도가 막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인간이 지닌 모든 정신적인 힘이 공기에 대한 필사적 갈망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다. 사이먼 역시 자신이 금방 죽을 거라는 확신을 품고 이곳에 도착했다. 저자는 공포에 떠는 사이먼에게 몇 주밖에 남지 않은 그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예상과 달리 고통스러운 증상들은 약물로 거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 점차 기력이 떨어져 낮잠을 오래 자게 된다는 점, 그래서 정말 중요한 일을 위해 체력을 아껴 둬야 한다는 것 등등. 사이먼은 처음으로 죽음의 형태와 방식과 시기를 가늠한 후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내가 우리 꼬맹이 생일날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지. 고맙소, 레이첼. 진심이오.”
사이먼은 가족을 떠난 사위를 대신해 아버지 역할을 해 주고 싶은 외손자가 있었고, 그것이 남은 삶에서 가장 중요했다. 결국 그는 남은 시간과 에너지를 끌어모아 외손자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치러 준 이틀 뒤, 두려움도 후회도 없이 조용히 삶을 마감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하루에도 놀라우리만치 감미로운 순간들이 존재한다. 살아 있는 한 여전히 웃고 감탄하고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으며, 더욱 농축된 상태로 삶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들에게서 오히려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우는 이유다.
보통의 삶은 어떻게 위대해지는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비로소 깨달은 삶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
금요일 밤의 혼잡한 응급실 한편에 80대 환자 마이클이 두 팔로 가슴을 감싸듯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한 채로 웅얼거리듯 말끝을 흐리며 팔을 풀었다.
“아, 내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문제는 바로 이겁니다.”
놀랍게도, 그가 양손에 조심스럽게 받치고 있던 것은 바로 심박 조율기(심장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를 막기 위해 가슴에 삽입하는 기구)였다. 몇 주 전, 심박 조율기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간단한 시술을 받은 뒤 생긴 염증을 방치한 끝에, 곪아 터진 흉터 밖으로 심박 조율기가 삐져나와 갈비뼈가 바깥으로 노출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심장과 관련된 문제를 이렇게까지 방치하다니, 의사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클에게는 자신의 심장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60년을 해로한 아내였다. 메리가 3년 전에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로, 마이클은 줄곧 메리의 보호자 노릇을 해 왔다. 혼자서 아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달래 주었다. 그런 그가 입원해 버리면 누가 메리를 돌봐 주겠는가. 응급실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심장보다 영문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을 메리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마이클이 그랬듯이,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 두려움에 벌벌 떠는 동안에도 환자와 보호자는 기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지키려고 노력한다. 죽음의 별인 호스피스에서 수없이 목격한 바,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에 사랑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통증, 섬망, 메스꺼움, 열 등 육체적 고통은 약물로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평생 소중히 간직했던 것들을 두고 떠나는 아픔과 뜨겁게 사랑했던 세상과 단절되는 괴로움은 오직 타인과 맺은 관계로만 치유할 수 있다. 인간적인 삶의 핵심에 바로 사랑이 있다.
따라서 사랑을 선택한 사람은 상실로 인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애통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에 따른 고통이자, 사랑의 대가이며, 절대로 완화될 수 없다. 저자는 그 사실을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윌트셔 시골에서 지역 보건 전문의로 평생 일해 온 아버지는 의사로서나, 인간으로서나 저자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그런 아버지가 말기 암 선고를 받자 완화 의료 분야에서 쌓아 온 전문성과 판단력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동안 죽음 앞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법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해 왔는데, 정작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제서야 조만간 떠나보내야 할 사람의 소중한 생명에 매달리는 가족들의 퀭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슬픔도 사랑처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슬픔의 고통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임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이 남긴 것들
반대로 죽음의 당사자인 아버지는 암세포에 정복당하는 동안에도 움츠러들거나 얼굴을 감싸 쥔 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에서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그래서 거친 산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흰꼬리수리의 비상, 마늘 버터에 푹 절인 바닷가재 요리, 붉은 사슴과 석영… 아버지에겐 모두 마지막이었기에 더욱 감격스럽고 소중했다. 아버지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서 매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음미했다. 죽기 전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남은 나날을 ‘왜 나지? 도대체 왜 나야?’라고 따지면서 낭비할 수도 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아니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 가고 있어.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저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갈 거야.”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 본 적 없는 미지의 길이다. 환자는 물론 지켜보는 이들도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죽음 앞에 선 자가 다가올 운명을 당당히 받아들이면,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살아 있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러한 태도가 전파하는 울림은 상당하다. 게다가 그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나날을 더 깊이, 더 뜨겁게 음미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조금이나마 더 나은 의사이자 인간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후회 없는 삶, 그리고 인간다운 죽음을 위한 이야기들
-저널리스트에서 호스피스 전문의까지,
병 너머 인간을 보려 한 어느 의사의 치열한 고민과 따뜻한 실천
이 책에는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알카에다, 콩고 내전 등 다양한 주제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저널리스트가 호스피스 전문의로 선회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널리즘은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마다 수백만 명에게 이야기가 도달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강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유도하고 조종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영혼을 갉아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민 끝에 저자는 직접 사람을 구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늦은 나이에 의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도 비인간적인 분위기가 팽배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저자는 생명을 살리는 의학의 역할과 이를 위해 불철주야 매진하는 의사의 삶에 매료되었다. 남들이 버거워서 피하고 싶어 하는 응급실 근무를 자처할 정도였다. 하지만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목적에 몰입한 나머지, 병원에 환자의 삶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 대신 고쳐야 할 장기가 있었고, 환자들의 삶은 수치와 질병으로 위축되었다. 격무에 지친 의사들은 환자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에 무감했고,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은 손쉽게 내동댕이쳐졌다. 병원에서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추하고 잔혹한 죽음을 수없이 목격한 저자는, 병을 고치는 것만큼이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완화 의료를 전문으로 삼기에 이른다.
저자는 말한다. 죽어 감과 살아감은 이항 대립이 아니며, 그 둘은 공존할 수 있다고. 병원은 죽어 가는 남편의 곁에 아내가 누워 따스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곳, 사랑하는 아빠를 떠나보내기 전에 함께 영화를 보려고 피자를 사 들고 오는 10대에게 문을 활짝 열어 주는 곳, 반려동물을 마음껏 데려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온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녀야말로 우리가 꼭 만나고 싶었던 의사의 전형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마존의 어느 독자는 이런 평을 남겼다. “만약 내가 집에서 죽을 수 없다면, 레이첼이 일하는 호스피스에서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