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엔도 슈사쿠 문학관에서 해를 먼 바다로 보내고 나서 밤이 돼서야 도착했다. 하루 동안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이미 가득 차 버려서인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기대어 잠들었다. 일찍 잠이 들어서인지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가까운 곳부터 걸어 가기 시작했다. 이번 순례 여행은 좀 걷고 싶었다. 걸어 다니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조용히 혼자서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나가사키 26인 성인의 순교 장소다.
| | | ▲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나가사키 26인 성지 순교지. ⓒ김다혜 |
이 언덕에 오르면 나가사키 시내와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를 바라보고 성인들이 서 있다. 마치 등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켜보고 지켜주며, 어두움에서 구해 주는 이들.
| | | ▲ 순교비에 표현된 성인들의 얼굴. ⓒ김다혜 |
언덕을 올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광경은 순교를 당한 26인의 성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한참을 바라보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한 분 한 분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고, 미소를 짓고 있는 듯 따스함이 느껴졌다. 신분의 차이를 말해 주듯 옷도 달랐고,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중 한 어린 성인은 순교하는 순간 나의 십자가는 어디 있냐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어쩜 가장 두렵고 무서운 순간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얼굴을 기꺼이 만나겠노라' 라는 다짐으로 그 순간을 배교하지 않고 견뎌 내었다. 먹먹한 마음만 가득했다.
| | | ▲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 구석에 있는 토마스 코자키 성인의 기념 공간. ⓒ김다혜 |
토마스 코자키 성인은 나가사키로 끌려오면서 배 안에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그 글 속에는 하느님을 원망하는 한 줄도, 고통에 대한 호소도 없다. 오직 믿음에 관한, 그리고 가족에 관한 걱정과 사랑이 담겨 있다. 그런데 토마스 코자키 성인은 14살이었다. 그와 함께 아버지 미카엘 코자키도 함께 순교하고 성인품에 올라간다. 확신에 차 있는 신앙과 가족이 신앙 생활을 계속 해 나가길을 두손 모아 기도한다. 나는 그 편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고, 한참을 슬퍼했다.
| | | ▲ 토마스 코자키 성인의 동상. ⓒ김다혜 |
| | | ▲ 기념관 벽을 구성하고 있는 깨진 도자기의 모자이크. ⓒ김다혜 |
이 벽은 무척 특이했다. 정갈한 회색의 기념관 한쪽 벽이 깨진 도자기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부서졌으나 버려지지 않고 깨어졌으나 다시 함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모자이크.
유래는 이랬다. 나가사키에서 순교하신 성인들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순교한 사람들이 많다. 그 모든 성인의 고향에서 도자기를 가져다가 이렇듯 아름다운 벽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조각 조각으로 태어났지만, 하나의 아름다운 신앙으로 모여, 다르지만,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도자기를 하나하나 바라보며 나의 조각을 찾아본다.
| | | ▲ 순교된 곳에 심긴 동백나무. ⓒ김다혜 |
사람들이 처형된 곳에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들의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그래서 그곳에 가면 예쁜 동백나무를 만날 수 있다. 동백꽃의 의미는 진실한 사랑과 고결한 사랑이다. 진실하고 고결한 그들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나무와 꽃이다.
| | | ▲ 26인 성인 기념 성당 전경. ⓒ김다혜 |
작은 길을 건너면 26위 성인들을 기념해서 지은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손과 같은 두 기둥은 간절함의 표현일까?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불렀을까?
| | | ▲ 26인 성인 기념 성당 봉사자 할머니. ⓒ김다혜 |
여기에서도 한 할머니를 마주하게 되었다. 물론 일본어만 할 줄 아셨다. 계속해서 '저는 일본어를 잘 못해요.'라고 말씀 드렸지만, 따스한 말투로 '미안하지만 저는 일본어밖에 하지는 못합니다만, 아름다운 성당을 꼭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하시면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던 할머니.
그때 느꼈다. 성지 순례는 말과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느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가사키 26인 성인의 순교지는 내 마음에 따스함으로 남게 되었다. 김다혜(로사)
<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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