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동 '새벽시장'과 여인숙 골목
낮과 새벽이 다르다 ...제수고기 '싱싱' 햇과일 '울긋불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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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대목이라 온 장안이 들떠있다.
장보는 사람의 발걸음도 가볍고,장을 지키는 상인들의 호객소리도 흥겹다.
옛날과자 파는 노점에서는 뽕짝음악이 간드러지고, 육곳간에서는 추석에 쓸 소고기,돼지고기가 지천이다.
제수고기는 싱싱하고,햇과일들은 울긋불긋 색색이 눈부시다.
푸새들도 가을을 잊고 더욱 푸른 물이 선명하다.
추석 앞이라 다 좋아 보이는 것인가?
시장 인심마저도 다사롭고 또 풍성하다.
부산 충무동 새벽시장.
이 곳의 낮 시장은 덤이다.
365일 내도록 오전 2~3시면 어김없이 장이 열렸다가,아침 9시면 장이 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의 새벽을 가장 먼저 여는 시장이 새벽시장이다.
남포동 건어물시장과 더불어 통칭 자갈치시장이라 불리기도 하나,엄연히
자신의 '호적'을 떳떳하게(?) 가지고 있는 독립된 시장이다.
충무동 교차로 부근에서 남부민동 공동어시장에 이르는 300여m 시장 길이 '새벽시장'인 것이다.
1974년에 형성되었으니 햇수로도 벌써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새벽시장은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밥집이나, 식료품 가게 주인장들이 주로 애용하는 농수산물 재료시장이다.
그래서 인근 공동어시장이나 엄궁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로 들여온 농수산물을, 아침영업을 준비하는 상인들을 위해 '새벽의 시장'으로 열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곳이 '새벽시장'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낮의 시장은 뱃사람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어선들이 주로 정박해 있는 '남항'이 인접해 있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이 곳은 뱃사람들의 삶의 해방구이자 마음의 안식처다.
어선을 타고 내리는 뱃사람들의 터미널이기도 하고,배에서 잠시 내려 쉬어가는
중간 기항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시장에는 뱃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산재해 있다.
배 탈 때 필요한 선용품 가게나 헌옷가게도 많지만,새벽시장 뒷골목에 있는
'여인숙(旅人宿) 골목'이 그들을 위한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겠다.
배를 타기 위해 멀리 고향을 떠나온 뱃사람들은 모두 이 여인숙으로 스며든다.
'바다의 막장' 앞에서 '잘 살아보자'며 독한 마음 다잡으며 눅눅한 잠자리에서 밤을 새웠을 그들.
그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 바로 '여인숙 골목'인 것이다.
특히 이 골목에 있는 '감옥창살'의 전당포와 한 번 이용료 200원인 유료 화장실은,
뱃사람들의 팍팍한 일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도 여인숙 문 앞에는 고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분 속 풀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있어,
그나마 뱃사람들의 향수병을 달래주기도 한다.
새벽시장에는 뱃사람들의 깔깔한 입맛을 풀어주기 위한 맛깔스런 맛집도 많다.
구수한 밥맛의 '밥집골목'과 '바닥끌이 어선'의 자연산 생선회를,그날그날 맛 볼 수 있는 너댓 곳의 '고데고리 횟집(싸면서도 평소 먹기 힘든 다양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적적할 때 낮술 먹기 좋은 10여 집의 '감자탕 포장마차'와 '돼지껍데기 골목'이 그 것이다.
물론 부산사람 모두에게도 소문난 '부산의 대표 맛집'들이다.
'고데고리 횟집'에 들어선다.
벌써 뱃사람 두어 무리가 한창 술판을 벌이고 있다.
자신들의 오랜 뱃일 자랑이 거나하다.
펄펄 살아있는 전어로 구이를 시킨다.
연탄불 위의 전어가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구이를, 만원에 예닐곱 마리 얻어먹는다.
살아있는 비싼 전어를 구워놓으니 구수한 냄새부터 다르고,부드러운 속살까지 기가 찬다.
입에 살살 감긴다.
곁들이 홍합탕도 얼큰하니 좋고,삶은 고동도 고숩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팔뚝만한 능성어를 "5만원에 잡수시라"는 주인장의 배려를 물리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