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정 사항 ; 제주도 민속자료 제3-20호(1978년 11월 14일 지정)
•위치 ; 조천읍 신촌리 2462번지.
•건립년대 ; 1822(道光2년)
•유형 ; 민가, 초가
주거 양식은 부족이나 민족이 생존하면서 기후 조건에 따라 자연에 순응 또는 대항하면서 정형화되어 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제주도의 초가는 바람과 싸우면서 살아온 제주인의 삶 그 자체를 잘 표현하고 있는 주거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제주도 초가의 형태인 초가 지붕을 띠로 덮어서 굵은 밧줄로 묶은 형태이다. 한반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농업 활동의 부산물로 얻어진 볏짚을 지붕의 재료로 사용하였으나, 제주도의 초가는 한라산 기슭 초원 지대에서 생산되는 자연적 초재(草材)인 띠(제주어로는 새[茅])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보통 1~2년마다 한번씩 새롭게 이며, 그 시기는 10월~12월 초까지이다. 지붕을 이을 때는 자(子), 오(午), 묘(卯), 유(酉)의 천화일(天火日)을 피하여 지붕을 이게 되는데, 만일 천화일에 지붕을 손보게 되면 화재나 재앙이 집안에 생겨 멸망하게 된다고 믿었다. 띠를 펴서 덮고 그 위를 줄로 그물처럼 얽어맨 지붕은 제주의 거센 바람에 대항하며 살아온 삶의 역사, 인내심을 표현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집줄은 동서 지방에 따라 구별되는데, 동쪽 지역은 3㎝ 내외인 반면, 서쪽 지역은 4㎝ 내외로서 지붕의 중후한 감을 준다. 지붕에는 마루를 만들지 않는데 이런 기본 틀은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견딜 수 있는 건축 기술이다.
벽체는 2중벽으로 되어 있는데, 나무와 흙으로 축조된 주벽체와 자연석 현무암으로 축조된 외부 벽체[덧벽]로 구성되어 있다. 주벽체의 골격은 가시나무·참나무·괴목 등의 온대 상록수를 사용하였고 골격과 골격 사이를 대나무 혹은 잔나무 가지를 새끼로 엮어서 그 안팎으로 흙을 발랐다. 외부 벽체는 구조와는 관계없이 암회색 다공질 현무암을 막쌓기법으로 축조되는데, 모서리 부분의 벽체는 가능한 한 각(角)이 생기지 않도록 둥글게 쌓는데, 이 또한 각(角)이 생기지 않는 만큼 바람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현무암으로 마감된 외벽은 중후한 느낌과 아울러 지역성을 잘 표출하고 있다.(디지털제주문화대전)
신촌리 조규창 가옥은 1882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른바 조규창댁으로 불린다. 주위 지형보다 낮은 곳에 돌담을 두르고 건물을 따로 배치하였다. 조규창 가옥의 울타리는 현무암을 쌓아 올린 돌담이며, 울타리가 대나무들과 어우러져 있다.
이 조규창 가옥은 3칸의 안채는 기와집, 밖거리는 전통적인 초가집으로 기다란 올레를 갖춘 제주 민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東에서 西로 기다란 ‘S’자 모양의 올레가 밖거리에 달린 이문간에 이어진다. 西向집인 이문간에는 쇠막과 장남방이 있다. 장남이란 하인을 일컫는 말이다. 나머지 3칸은 상방(마루)을 중심으로 이문간 쪽으로 구들 2칸과 다른 쪽에 작은 마루와 구들이 달린 5칸 형태이다. 집의 남쪽 측면에는 정지로 출입하는 나무문이 달려 있고, 정면에서 볼 때 좌우 벽에 조그만 정사각형의 나무 창이 달려 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심하게 쇠락하였던 것을 2013년초에 복원하였다. 돌담벽에 시멘트로 보강하였던 것을 복원하면서는 흙벽으로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기둥이나 기타 부재를 다시 쓴 부분도 있고 새로운 부재를 쓴 곳도 있으며, 두꺼웠던 지붕은 다 걷어내고 새로 덮었으므로 매우 얇아졌다. 제주도의 초가에는 비바람이 칠 때 내려서 막고 햇빛이 비칠 때는 올려서 상방(上房)에 뜨거운 햇살이 비치지 않게 하는 기능을 가진 풍채가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집에는 2006년에도 설치되지 않았었고 복원한 건물에도 설치하지 않았다.
《작성 1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