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수도인의 현재 과보
제1절 아세세와 여섯 외도의 학설
1 어느 때 부처님은 일천이백오십 제자와 함께 왕사성의 신의神醫인 기바의 암라菴羅 동산에 계셨다. 그때에, 마가다 국 위제희偉提希 부인(빈바사라 왕후)의 아들 아사세는, 사 월 보름 날 밤에 재계(보름ㆍ그믐에 하는 의식)하고,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화려한 궁전 누각에 앉아 있었다. 그는 갠 하늘에 밝게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고
"아, 밝은 달밤이여! 참으로 사랑스러워라, 밝은 달밤이여! 참으로 즐거워라, 밝은 달밤이여! 이 밤에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모시고 좋은 법문을 들으며 마음을 기쁘게 할까?"
라고 말했다. 그때에 한 대신이 여쭈었다.
"대왕이시여, 여기에 부란나가섭이라는 바라문이 있으니, 한 교파의 교주로서 지식이 넓고 이름이 높아서, 여러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를 모시고 법문을 들으면, 마음을 기쁘게 하오리다."
왕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다른 대신이 또,
"대왕이시여, 여기 말가리구사리라고 하는 바라문이 있으니, 한 교단의 교주로서 지식이 넓고 이름이 높아,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습니다. 대왕은 그분을 모시고 법문을 들으면, 마음을 기쁘게 하오리다."
왕은 또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또 다른 대신들은 아기다시사흠바라라는 도인을, 또는 가라구타가전연, 산사야비라지자, 니건다야제자 등 당시에 이름 높은 도인들을 차례로 추천했다. 그러나 왕은 다 응락하지 않았다.
그때에, 아직 나이 어린 아이로서 신의라고 이름난 기바가, 왕의 한 옆에 앉아 있었다. 왕은 기바에게
"나의 충실한 기바야, 너는 왜 잠자코 말이 없느냐?"
그때 그는 일어나 왕에게 여쭈었다.
"대왕이시여, 여기 부처님이신 정각자正覺者가 일천이백오십 제자와 함께 암라 동산에 계시오니, 대왕께서는 부처님께 나아가 그분을 모시고 법문을 들으면, 마음을 기쁘게 하오리다."
"나의 충실한 기바야! 어서 부처님을 찾아 뵐 차비를 차려라."
하고, 곧 코끼리 수레를 타시고 암라 동산을 향하셨다.
아사세는 기바의 인도로 암라 동산에 다다라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 쪽에 좌정했다. 왕은 마치 맑게 갠 호수 모양, 침착하게 앉아 있는 비구들을 바라보고
"이 비구들이 갖추어 있는 적정한 침착성을, 나의 태자 우다이발다도 가추어지이다." 하고 기원했다. 이때에, 부처님은
"왕이여, 왕은 태자를 사랑하므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예, 그러합니다. 나는 태자 우다이발다를 사랑합니다. 이제 이 비구들이 갖추어 있는 그 적정한 침착성을, 나의 태자 우다이발다에게도 갖추어지기를ᆢㆍ"하고 부처님께 정례頂禮하고 다시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 여쭈고자 하는 말씀이 있사오니 허낙하여 주시오리까?"
"왕이여, 묻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물으시오."
"부처님이시여, 이 세상에는 가지가지 기술과 직업이 있습니다. 예컨대, 코끼리를 잘 길들이는 사람, 말을 잘 다루는 사람, 수레를 잘 다루는 사람, 궁술사弓術師ㆍ군기수ㆍ전략가ㆍ군사정탐자ㆍ장갑사ㆍ요리인ㆍ이발사ㆍ제과자ㆍ편물자 ㆍ직물사ㆍ도기사ㆍ인장ㆍ지환제조인 등 허다한 기술과 직업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 그 기술의 보수를 현세에 받아 누려 그 몸을 행복하게 하고, 부모ㆍ처자를 안락하게 하며, 또는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보시하여 천계에 날 만한 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출가하여 수도하는 사문도 이와 같이, 현세에 눈에 보일 만한 과보를 나태내 보일 수 있습니까?"
"왕이여, 왕은 일찍이 이런 질문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해 본 일이 있습니까?"
"예, 일찍이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에게도 이런 질문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들은 무어라 대답했습니까? 왕이여, 만일 방해로울 것이 없거든 말해 보시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 앞에서 이런 것을 말하더라도, 나에게는 방해로울 것 없습니다."
2 "그러면 말해 보시오."
"부처님이시여, 어느 때, 나는 부라나가섭을 찾아, 그에게 예의를 베풀고 앞서와 같이 물었습니다. '세상의 기술과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 기술과 노력의 보수로 현세에 행복과 안락을 누리는데, 사문은 수도하여 현세에 어떤 과보를 나타내느냐'고, 그랬더니 부라나가섭은 '왕이여, 어떤 일을 스스로 했건 또는 남을 시켜 했건, 스스로 괴로워했건 남을 괴롭게 했건, 남의 생명을 박해하고 남의 물건을 도둑질했건, 다른 이의 아내를 간통하고 거짓말을 했건, 이런 일로 해서 아무런 죄악도 될 것이 없다. 날카로운 칼로 어떤 목숨을 끊어 고깃덩이로 만들더라도 이것은 아무런 죄악도 될 것이 없고, 또 그 죄악의 과보도 있을 리 없다. 항가 남쪽에 가서 사람을 살육하고 사람을 괴롭히더라도 그것이 죄 될 것도 없고, 항가 북쪽에 가서 보시하고 천신에게 제사할지라도 그것은 공덕 될 것도 없고, 그 공덕의 과보도 없다. 계를 가지고 수행하고 참말을 한다고 해서 그로 인해 공덕이 생기는 것도 아니요, 공덕의 과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부란나가섭은 내가 사문의 현세에 대한 과보를 물었는데, 모든 것은 인과가 없다는 말을 하였으니, 그것은 마치 암라의 과실을 물었는데, 라푸자의 과실 이야기를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시여, 나로서는 어텋게 나의 영내에 거주하는 바라문을 불쾌하게 하겠느냐 하여, 저의 말에 대하여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았읍니다만, 마음속으로는 불만을 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