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121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1~13).
내 마당만 밟을 뿐~~~~~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비길 만큼 죄악을 행하면서도 형식적으로 여호와께 제사하는 가증한 일을 되풀이했다. 이에 이사야는 유다의 죄악 중 가장 먼저 종교적 범죄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데, 회개와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제사의 무익성을 지적한다. 유다 백성들은 반복되는 종교의식을 가면으로 하여 자신들의 죄악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사야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에 진실한 순종이 없는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는 말씀으로 그들의 외식된 종교 행위의 허상을 꼬집어 냈다. 하나님과 가장 원초적인 교제의 장인 예배는 가장 순결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참된 신앙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요 4:23~24),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신 6:5), 이웃에게 온전히 선을 행하는 것이다(레 19:18). 또한 진정한 예배는 성소라는 특정한 장소에서만 드려지는 것만이 아닌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선한 행위까지 포함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제물의 문제가 아닌 제물을 바치는 자의 자세의 문제로, 아무리 온전한 제물로 제사한다 할지라도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을 때 그 제사는 가증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상징하는 분향을 가증한 것이라 지적하신다. 이는 계속되는 범죄로 인해 더렵혀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회개도 없이 습관에 따라 형식적으로 드리는 유다 백성들의 잘못된 분향 행위를 지적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의 예배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인간들만의 행사 자리는 아닌지? 또한 예수님은 전혀 보이지 않고 목사의 말잔치로 끝나버리는 의식은 아닌지? 결국 아무런 은혜와 감동이 없이 주일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예배 출석만이 목표가 되어 예배당 뜰만 밟고 돌아오는 자기만족의 수단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소위 ‘나영이 사건’이라고 불린 ‘소원’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정말 짐승의 탈을 쓴 그야말로 ‘인면수심’의 조두순이 등교하던 8살의 여자아이를 교회 안의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엽기적이고 끔찍한 성폭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보는 내내 분노의 게이지가 한없이 올라가는 데, 술을 먹고 저지른 행동이고, 나이가 많다(당시 57세?)는 이유로 12년형을 선고받은 장면이 나오자 곳곳에서 분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영화를 본 후 여러 자료를 뒤지던 중 조두순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에 더 경악했습니다. 오늘 이사야서를 보면서 전과 17범 가운데 성폭행이 5번이나 되는 그도 주일이면 예배를 드렸을 텐데...과연 그가 드린 예배는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드린 예배였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씁쓸하더군요. 하나님 없이 영혼 없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아닌지 되돌아봅시다.
오늘의 기도 :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 오늘날 우리는 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과연 얼마나 하나님께 집중하고 예배를 드리는지 돌아봅니다. 행여나 성전 마당 뜰만 밟는 형식적인 예배에서 벗어나 한번을 드리더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