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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3일은 일본 야구계에 일대 반향을 일으킨 날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50년 만에 여성 프로야구 리그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야구장을 찾는 여성이 많지만, 실제로 야구를 즐기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14개의 클럽팀을 비롯한 대학, 고교에서 그라운드를 뛰는 여성 선수는 전국적으로 약 6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런 일본 여자야구에 기량 발전과 저변 확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일본 여자 프로야구기구(GPBL)가 발족한 것은 작년 8월이었다. GPBL이 발족하게 된 계기를 카타기리 사토시 대표는 “우연이 낳은 필연”이라고 설명했다.
카타기리 대표가 여자야구를 처음 접한 것은 3년 전인 2007년 8월이다. 거래처인 와카사생활 카쿠타니 켄이치 사장의 권유로 전국고교 여자경식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야구장에 간 것이 그 계기였다. 이전까지 소프트볼이 아닌 야구를 여성이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는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녀들의 플레이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야구를 사랑하는 신데렐라들
세상사 관심이 있는 만큼 보이는 것이 이치다. 고교, 대학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야구를 계속하기 어려운 여자야구의 현실도 알게 된다.
“카쿠타니 사장과 함께 그녀들이 계속해서 마음 놓고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방법이 없을지 머리를 맞댔다. 처음에는 여자야구 월드컵과 고교여자경식야구연맹을 지원하면서 고교, 대학팀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운동장 확보와 금전적인 문제 등으로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실의 높은 벽에 막혀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를 여자프로야구로 인도한 것은 카쿠타니 사장이 던진 말이었다. “우선 지금 그라운드를 누비는 600명의 선수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여자프로야구를 만들면 학교나 기업 등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역시도 “기존의 클럽팀을 모아서 리그를 만들 생각은 했지만, 여자프로야구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생각은 공상에 그칠 뿐이다. 그 길로 두 사람은 일본 최남단인 카고시마에서 최북단인 홋카이도까지 전국을 돌아다녔다. 여자야구 관계자 등을 만나서 자신들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2009년 8월 17일 GPBL이 정식으로 창립했고, 10월 30일(쿄토)과 11월 4일(사이타마 세이부돔)에는 트라이아웃이 시행됐다.
두 차례의 트라이아웃은 일본 전국에서 몰려온 129명의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자 야구선수로 대성황을 이뤘다. 그중에서 1, 2차 테스트를 통과한 인원은 30명. 작년 12월 21일에 있었던 드래프트를 통해서 30명은 각각 효고 스윙 스마일스와 쿄토 애스토 드림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즉, GPBL의 첫 시즌은 단출한 2팀으로 출발한다. 4월 23일부터 10월 말까지 기본적으로 홈 어웨이 방식으로 총 40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각각 1억 엔의 양 구단 자본금과 유니폼 광고 및 메인스폰서도 와카사생활에 전적으로 의존할 뿐 다른 기업의 참여는 보이지 않는다. 선수 연봉은 차별 없이 일률적으로 200만 엔이며, 숙소 등의 비용을 합치면 1인당 연간 500만 엔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 광고비와 경기 운영비 등이 추가하면 “한 구단의 1년 운영비는 1억 2천만 엔에서 1억 5천만 엔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불투명한 GPBL의 미래
“첫해는 오로지 홍보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래서 광고비의 비율이 높고, 연습장 등 초기 투자로 말미암아 상대적으로(기존 독립리그의 한 팀이 1년간 8천만 엔에서 1억 5천만 엔 정도를 쓰고 있다) 운영비가 많이 들지만, 2011년부터는 적어질 것으로 본다.” GPBL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자프로야구라는 새로운 콘텐츠가 많이 알려지면 자연히 팀 수도 스폰서도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카타키리 대표는 “올해 목표는 흑자나 그런 것이 아니라 총 관중 10만 명이다.”이라고 강조했다. GPBL은 올 시즌에 40경기를 하기에, 경기당 2,500명을 동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입장료는 1,500엔.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 수입은 1억 5천만 엔으로, 한 팀의 1년 운영비에 불과하다. 각종 구단 상품과 음식 등을 판매한다고 해도 적자를 피할 수는 없다. 적자를 각오하면서 여자프로야구를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는 일단 여자프로야구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라면서 “독립채산은 3년 정도 지나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라고 카타기리 대표는 설명했다. 사실 일본에서 여자야구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다. 일본 독립리그에 이어서 미국 독립리그에 진출한 요시다 에리가 주목을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일 뿐이다. 여자야구 자체가 관심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일본 전국에 정식으로 여자 야구팀이 있는 고등학교는 5개뿐이다.
GPBL은 여자프로야구의 출범이 이런 열악한 일본 여자야구의 현실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프로리그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여자야구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고교나 대학에서 여자야구팀이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저변이 확대되면, 여자프로야구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GPBL의 기본 이념이다.” 카타기리 대표의 말이다.
그러나 GPBL의 미래는 파란불이 아니다. 오히려 빨간불이다. GPBL 관계자는 “한 팀당 5만 명씩을 동원하는 것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수치다.”라고 설명했지만,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칸사이 독립리그의 한 관계자는 “일본 독립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BC 리그도 한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1,300여 명 정도다. 여자프로야구가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해도 그 이상의 관중을 동원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GPBL의 성패는 ‘스타 만들기’에 달렸다. 여자 스포츠에서는 기량보다 외모와 같은 선수의 이미지가 그 스포츠의 인기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여자 피겨스케이팅, 여자 골프, 여자 배구, 여자 농구 등에는 인기를 주도하는 이른바 ‘얼짱’들이 있다. GPBL로써는 실력과 외모를 갖춘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 결과에 따라서 10만 명이라는 관중 동원 목표도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성의 일본야구, 단일성의 한국야구
“미(美)의 본질은 다양성 속의 통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야구에 비유한다면, 프로야구, 고교야구, 대학야구, 사회인야구, 리틀야구 등 다양한 야구가 공존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야구문화의 정착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야구의 저변은 매우 두텁다. 프로야구를 정점으로 리틀야구, 학원야구, 실업야구에 해당하는 사회인야구, 일반인의 생활야구 등 다양한 야구가 성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한국야구는 프로야구만이 약육강식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리틀야구를 비롯한 고교, 대학야구 등은 인큐베이터에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야구선수의 진로와 관련된 실업야구는 그 단체만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것은 대학이나 고교를 졸업한 야구 선수가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다면, 재도전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대한야구협회는 내년부터 학업을 병행하면서 야구를 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고교야구에 주말리그를 도입할 예정이다. 주말리그의 시행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윤정현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는 “야구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야구장 문제는 학원야구만이 아니라 사회인야구의 현안이기도 하다. 전국야구연합회에 등록된 사회인야구팀은 3,341개 팀(2009년 기준)이지만, 야구장은 프로야구 홈구장을 포함해 140개(야구장백서, 2009)밖에 안 된다. 반면, 일본에는 소프트볼 경기장을 포함해서 10,870개(일본통계연감, 2009)나 있다. 근본적으로 야구 저변 자체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 원인에 대해 한 야구인은 “야구 인프라가 열악한 것은 프로야구만 주목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프로야구 600만 관중 시대에서 알 수 있듯이 ‘보는 야구’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황이다. 그러나 ‘하는 야구’는 최근 캐치볼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비하다. 시민이 관심을 두고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세금을 들여서 야구장을 만들 지자체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650만 명이라는 양적 목표 속에 감춰진 한국야구의 어두운 현실인 것은 분명하다. 조금 늦은 감도 없지는 않지만, 지금이야말로 한국야구의 다양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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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헐 일본 여자프로야구 ㄷㄷ 역시 일본은 야구 인프라가 죽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