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장군 묘소 등 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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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海垣, 이경국)
정규산행을 하다보면 한달이 무척 빠르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 했으니 산행을 즐기는 자는 인자(仁者)에 가까운 사람이다.
필자도 바다보다는 산이 좋으며 물보다는 흙을 좋아하는 편이다. 태생이 시골출신이니 그 영향이 크다고 본다.
산은 사철변화를 하면서 제자리에 있지만 산행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연히 달라진다.
眞李산우회 7월산행은 고양시 덕양구에 소재한 최영장군 묘소와 인근 몇군데를 답사하는 코스로 정하다.
구파발역에서 19명 (여성5명)이 모여서 다시 버스로 이동하다.
族親은 혈육의 정이 있어 나이와 항렬(行列)을 중요시 여기는 특징이 있다.
만나면 반갑기 짝이 없고 힘든 산행을 마치고 헤어질 때는 더 반갑다. 이는 인간의 귀소본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선 조선왕릉이나 황희정승 묘소 등 많이도 답습을 한 바 있다. 사실 인도의 타지마할묘나 진시황릉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무덤이 아니던가!
최영장군은 왜구와 홍건족을 물리친 고려의 명장이었다. 위화도 회군, 무덤에 풀이나지 않는 다는 등
배운 사실이 스치다.
''황금을 돌같이 보라'' 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최영장군의 묘소 뒤편에는 父親 최원식의 묘가 있다.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아버지께서 ''황금을 돌같이 보라''는 말씀을 최영에게 당부를 하였는데 최영장군이 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황금은 비싸지만 돌(水石)은 황금보다 더 비싸다. 물론 역설적이고 아니러니한 얘기지만 그렇다는 말이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 하지만 필자는 위화도 회군에 대해서는 늘 생각의 여지가 있다고 여겼다.
최영장군 묘소가 있는 일대는 무덤이 많다. 무덤이 주는 후세 사람들의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애환의 무덤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성녕대군의 묘, 경안군 묘 및 성창군의 묘는 마음을 아리게 하다.
넓직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인사말과 소개의 시간이 이어 지다. 명해설과 다양한 종류의 저서 그리고 자료를 준비해 오신 이은식 박사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다.
이원욱 화수회장님 께서 감사인사와 산우회와 화수회 발전에 대한 좋은
의견을 개진해 주시다.
이선기 전 회장님 께서도 산우회 발전에 대한 고무적인 얘기가 이어지다. 고교동창 남홍만, 김붕한
친구의 인사, 처음 동참하신 이동수 서장님에 대한 환영의 박수도 있었다.
이갑호 회장님의 인사도 이어지다.
이대식님과 이광식님 은 산행에 처음으로 나오셔서 무척 반가웠다.
다섯분의 귀하신 他姓氏분께 갈채를 보내다. 시인 신언수님은 본인의 시집을 선물로 주시어 오늘은 산행을 하면서 선물로 책을 챙기게 되었으니 모두 행복에 겨운 모습이다.
늦은 식사는 숲속의 가마솥 '장수두부 '에서 콩국수와 찌게로 꿀맛 같은 시간이었다.
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김홍집의 묘소였다.
총리대신으로 개혁에 대한 반발로 허무한 죽음을 당하여 그 묘소는 본붕이 얼마나 작던지 놀라웠다.
날씨가 부조를 해주어 불편없는 답사를 마치게 되었다. 함께 해 주신 19명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거금의 중식대는 화수회 이원욱 회장님 께서 쾌척(快擲)하여 주셨다. 고맙습니다.
8월은 혹서의 기간 이라 산행은 쉬고 9월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우리는 산새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귀가길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