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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행실도, 전 김홍도, 18세기, 종이에 채색, 21.7 cm × 14.7 cm, 호암미술관 소장. |
오륜(五倫)이란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떳떳한 도리를 말합니다. 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켜 온 소중한 가치입니다.
오륜은 원래 중국의 고전인 ‘맹자’ 속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부자유친(父子有親)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둘째 군신유의(君臣有義)입니다. 임금과 신하 사이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의리란 서로 믿음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지요. 셋째는 부부유별(夫婦有別)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하는 일이 다르듯이, 남편과 아내도 각기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넷째는 장유유서(長幼有序)입니다. 찬 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붕우유신(朋友有信)입니다. 친구 사이는 서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평소 이 다섯 가지 덕목을 줄줄 외우면서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좀 바뀌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대적인 차이일 뿐 그 가치가 아주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 사랑하고, 부부간에 각자 의견을 존중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를 믿음으로 사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는 오륜을 잘 따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 이름이자 이 책 속에 나오는 그림을 말합니다. 이 책은 조선 정조 때 제작된 것으로, 150여 명이나 되는 인물들의 모범적인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사람, 임금에게 충성스러운 신하, 절개를 굳게 지킨 여인, 우애 깊은 형제와 친구 등이 그 내용입니다.
이 책은 글과 그림을 함께 실어 누구나 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나무 판에 새기고 종이에 찍어서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도덕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 그림은 그 중 한 장면으로, 판화가 아닌 실제 붓으로 그린 것입니다. 정조 때에 활동했던 뛰어난 화가인 김홍도가 그렸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림입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한 소년이 도끼를 들고 있고 그 아래 커다란 호랑이가 납작 엎드려 있는 광경이 보입니다. 폭포가 떨어지는 깊은 산중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려 시대에 효자로 유명한 최루백을 다루고 있습니다.
루백이 열다섯 되던 해일입니다. 루백의 아버지 최상저는 사냥을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역시 사냥을 나갔다 호랑이에게 물려갔습니다. 루백은 어머니께 울며 호소하였습니다.
“어머니, 제가 아버지를 물고 간 호랑이를 기필코 잡아 오고야 말겠어요.”
루백의 어머니는 아들의 효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애야, 네 아버지도 잡지 못한 호랑이를 네가 어찌 대적할 수 있겠느냐?”
루백은 이런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쉽게 꺾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어찌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호랑이를 잡고야 말겠습니다.”
루백은 마침내 도끼를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온종일 산을 헤매어도 호랑이는커녕 그 발자국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개울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나무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숲 속에서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하였습니다. 루백은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하고 호랑이가 간 길을 쫓았습니다.
소나무가 간신히 뿌리를 내린 절벽 아래 계곡에는 시원한 물줄기가 세차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당같이 평평한 너럭 바위 위에 어마어마하게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낮잠을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물소리가 커서 루백이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루백의 지극한 효성에 하늘도 감동하였던 모양입니다. 루백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단숨에 도끼로 호랑이를 내리쳤습니다.
배를 갈라 보니 역시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틀림없었습니다. 뱃속에 사람 뼈가 가득 들어 있該?때문입니다. 루백은 아버지의 뼈를 모아서 장례를 잘 치루고, 호랑이 고기는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버렸습니다.
이후 최루백은 백 살이 넘도록 장수하며 높은 벼슬을 두루 지내,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출처: 소년한국일보 http://kids.hankooki.com/edu/culture_symbo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