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문화(Hellenism)를 퍼트리며 원정을 계속하던 알렉산더가 인도 인더스 강 유역의 원정을 중단하고 돌아오던 중 32세의 젊은 나이에 원인 모를 병(말라리아 혹은 열병?)으로 요절하자 7명의 장수에 의해 나뉘어다스려졌다, 권력싸움에 3명은 도태되고 4명이 분할통치하게되었다.
4명 중 3명은 꽤 큰 규모의 나라를 세웠지만, 1명의 장수는 소아시아 북쪽에 작은 헬라왕국인 ‘페르가몬’을 세워 예술과 문화 중심지로 헬레니즘을 지켰다.
3명의 왕조 중 첫째로 알렉산더 고향인 마케도니아에 세운 ‘안티고누스’ 헬라왕조, 두 번째가 이집트와 퀴레네, 홍해와 동아프리카지역, 에게 해의 여러 섬들, 그리고 소아시아 해안과 갈리폴리반도의 일부에 세운 ‘프톨레미’헬라왕조(클레오파트라가 마지막 왕), 그리고 옛 페르시아제국의 대부분과 시리아북부, 메소포타미아 인도서북부,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 투르케스탄까지 지배한 가장 강력한 ‘셀루커스’헬라왕조였다.
이 당시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대는 프톨레미 왕조에 속하여 종교적 전통이 존중(이 때 당시 국제어인 헬라어로 성경이 번역(70인역)받았지만 셀루커스왕조가 빼앗아 온갖 악정과 핍박을 하였다. 사실 유대 땅은 욕심을 내는 사람이 많았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와 전쟁을 치루는 중 클레오파트라와 그 자녀들에게 많은 나라를 선물로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클레오파트라가 유대를 달라고 졸랐는데 아무리 사랑하는 애인의 요구지만 유대는 안된다고 했답니다.
셀루크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는 그리스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6만 대군을 이끌고 쇠퇴해 가고 있는 ‘마케도니아’를 공격했는데 이미 그리스요청으로 ‘마케도니아’을 정복한 로마군과 큰 싸움이 되었다. 마케도니아로부터 독립한 그리스는 복수의 감정으로 셀루크스 왕조의 개입을 요청했던 것이다. 이 때 국내 문제로 셀루크스에 망명해 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장군을 내 세우자 로마는 한니발과 맞상대하기 위하여 스키피오를 내세웠다. 결과는 로마의 승리로 인해 셀루크스는 에게 해 제해권도 빼앗기고 막대한 배상금(5천 달란트; 은 1달란트은 약3억원)도 물어야 했다.
이와같이 알렉산더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제국은 분할되고 결국 헬라제국도 문을 닫게 된다. 애굽(이집트)을 통치했던 프톨레미왕조는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고, 셀루크스 왕조 또한 밀러오는 로마제국의 힘 앞에 결국무릎을 꿇고 만다. 유럽과 아시아 와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까지 두렵게 했던 헬라 제국도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국이여 영원하라’는 이렇게 또 사라지는 구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