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찾느냐, 와서 보아라.
세례자 요한의 인도에 따라 찾아온 두 제자에게 주님께서 무엇을 찾느냐,
말씀하십니다. 이에 어디에 묵으시냐고 반문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 곁을 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와서 보아라.
지난 인사이동으로 오게 된 병원과 수녀원의 자리,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던 제게 선배 신부님께서 주셨던 말씀이 늘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필요하니 보내신 거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지만, 살아보니,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오자마자 벌어진 두 곳의 큰 공사로 인해 매일 어수선한
일상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맡겨진 소임을 살아내시는 수녀님들의 모습을
보며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여정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묵상으로 이어집니다. 정한 시간 없이 수시로 찾아드는 병자성사와 장례미사를
준비하고 봉헌하면서 늘 깨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이런
세상에서도 여전히 주님의 은총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음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렇게 주신 자리에 살아보니, 이 자리는 그저 흐름에 따라온 것이 아니라,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은총과 깨달음이 제게 필요했기 때문에 보내셨음을
비로소 깨닫고 감사드리는 요즘입니다.
두 제자는 주님께서 내어주신 자리에 함께 살아가면서 구원을 주실 참 스승이
주님이심을 알게 되었기에 이 자리에 베드로를 불러 함께 제자로서 활동하게
되었고, 이후 수많은 사람을 주님 곁으로 인도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사도로서 살아갑니다. 그처럼 우리도 주어지는 자리에서
내 생각이나 감정을 고집하지 않고, 이를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며
살아보려 애쓰면, 여기에 마련된 주님의 은총 안에서 나도 내 소중한 이들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사도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묵상해 봅니다.
무엇을 찾느냐, 와서 보아라. 주어지는 수많은 자리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함께 살아보자고 당신 곁으로 초대하십니다.
내 것을 비워내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은총에 감사드리며 당신의 제자로 거듭나는 오늘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글 : 장원일 안토니오 신부 – 대구대교구
무조건 내 편
중학교 2학년 수민이(가명)를 처음 만난 건
소년 분류심사원에 있는 접견실에서였습니다. 기록을 읽어보니,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버지가 수민이를 홀로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생업에 바쁜 아버지는 수민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던 수민이는 가출을 반복하면서 아버지와의 갈등도 심했습니다.
수년째 소년보호사건 국선 보조인으로 활동하다 보니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수민이는 여느 친구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접견실에 들어온 저를
보자마자 한 질문이 “혹시 재판 때 아빠가 오신다고 하셨나요?”였습니다.
이미 수민이 아버지와의 통화로 재판에 오시지 않음을 알고 있던 저는
애써 모른 척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사건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지,
수민이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등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얻기 위해 여러 질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민이는 시종일관 마치 인생을 포기한 사람마냥 ‘몰라요, 없어요,
기억이 안 나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라는 식의 퉁명스러운 답변만을 했습니다.
마치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최대한의 선처를 받고자 하는 의지도 수민이에게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접견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수민이가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변호사님, 세상엔 내 편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사무실로 돌아와서도 수민이의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다음 날 다시 수민이를 찾아갔습니다.
“수민아, 기록을 보니 종교가 천주교로 되어있더라.
재판 끝나고 다시 성당에 다녀 보는 건 어떨까?
네가 세례를 받았으니 너는 ‘영원히 하느님의 사람’이고
‘하느님은 무조건 네 편’이야. 그걸 꼭 느껴보면 좋겠구나.
나도 수민이 편에서 최선을 다해볼게.” 여전히 퉁명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알겠다.’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수민이가 고마웠습니다.
며칠 후 가정법원에서 수민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수민이는 법정으로 들어오면서 혹시라도 아빠가 왔는지 이리저리 찾는 눈치였고,
끝내 아빠가 보이지 않자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센 척 했지만 수민이는 여전히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는 여린 소녀였습니다.
왜 그렇게 길게 변론 하냐는 판사님의 따가운 시선을 끝까지 외면한 채
저는 수민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점 모두를 변론하였습니다.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제가 수민이 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수민이가 그 재판 때 제가 자기의 편에서 최선을 다해 변론했다는 것을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수민이가 가출을 안 하는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혹시 성당은 잘 다니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수민이가 스스로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하느님은 무조건 자기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인생이 힘들 때
누군가는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거나 노력해 준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 : 성진욱 베드로 – 법무법인 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