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차상위’ 세대, 빈곤 청소년
- “꿈동산 아이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꿈동산 아이들’과 항상 같이 지내왔다. 평일날 아침 해맑은 미소로 TV에 나와 꿈과 행복을 이야기하던 그 ‘꿈동산 아이들’이냐고? 아니다. 우리의 ‘꿈동산’은 모 그룹에서 소년소녀가장들의 거처 마련을 위해 지어준 아파트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꿈동산 아이들’로 불렸다. 경제적인 지원과 사람들의 관심 때문이었는지, 꿈동산 아이들은 꿈동산에 들어오지 못한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 비해 원만하게 생활했다. 가끔 학교에서 일어나는 시끄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이가 되서 퇴소를 해야만 하는 꿈동산 아이들에게 누구도 마땅한 길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내가 알고 있던 꿈동산 아이들과는 모두 연락이 두절되었다. 다만,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던 한 녀석과 마주쳤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서 ‘꿈동산’은 TV에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 빈곤청소년의 현실
실제로 빈곤 청소년의 소년소녀 가장세대 청소년, 생활보호대상가정 청소년, 영구임대아파트 거주 가정 청소년, 사회복지시설 청소년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2003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전체 1,275,625명이며, 그 중 18세 미만의 수급자는 310,187명으로 집계되었다. 즉, 나라에서 빈곤하다고 규정할 정도의 아동 및 청소년이 30만명이 넘고, 차상위 계층까지 합하면 그보다 훨씬 더 한 수의 빈곤 청소년이 존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소년소녀 가장으로서 생계를 직접 꾸려야하는 청소년의 수도 6,947 명으로서, 그 중 중학생이 2,232명, 고등학생이 2,936명으로 집계된다.
이 많은 숫자의 청소년들이 오늘도 빈곤에 따른 스트레스와 고통,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행여 그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불량청소년’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회적인 관심의 영역에서 멀어지게 된다.
- 빈곤 청소년은 ‘차상위 세대’ ?
요즘 대두되고 있는 ‘차상위 계층’이란 말은 아는가? 차상위 계층이란 실질적으로 공공부조를 필요로 하는 정도는 비슷하지만, 기준선보다 약간 높은 소득을 지님으로써 공공부조에서 제외되는 계층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빈곤 청소년은 ‘차상위 세대’에 가깝다. 18세,19세 등 일정한 나이가 되는 순간, 청소년들은 보호 시설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들보다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작고 자신의 자립 기반을 확보하기에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빈곤 청소년들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게 된다.
<미국 빈곤지역 청소년들의 꿈과 갈등을 다룬 영화 '위험한 아이들' 중에서 >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결손, 장애, 질환 등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또한 방임으로 인한 애정 결핍, 소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낮은 학업 성취율과 잦은 학업 결손, 문제행동(흡연, 음주,약물, 성, 폭력, 가출 등)의 발생율이 높다. 또한 자립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장한 후에도 다시 빈곤층이 되는 빈곤의 세대전승에까지 이르게 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거리의 시인들”을 양산하는 사회
물론 빈곤 청소년에 대한 보호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각종 사회복지단체와 사회복지관에서는 ‘쉼터’등과 같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학교를 이탈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거나, 청소년기 당시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제도적인 해결책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의 보호망은 유명무실한 것이 되기 쉽다. 이들이 사회 속에서 제대로 자신들의 기반을 형성하는 시기까지도 보호망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 꿈도 잃고 오늘도 잃은, ‘Never'land를 노래하는 또 다른 ‘거리의 시인들’의 양산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말을 강조하며 이 모든 문제를 청소년들의 노력 탓으로 돌리기에, 그동안의 사회적 방관이 다소 무책임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