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김부장님의 부친상으로 조문차 남도의 끝자락 광양에서 지난 주말 멈물다 왔다.
고등학교 때 교감으로 계셨던 나행수 교감선생님이 진상종합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계실 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22년전 광양에 갔었는데 오랜만에 찾아 갔다
빛 광(光)자에 볕 양(陽)자를 쓰는 이 고을은 그 이름대로 햇살이 하늘에서 실타래가 풀린 것처럼 거침없이 쏟아진다고 한다. 해안을 끼고 흐르는 바닷물은 연중 따뜻한 난류다. 살기가 좋다는 뜻이다.
고대사로 거슬러 올라치면 여기는 가야의 역사가 뿌리 박혀있다. 조만간 광양만에서 일본 시모노세키까지 오가는 뱃길이 열린다고 하니, 가야와 왜의 교류사가 오늘에 와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터이다.
몇 번 스쳐 지난 적은 있으나 주변을 돌아볼 기회는 처음이었다. 섬진강을 따라 둘러본 경치에도 마음이 흡족해진다. 섬진강 하구와 남해가 마주치는 곳은 조류에 따라 바다가 되기도 하고 강이 되기도 한단다. 역사의 흐림이 이 곳에 어떤 격변을 남겼는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듯 싶었다.
제2 포스코가 광양의 현재를 말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이곳에 숨 쉬고 있는 향토사의 흔적이 더욱 궁금했다. 남으로는 남해와 여수가 코 닿을 데이고, 북으로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만(灣)을 낀 마을이다. 왼쪽으로 돌면 구례와 순천으로 나뉘고 더 가면 벌교와 보성,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하동과 진주가 언덕 너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벌교를 뿌리로 한 빨치산 호남의 역사를 다루었다면, 이병주의 ‘지리산’은 하동에 맥을 둔 빨치산 영남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내가 태어난 곡성군 죽곡면 하한1구...
여순반란사건과 6.25동란때 온 동네를 불 지르고 압록으로 피난 갔던 사건, 태안사에서 경찰대원들을 몰살 시켜던 지휘관의 오판 등등...
글 재주가 있다면,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리산과 섬진강”이란 빨치산의 우리고장의 역사소설를 쓰고 싶다.
<전라선과 국토17호선.... 섬진강과 강변의 철쭉꽃 : 전남 곡성군 오곡면 침곡리>
시대를 더 거슬러 오르면, 녹두(전봉준)장군이 이끌던 동학의 잔병들이 숨어들었던, 곰골(웅동:熊洞)이 지척이고 민비시해범을 살해한 한 아무개가 그곳에 또한 은거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다시 역사의 말머리를 훌쩍 일제시대로 돌려보면, 만주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하숙집 후배였던 정병욱에게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을 포함한 그의 원고를 맡긴 전설 같은 국문학사의 기억이 이곳에 깊게 스며 있다.
윤동주의 원고가 8년간 보존 되어온 그의 집이 광양 해안가에 아직도 서 있기 때문이다.
훗날 서울대 교수로 국문학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던 정병욱선생이 아니었다면 윤동주는 우리의 삶에서 영원히 유실될 뻔했다.
백두대간의 북쪽 끝과 남쪽 아랫자락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 자칫 가려질 운명에 처했던 역사의 햇살을 보존했다.
우린 향토사의 보물들을 아직도 땅속에 묻어놓고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살고 있진 않을까?
22년만의 찾아간 2011년 만추의 계절! 광양에 머물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