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리더]
[58] 마리아 칼라스
성악에 역할 연기 더해…
오페라 역사 뒤바꾼 최고의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오페라의 역사를 바꾼 성악가입니다. 그녀 이전의 오페라 가수들이 단지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면, 칼라스에 이르러 드디어 극 전체를 이해하고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했어요.
마리아 칼라스는 그리스에서 미국 맨해튼으로 이민 온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미운 오리 새끼였죠. 아들이 태어나길 바라던 집안에서 딸로 태어났던 데다가, 뚱뚱하고 못생겨 어머니의 관심을 받지 못했죠. 그런 칼라스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래밖에 없었어요. 원래 가수를 꿈꿨지만 결혼 후 그 꿈을 포기해야 했던 칼라스의 어머니는 자신이 못다 이룬 성악가의 꿈을 딸이 대신해 주리라 기대했죠.
▲ 마리아 칼라스는 타고난 천상의 목소리, 놀라운 가사 전달력, 호소력 등으로 세계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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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이후 미국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어머니는 칼라스를 고향인 그리스로 데려가 음악 교육을 시켰어요. 하지만 칼라스는 극성스러운 어머니 때문에 억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힘들었죠. 그러다 어느 날 깨닫게 돼요. 어머니의 관심을 받기 위해 부르는 노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요. 칼라스는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 노래 부르기로 결심해요.
아테네 국립 음악원생이 된 칼라스는 유명한 성악가 '엘비라 데 이달고'를 만나게 됩니다. 이달고는 칼라스의 노래를 듣고 감동해 정식 제자로 받아들여요. 그리고 성악 기술뿐 아니라, 칼라스의 마음속 상처와 열등감을 다독여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줬어요. 특히 이달고는 칼라스에게 벨칸토 창법을 알려주지요.
이달고에게 배우며 일취월장한 칼라스는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농촌 처녀 산투차 역을 하게 돼요. 무대는 대성공이었어요. 노래밖에 몰랐던 한 소녀가 관객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드디어 세상을 향해 새로운 날갯짓을 한 것이죠.
칼라스는 어떤 공연이든 배역에 대해 충분히 공부한 뒤 무대에 섰어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를 공연할 때는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까지 공부했죠. 하지만 그렇게 원어로 노래를 부른 일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어요.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는데, 그리스의 적군이었던 이탈리아와 독일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던 것 때문에 반역자로 몰리게 된 것이죠. 그녀는 도망치듯 미국 뉴욕으로 향합니다.
뉴욕은 칼라스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칼라스는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거절당하기를 수없이 반복했죠. 그러다 2년 만에 기회가 왔어요.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의 여주인공역을 맡게 된 것이죠. 사람들은 칼라스가 보여 주는 노래와 연기의 깊이에 놀랐어요. 이에 열광한 관객 덕에 칼라스에게는 공연 제안이 물밀듯이 들어왔죠.
인기가 높아질수록 칼라스는 더 완벽한 무대를 꿈꿨어요. 하루 12시간씩 노래 연습을 했을 뿐 아니라, 연기 지도까지 받았죠. 게다가 그녀는 가냘프고 연약한 느낌의 캐릭터인 '나비 부인'에 도전하기 위해 2년에 걸쳐 30㎏을 감량했어요. 그리고 최고의 프리마돈나가 됐어요.
하지만 그녀가 유명해진 만큼 사람들의 관심은 커져갔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관심을 갖는 대중 때문에 칼라스는 점점 지쳐갔어요. 결국 그녀는 사십대 초반에 은퇴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요. "타고난 천재는 없어요. 제가 성악가로서 성공했다면 그것은 오직 연습과 끈기로 이룬 것일 뿐이죠."
[1분 상식] '벨칸토' 란 무엇인가요?
벨칸토(bel canto)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아름답게만 노래하는 것을 넘어, 성악가가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을 총동원해 화려하게 노래하는 것을 말하죠.
마리아 칼라스는 ‘벨칸토란 목소리를 악기처럼 최대한 활용하고 제어하는 기법’이라고 말했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조수미도 이 시대 최고 벨칸토 소프라노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박영진·후(who) 시리즈 위인전 편집인
헨델 음악 연속듣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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