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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의 힘
이사야40:27-31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 저희들이 학교생활 할 때 자주 쓰던 말입니다만 이 말은 오늘날에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먼저 알고 더 먼저 개발해야 앞서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학문과 기술과 지식을 얻게 위해서 엄청난 비용과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힘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요
이 힘이 주어질 때 인생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힘은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힘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한 힘이요,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한 힘“이라고 말씀합니다.
창공을 힘차게 나는 독수리와 같은 힘, 달음박질을 하여도 곤비치
아니한 힘,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힘, 이런 힘을 누리며 살고 싶지 않습니까?
이런 힘을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60, 70년 동안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백성들은
기간이 길어지면서 실망이 되고 낙심이 되고 좌절이 찾아옵니다.
살아갈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상태를 표현한 것이 바로 27절 말씀인데요,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문제가 해결되고 사정이 호전되기를 기대하였는데
그렇지 못해서 실망하고 좌절하고 힘을 잃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여호와를 앙망할 때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는 새 힘,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새 힘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앙망하다는 말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을 신앙적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보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나를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절에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함으로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이 위에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은 여호와를 앙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앙망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세상에 있는 돈이나 권력이나 향락을 앙망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앙망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영혼의 방향을 위로 향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가운데 사는 것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고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피곤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과는 반대로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자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양은 약합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미련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꼭 필요하고 목자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양으로 비유된 우리도 지혜가 없고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모두가 성공하기 위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피곤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호와를 앙망할 때 하나님은 세 가지 은혜를 주십니다.
1. 먼저,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은혜를 주십니다.
폭풍우가 무섭게 몰아칠 때 독수리는 폭풍을 뚫고 하늘로 높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폭풍우는 전혀 느낄 수 없고 잔잔하고 고요한 평화를 누리게 되고
폭풍우를 초월한 시간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폭풍우가 휩쓸어가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야곱이 고백한 대로 몇 년을 살아가도 험악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갈 때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나 15일 동안이나 쫓겨 다니게 됩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완전히 희망을 잃고 낙심가운데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사도 바울만은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갖고 배에 탄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 소망을 잃고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유독 한 사람 사도 바울만이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앙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땅에 속한 모든 것을 초월해서 마치 공중에 높이 올라간 것과 같이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높고 멋있고 장엄한 것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라산도 롯데빌딩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심령이 높이 올라가, 하나님의 견지에서 이 세상을 살피게 되고
그러면 땅에서 보는 것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입니다.
세상의 향락, 세상의 영광, 세상의 권세, 이런 모든 것이 세상 사람의 견지에서 볼 때는 굉장한 것 같지만,
주님을 앙망하는 신앙의 견지에서 볼 때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을 초월해서 정말 멋지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전에 귀하게 여기고,
전에 사모하고, 전에 자랑하던 것을 다 분토와 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위에 올라가서 보면 모든 것이 달라 보입니다.
돌을 하늘에 던지면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땅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큰 생명의 날개 짓으로 창공을 박차고 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법칙이 독수리를 잡지 못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이 세상의 줄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앙망하며 사는 사람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항상 행복하게 살 수 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이 세상의 것으로 요동치지 않으며
즐거움으로 봉사하며 인생의 모든 일에 걱정하지 않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가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2. 둘째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흔히 '인생행로'라는 말을 하는데요,
이 말은 우리의 일생을 길을 가는 것으로 비유해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는 길은 항상 평탄한 것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선한 싸움과 같았고 달음박질 하는 인생과 같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야 했고,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과 싸워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말렉 족속과 싸워야 할 때가 있었고 불 뱀의 공격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 온 백성이 하나가 되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도 태산준령을 넘어야 할 때가 있고 망망대해를 건너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무한한 생존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삶을 오늘 본문에서는 달음박질 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달음박질 하는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않는 은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는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2절 이하에 있는 말씀과 같이,
강을 건널 때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해주시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도 불꽃이 우리를 사르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앙망하고 참으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달음박질할 때에도 힘을 주어서 곤비치 않게 하는 것이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인줄 믿습니다.
3. 셋째는,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인간 생활의 대부분은 걸어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하시는 분들은 매일 직장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가사를 돌보는 분들은 식사준비하고 아이들 학교에 학원에 보내고 빨래하는 일들을 계속 반복합니다.
학생들은 아침에 학교 가서 공부하다가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전전하는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과 같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걸어가는 삶입니다.
우리 인생의 경주에 있어서도 달리는 것보다 걷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의 일생을 살펴보면 달리는 기간은 많아봐야 4,5년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시간은 대부분 걷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걸어야 합니다.
비가와도 걸어야 되고 태양이 뜨거워도 걸어야 되고, 지루해도 걸어야 하고
사막과 같은 황량한 들판을 걸어야 되고, 산을 오를 때도 걸어야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꾸준히 걷는 자가 인생의 승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더 능력 있고,
뛰는 것보다 날아가는 것이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날아야 할 때는 날아야 될 힘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또 달려야 할 때에는 하나님이 달릴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힘보다 더 중요한 힘은 바로 걸을 수 있는 힘입니다.
찬송가 가사에도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걷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꾸준히 걷는 것을 잘 감당할 때 우리 인생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가끔 보면 속으로 수백 번도 이혼을 다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기 싫고, 함께 살기 싫어도 그 배우자하고 끝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퇴출당하고 정말로 무기력한 남자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주여. 이 남자와 평생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장애아를 둔 부모님, 치매와 같은 불치의 병에 걸려서 온 가족이 고통당하는
아픔이 있는 가정에서도 이 일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매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지루할 수 있지만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 가운데는 십자가의 험난한 길을 낙심하거나
주저함이 없이 꾸준히 걸어감으로써 자기도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날아야 될 힘을 필요로 할 때도 있습니다.
달려야 할 힘을 필요로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꾸준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날 힘도 없고 달릴 힘도 없는 상황에서 그냥 주저앉으면 죽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는 꾸준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끝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걸을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경매장에서 경매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경매에 붙이자
어이없어 하던 사람들은 모두가 웃으면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나오더니 바이올린의 줄을 맞춘 후 연주를 시작합니다.
절묘하고 아름다운 선율에 사람들이 감동을 하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바이올린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왔고 바이올린은 무려 100파운드에 낙찰되었습니다.
낡고 보잘 것 없는 바이올린이 대가의 손에 의해 명품으로 변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 낡고 보잘것없는 바이올린에 불과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창조주가 되시며 지혜가 한이 없으시며 연약한 자에게
힘을 더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겨질 때 아름다운 음을 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많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주님은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힘도 주실 것이고
달려가도 곤비치 않는 힘도 주실 것이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202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