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수필]가을과 겨울 사이
어제 그제 이틀 동안, 서울과 경기 등에 어마무시하게 눈이 내렸습니다. 어제 새벽 6시, 길을 나설 수 없을 정도로 무릎까지 빠지는 첫눈을 밟아가며 판교에 사는 아들집을 갔습니다. 제 엄마 아빠가 출근하면 등교 전 1시간 가까이 혼자 있어야 하는 아홉 살 손자가 안타까워서입니다. 그동안 제 할미가 애썼지만, 제가 며칠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 수고로움을 덜어주기로 한 것이지요. 용인 고기리(대장동 옆)에서 마을버스로 20분도 채 안걸리는 거리인데, 도로는 완전히 아수라장. 1시간 반이 걸려 안절부절못하는데, 아이는 “어디야? 할아버지 언제 와?”전화가 계속 왔습니다. 등교시간이 9시30분으로 늦춰졌다고 하더니, 9시에 도착하여 가방을 챙기니 휴교라고 하더군요.
아이와 함께 아파트 뒷길과 뒷산에 올랐습니다. 소나무 등 큰 나무 가지들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쩌어쩍 찢어지는 불상사가 실제 눈 앞에서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40여년을 이 도회지에 살았으면서도 솔직히 이런 눈더미는 저도 처음인 것같았습니다. 1시간 동안 조손祖孫끼리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아이는 내일도 학교에 가지 않고 할애비와 놀면 좋겠다고 합니다. 엔간히 힘들었던지, 돌아오는 길, 업어달라고 합니다. 좋으면서도 고역입니다. 어느새 30kg가 넘어 5분도 업기 힘들더군요. 하지만, 이거야 행운이고 행복한 일이지요. 좋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좋은 글' 한 편을 읽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김택근의 묵언』의 한 대목입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이 그것인데, 수필인지 칼럼인지, 결국 그것이 그것인지 애매합니다. 저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전재하고 필사筆寫하는 불충한 아우를 용서(?)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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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이 되어 잎 떨군 나무와 함께 걷고 싶다. 걷다가 곤해지면 키 큰 미루나무가 있는 마을에 들러 누군가의 꿈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싶다.
가을에서 겨울로 바람이 불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철새는 날아가고 El Condor Pasa>다. 페루 전통악기 삼포냐의 음은 가을 끝과 겨울 초입을 맴돌고 있다. 이 노래의 고향은 페루다. 듣고 있으면 우수憂愁가 피어오른다. 햇살조차 서늘하다. 황금의 나라 잉카제국은 이름만으로도 아프고, 인디오들이 경배했던 콘도르가 슬픈 전설을 입에 물고 페루에서 우리 땅으로 날아들 것만 같다. 얼핏 어디선가 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란 카페도 떠오른다. 그 카페에는 약간 나이 든 여인이 담배를 태우며 로맹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고 있을 것같다. 가끔 밖을 쳐다보면 나뭇잎이 떨어지고 철새가 비켜 날고.
우리는가을 끝에 모여 있다. 낙엽의 시체는 과거, 과거를 떨치지 못하고 우리는 낙엽 더미에 더 많은 생각을 뿌린다. 바람 소리가 슬퍼지면 누군가 내 곁을 떠나갈 것이다. 우리가 살아 저 낙엽을 몇 번이나 밟을 것인가. 불현 듯 ‘지상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는 것은 어쩌면 서로를 지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잊힘은 얼마나 서러운가. 그래서 입동이 지났는데도 이렇듯 가을 속을 서성거리고 있다. 또 한 번의 비가 내리면 가을이 끝날지 모른다. 가을비는 땅보다 마음에 먼저 내린다. 마음 속에도 낙엽이 쌓인다. 그래서 가을에는 사람들 모두 곱다.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운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는, 아니 전화를 거는 행복한 아침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