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결혼미팅프로그램에서 심성보선수가
:춤을추는데 뒤에서보던 양준혁선수가 집어치우라며
:자기가 나와서 그큰몸집을 유연하게 춤을 추던게 생각나는군요.
:당시에 모두 네명이었구 염종석선수가지는 생각나는디...
:엘지선수가 한명두 안나와서 실망이었는디...
:지금은 두명이 엘지군여.
****새미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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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보 그는 인간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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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에서따왔습니다...심성보대단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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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자가 사는법] 당뇨와의 전쟁 이긴 심성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련은 있게 마련이다.그러나 그에게 닥친 시련은 인생을 포기할 만큼 절박한 것이었다.
LG 심성보(28)는 쌍방울 시절인 98년 ‘당뇨’ 판정을 받았고,2년간 벤치만지키다 지난해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야구를 전부로 알고 살아온 그였기에시련의 무게는 더했다.
‘간절히 원하면 길이 열린다’고 했던가.김성근 감독의 도움으로 LG에서 다시 야구를 시작한 그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운명은 그를 ‘비운의 선수’로 만들었지만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우리 앞에 섰다.
◆ 당장 내려와!
천안 남산초등학교와 천안북중을 거쳐 천안북일고에 진학한 그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볼도 제법 빨라 장래가 보이는 투수였다.그러다 첫 시련이 찾아왔다.3학년 때인 90년 대붕기고교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직후 왼쪽팔꿈치에 탈이 생겼다.의사는 “또 공을 던지면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다”며 겁을 줬다.
그해 북일고는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 8강에 진출했고,우승에 목이 말랐던감독은 그를 구원투수로 내보냈다.마운드에 오르자마자 동대문야구장 펜스에매달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 심용선씨의 목소리가 들였다. “너이 ××,당장 내려와!”결국 심성보는 구원에 실패했고 마운드와도 이별을 고해야 했다.
◆ 나도 왕년엔…
방망이에 더 소질이 있었던 그는 91년 단국대에 입학한 뒤 완전히 타자로 전향했다.그해 백호기대회에서 12타수9안타(4홈런)에 타율 0.705를 기록해 타격왕을 차지했고,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대륙간컵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심재학(현 두산)과 함께 ‘심심포’로 활약했다.그리고 94년 말쌍방울에 신인드래프트 2차 1번으로 지명돼 이듬해 계약금 1억6000만원을 받고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 죽어도 당뇨는 안 걸린다
심성보는 98년 왼쪽어깨가 탈골돼 수술을 받으려다 뜻밖에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다.순간 20년을 당뇨로 고생해온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수시로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실려가는 아버지 때문에 한번도 마음 편하게 지낸날이 없었다.심성보가 “다른 건 다 걸려도 당뇨는 안 걸리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다.
당뇨가 유전병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나중이다.아버지는 초췌해져가는 아들을 보고 “나 때문이야.나 때문이야” 하며 쓴 울음을 삼켰다.그런 아버지가그는 원망스러웠다.자신보다 더 아파한다는 걸 알면서도,그땐 그랬다.
◆ 심성보 끝났다
75㎏이던 몸무게가 한 달 만에 69㎏이 됐다.입술이 말라붙어 잠시라도 물을입에 안 대면 살 수가 없었다.야구는커녕 숨쉬는 것도 버거웠다.결국 그는지난해 11월 SK(전 쌍방울)에서 방출통보를 받았고,어떤 팀에서도 벤치에만앉아 있어야 하는 그를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배운 것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몸이 좀 아프다고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세상이 싫었다.‘심성보는 끝났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지만 그 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살려주세요
지난해 김성근 감독의 장남 정준씨의 결혼식에 참석한 심성보는 그에게서 “아버님이 많이 걱정하신다”는 말을 들었다.96∼99년까지 쌍방울 감독을 지낸 김 감독과 심성보는 각별한(?) 사이였다.심성보는 김 감독한테서 “집에가라”는 말을 연례행사처럼 들었다.코치한테 대들었다고,게으름피운다고,주위가 산만하다고….그 말을 듣고 집에 안 갈 심성보도 아니었다.한 달이고두 달이고 코빼기도 안보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 심성보가 김 감독(당시 LG 2군 감독)에게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딱 한마디만 했다. “살려주십시오.” 결국 심성보는 지난해 말 LG의 입단테스트를 받았고,다시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 제2의 삶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듯 모든 일이 하나씩 풀려갔다.정기적으로 약물치료도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니까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69㎏이던 몸무게가 다시 78㎏이 됐다.
게다가 김 감독이 지난 5월 1군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심성보에게도 본격적인‘재기’ 기회가 왔다.초반엔 대타로 나가 적시에 ‘한방’을 날리더니 이제는 주전 우익수를 꿰차고 공격과 수비에서 맹활약 중이다.LG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김성근 백’이라며 뒷말이 많던 사람들도 이젠 심성보가 팀에 꼭필요한 존재라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 그대는 나만의 여인
원래 병에 걸린 당사자보다 주변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심성보가 매일밤 폭음하며 방황할 때 결혼식도 못올리고 살아온 그의 부인은 어두운 방에홀로 앉아 눈물을 닦아야 했다.만만치 않은 병원비에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는 난생 처음 직업전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지나고,그는 다시 야구를 시작한 남편을 위해 매일 아침도시락을 준비한다.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안치고 마른 반찬을 챙기는 부산함이 그에겐 둘도 없는 ‘행복’이다.심성보는 올해 꼭 야구를 잘해서 그동안 부인에게 못해준 것을 다 보상해주고 싶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