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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아버지
글/생명강가(2007.6.22)
1990년경 여름 어느 날 시골에서 어머니의 호출로 급히 광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기관지 천식으로 수년 전부터 고생을 하셨는데 요즘 들어 부쩍 그 증상이 심하셔서 구강에 넣고 강제로 산소를 호흡하는 휴대용 산소 공급기(?)도 이젠 별 효력이 없나봅니다.
그래서 정말 치료될 수 없는 병인지 마지막으로 대학병원에 가서 진찰이나 한 번 더 받아보시게 하자고 어머니께서 간청하셨습니다. 형님은 바빠서 못 부르시고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나를 불러 내리시는데 수술 받는 것도 아니고 진찰받는 것쯤은 광주에 누님들이 세 분이나 계시는데 꼭 멀리 있는 나를 부르시나 하고 잠깐 마음속에 약간의 원망이 생기려고 하였으나 돌이키고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으니 이번에도 꼭 내가 가야할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기도로 주님께 구하고 고속버스 안에서 편안히 한 숨 자고나니 벌써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한 달 전쯤에도 아버지는 순천의 순천향병원에서 정밀진단결과 수술은 불가능하고 상태가 악화되는 것만 지연시키는 링거주사약만 몇 시간 맞고 술, 담배는 금지하라는 말과 조제해 주는 대로 약만 받아온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때도 호출되어 내려와 링거주사 맞는 동안 아버지 옆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예전과 같이 싫다는 반응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식의 소원이라니 한번 믿어보겠다는 말씀도 없으시고, 다만 물끄러미 병상에 앉아서 아들의 모든 이야기를 새삼스럽다는 듯이 듣고만 계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오늘은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염려하며 만나기로 한 전남대학병원 입구에 도착하니 큰누님과 부모님은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힘없는 눈동자와 내손을 꼬옥 잡으시는 아버지의 손으로 전해져 오는 냉기 때문일까?.. 딴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서먹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잊지 않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애구 내가 말년에 몹쓸 병이 들어 너희를 고생시키는 구먼’ 하십니다.
그러나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오전에 진료가 다 끝났으니 다음 주 월요일에 일찍 오라고 하더랍니다. 괜스레 나는 ‘지들(병원사람들)이 사람 숨 막히는 고통을 알까?’하며 푸념만하고 택시를 타고 풍향동 큰누님 댁으로 향했습니다. 차안에서 아버지께서는 혼잣말처럼 ‘찬바람 날 때 까지만 견디면 그때는 좀 괜찮을 텐데...’ 하시지만 우리 중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神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3~5)
사실 우리 모두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 혼자서만 답답하시지 숨이 막히는 아버지의 고통을 절실히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서야 사람의 호흡이 제 잘나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새삼 성경을 통해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神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殿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행17:24~25)
지금은 무등 장례식장으로 말끔히 단장되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광주 5.18항쟁 때 유리는 다 깨지고 총알자국만 벽에 벌집처럼 나있는 흉물스런 모습의 구, 호남전기건물 울타리를 따라 기다란 골목길 입구에서 택시를 내렸습니다. 누님 집은 그 골목길을 따라 100여m 안쪽에 있었습니다. 그 거리를 잘 알고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가로수 밑 보도블럭 끝에 걸터앉으시고 쉬었다 가겠노라고 하시니 어머니와 누님은 먼저 들어가시고 나는 아버지 곁에 나란히 앉아 또 한 번 체면불구하고 천박한 투의 표현일지라도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아버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아버지, 밑져봤자 본전 아닌가요? 제발 한번만 아들에게 속는 셈치고 제 말대로 예수님 믿고 그분을 의지해 보세요. 아버지보다 더 심한 병에 걸린 사람도 예수 믿고 기적처럼 병이 낫고 그뿐 아니라 영생을 얻게 된 답니다. 아버지, 한 번만 예수님을 믿어보세요. 네?’ 하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살피니 얼마나 급하셨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되지?’하고 반응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예상치도 못했던 갑작스런 반응에 오히려 내가 놀랐지만 그 기회를 얼른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은 장시간 복음을 설명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그야말로 3분 복음을 즉각 전하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말씀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 이니라”(마태복음7:7-8)고 했습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저에게 질문하신 것이 바로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똑똑똑 노크하는 수고만 하면 하나님나라가 열리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말씀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마서10:13) 했습니다. 자 아버지 이제 저와 함께 주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어떠세요? 저랑 같이 불러 보실래요?”
‘그래 어떻게?..’하시며 아버지는 여전히 단발적인 반응을 보이십니다.
‘예 아버지 주의 이름이 예수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릴 구원하시려고 피 흘러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분입니다. 자 저를 따라 그분을 간절히 불러보세요. 주 예수여!’
‘...주 예수여?’
‘아멘, 잘 하셨어요. 다시 한번요 주 예수여!’
‘주 예수여! 됐냐?’하시며 이젠 빙긋이 웃으십니다.
‘예! 아버지 그렇게 부르시면 되는 거예요 주 예수여!’
‘주 예수여!’
.....
나는 흥분이 되었습니다. 어떤 시소게임이 이렇게 즐거울까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지금 나와 아버지사이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됐다. 우리도 그만 들어가자’하시며 아버지가 힘겹게 먼저 일어나시자 내가 얼른 부축하면서
‘아버지 힘드시면 제가 업고 갈까요?’하니
‘에라, 관둬라 사람들 볼까 창피하다’하시기에
‘창피는요 아들이 아버지 업고 가는데..’하며 아버지 앞에서 쪼그리고 앉으니 마지못해 제 등에 업히시더니 그 기다란 골목길을 다 가는 동안 등위에서
‘주 예수여! 주 예수여!..’하시며 연거푸 주님의 이름을 부르시는 겁니다.^^
.....
나 어렸을 적 아버지는 조금도 가정의 생계를 돌보지 않은 무책임한 분이셨습니다. 술과 놀음을 너무 좋아하시다 보니 외가 집에서 어머니가 안타까워 사주신 전답까지 다 빚으로 넘겨버리시고 어머니께서 함바 식당을 거쳐 읍내로 이사 와서는 5일 장날로 장터국수를 팔아 우리 8남매를 키우며 생계를 꾸려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주 다투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동네에서 윷놀이를 하시며 시끄럽게 고함을 친다거나, 약주에 취하시고서도 또 친구 분들을 집으로 모시고와 술을 대접하시느라 우리는 밖에 피해 다니기 일쑤고, 또 돈이 없어 기성회비를 못내 학교에서 쫓겨 다니는 등 그러한 모든 일 때문에는 아버지가 전혀 밉지 않고 오히려 내가 커서 돈을 많이 벌면 그런 아버지의 한량스런 기백을 더 세워드려야지 하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 내가 비정상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와 더 친해질 기회도 없이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업고서 행복한 시간을 잠시 누렸을 뿐입니다. 왜 그날따라 그 골목이 그렇게 짧게 느껴지던지...
어떤 책에서 본 ‘이상한 달리기 대회’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느 교도소에서 재소자 부모들을 초청하여 효도잔치를 벌렸답니다. 교도소 내 운동장 구석구석에서 가족들이 준비 해온 음식을 나누며 하루해가 다가도록 얼굴을 마주보며 몸을 서로 만지작거리며 모처럼 자유롭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서 마지막경기로 재소자들이 부모님을 업고 달리는 시합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상품이라도 타서 가시는 어머니 아버지 손에 쥐어드릴 요량으로 서로 앞서 달려가더니만 막상 골인지점에 가서는 아무도 먼저 테이프를 끊지 않고 서로 눈치만 살피며 어떤 이는 뒷걸음질치기도하면서 부모님들을 업고서 울고만 있더랍니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업어보려고... 등에 업힌 부모나 아들들이나 그 누구도 그 시합이 끝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가 저물어 어쩔 수 없이 끝내야하는 이상한 달리기처럼 부모님들은 그렇게 우리 곁에 오래 계시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누님이 점심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집은 가장 어렵게 사는 막내에게 주면 좋겠고, 논은 형님이 돈을 보내와 사놓은 것이지만 유토답(문중 일을 하기위해 쓰는 토지)으로 남겨두고, 밭은 네 앞으로 등기를 해 놨으니 알아서 처리하라시며 평소 자주 하시던 말씀을 하시므로 나는 그것이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시던 아버지가 ‘얘야 아까 네가 뭐라고 했지?’ 하셔서
‘예? 뭐요 아버지?’하며 되물었더니
‘네가 하나님 뭐라고 부르라며?’
‘아~네 아버지 주님 이름 말씀이시군요? 주 예수여! 라고 부르세요.’
‘그래 맞다 주 예수여!.. 볼펜 좀 다오’
‘.......??’
나는 생각하기를 아버지께서 나없을 때 잊어버릴까봐 적어놓고 싶으신가 보구나하고 얼른 메모지 한 장을 찾아 적어주려고 하는데 그냥 내손에서 볼펜만 뺏어 가시더니 친히 당신의 왼손바닥에 직접 적으시기를 ‘주 예수여’라고 정확히 네 자를 당신의 필체로 적어 놓으셨습니다. 가만히 보니 아버지는 보통 때 한글을 소리 나는 대로 쓰시는데 말씀하실 기력조차 없으시지만 주님을 향하여 무언가 간절함으로 나가고 계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 옆에서 천사가 돕는 것도 나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를
‘아버지, 하나님이 아버지를 치료해 주시면 늘 아버지께서 원하셨던 6년 후 회혼례(결혼60주년 기념일)도 지내실수 있을 것 같아요’하였더니
‘에라 6년은 무슨... 내가 3년만 더 살아도 막내 결혼한 것이라도 보련만... 그건 내 욕심이고 이러다 괜히 너희들에게 몹쓸 일만 시키는 것은 아닐런지...’
‘아니에요 아버지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만약에 지금 돌아가신다 해도 우리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잠자듯이 편안하게 우리 모두에게 아무런 고통 없이 그렇게 이끌어 주실 거예요’
‘글쎄..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아버지는 그날따라 입맛이 없어 더 못 드시겠다고 하시며 점심을 물 말아 반 그릇정도만 겨우 잡수시고 어머니는 식사 후 이제 아들이 왔으니 짐승 밥도 줘야하기 때문에 집으로 가신다고 해서 동광주의 서방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고 셋째누나네 무슨 약이 있다고 하여 들려서 오는 동안...
누님께서 아버지가 입맛이 없다하니 깨죽을 쒀 드리면 좀 드시려나하고 얼른 쒀서 조금 갖다드리니..
‘얘가 왜 이렇게 늦냐?’
‘셋째네 집에 가서 아버지 드릴 약가지고 금방 올 거예요. 그동안 이 죽이나 좀 잡숴 보세요.’
‘아픈 사람을 집에 두고.. 참으로 호랭이가 물어갈 놈이다’ 하시더니 밥숟가락을 슬그머니 놓으시며 정말 잠자듯 그렇게 주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주여 3년만 더 연장해 주시면 좋았을 것을 왜 그러셨나요?’했더니
‘아들아 네 마음 안다 하지만 그것이 네 아비에게 최선이다’하시며 아들이 옆에 있어 아버지를 업고 어느 병원에선가 응급실을 뛰어다니는 번거로움조차도 제하시듯 하나님은 그렇게.. 오면서 고속버스 안에서 잠깐 기도했던 그 기도를 응답하시고, 74세의 한 인생이 주안에서 마쳐짐을 아들로 지켜보게 하셨습니다.
다만, 손바닥에 인 치듯...
내 주예수의 이름만 남긴 채...
첫댓글 어버이 날이네요.. 작년이 쓴 글들을 정리하다 느낌이 있어 다시한번 올립니다..
아멘.
우리의 모든 일이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시절들을 거쳐 우리모두....주님에게 다가가고 있네요.
우리 아들이 쓴 우리 가정 이야기(목록 5522번)와 비슷해서 열심히 눈가를 적셔가며 읽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형제님의 믿음의 길을 가리라 기도하며... 좀 더 건강할 때 주님 섬길 기회 주시기를 기도하며,토요일 가정을 열고 있습니다. 가장 기뻐하고 돕는 사람이 우리 남편이 되었으니 주님께 감사할 뿐! 형제님과 형제님의 가족의 여생도 온전히 얻으시기를!
자매님.고맙습니다. 보상은 주님앞에서 받기로 하고 자매님도 끝까지 강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