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리는 빗속을 뚫고 7시간을 달려 벌교 읍내에 들어서니 너도 나도 ‘원조’라고 써 붙인 꼬막집이 즐비하다. 꼬막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인데 지금이 산란 전 오동통한 꼬막 맛을 보기에 적기다. 꼬막 취재를 위한 목적지는 벌교에서 배를 타고 10분이면 도착한다는 ‘해도’. 사람의 귀 모양을 닮았다 하여 일명 ‘귀도’라고도 불린다. 워낙 작은 섬이라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여객선이 따로 없는데 마침 섬에 들어가는 섬 주민의 도움으로 배를 탈 수 있었다. 작은 구멍가게조차 없는 섬인지라 읍내에 나온 김에 오렌지, 바나나 등 섬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장봐왔다는 할머니와 읍내에 직장이 있어 나왔다가 자식들 온다는 소식에 집을 치우러 간다는 아주머니까지 선장을 포함한 승객 7명이 탄 배는 파도를 가르며 신나게 내달렸다. 섬에 도착해 도움을 주시기로 한 아주머니 댁으로 가니 이왕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갯벌에라도 한 번 들어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여벌로 있던 장화와 비옷을 내주신다. 그러곤 혹시라도 입고 왔던 옷을 버릴까 걱정된다며 손수 바지와 버선까지 살뜰히 챙겨주신다. 갯벌에 들어가 뒹굴어도 될 만큼 완전무장을 하고 난 뒤에야 집을 나서니 길에서 마주친 동네 분들이 뉘 집 딸인가 싶어 한참을 들여다본다. 난생처음 입어본 작업복은 걷는 것이 영 불편해 뒤뚱거렸지만 자신보다 큰 널배를 들고도 성큼성큼 앞장서는 아주머니를 보곤 서둘러 그 뒤를 쫓아갔다.
꼬막은 캐고 싶다고 마음대로 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천에 갯벌이 있어도 바다가 허락해야 나갈 수 있다. 물때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들은 이곳이 해도의 자랑이자 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라고 말한다. 해도를 포함한 7.5㎢ 규모의 벌교 갯벌은 인근 대포리 갯벌과 함께 국제습지보전협약인 ‘람사르협약’에 등록될 정도의 청정지역이니 여간 특별한 곳이 아니다. 꼬막을 캐기 위해 모인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몇 마디 나누더니 이내 어떤 신호도 없이 각자 가져온 널배를 타고 순식간에 갯벌로 들어갔다. 땅 위에서는 뒤뚱거리며 걷던 아주머니도 갯벌 위에선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달려나간다. 오늘은 평소보다 먼 곳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따라오기 힘들 거라는 말에 오기가 생겨 겁도 없이 갯벌에 발을 들였다. 겨우 발목까지 잠겼을 뿐인데 아무리 힘을 줘도 빠져나오지 않자 왈칵 겁이 났다. 그 사이 아주머니들은 목적지에 도착해 꼬막을 캐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석화를 캐는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벌교의 갯벌은 모래가 섞인 다른 지역의 갯벌과는 달리 100% 순수한 진흙으로 이뤄진 참벌이라 비단처럼 곱다고 한다. 그래서 발을 한 번 디디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고 꼬막 캐는 일도 다른 지역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고 한다. 갯벌에서 힘들게 발을 빼며 귀한 음식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평생 꼬막을 캐며 사셨다는 아주머니가 일러주시는 대로 널배 위에 자리를 잡았다. 최대한 뒤쪽에 앉아 왼쪽 다리는 무릎을 구부려 발끝으로 널배를 밀며 중심을 잡고 오른발은 갯벌을 밀어 앞으로 가는 것이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쉽게 전진했지만 중요한 건 방향 전환과 체력. 10분도 채 안 되어 무릎이 아프고 오른쪽 다리는 힘이 풀리고 정신은 혼미해져갔다. 방파제에서 서울 아가씨가 하는 냥을 지켜보던 어르신이 훈수를 두지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겨우겨우 자리를 잡고 직접 준비해간 갈고리로 진흙을 훑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갈고리 끝에 챙그랑 하고 부딪치는 느낌으로 꼬막이 걸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 아주머니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커다란 빗처럼 생긴 ‘밀대’라는 도구다. 쇠발 간격이 2.2㎝로 이 간격보다 작은 어린 꼬막은 걸리지 않게 만들어졌는데 빗처럼 벌을 긁어 쇠발 사이사이에 걸린 꼬막을 통에 담는다. 이 작업은 물이 차오를 때까지 몇 시간이고 계속된다. 채취한 꼬막을 뭍으로 가지고 오는 작업을 수차례 한 후에야 아주머니들은 널배 앞에 마지막 꼬막을 싣고 돌아온다. 꼬막 작업을 끝낸 아주머니들은 차가운 바닷물에 널배와 도구를 씻고 옷에 묻은 개흙도 개운하게 씻어냈다. 작업을 끝낸 환한 표정의 아주머니와 함께 인심 좋은 이웃집에 가 꼬막을 넣은 뜨끈한 시래깃국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말아 먹으니 몸속까지 따뜻해진다. 여기에 방금 잡은 꼬막을 바로 삶아 까먹는 맛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할 여지도 없다. 통통한 꼬막살이 짭조름한 바다 향을 풍기며 부드럽게 씹히는 맛은 이번 취재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고, 해도 해도 재미있는 꼬막 까기는 뭍으로 나가는 배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되었다.
다른 조개류에 비해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꼬막은 필수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라 몸에 좋은 것은 물론 소화흡수가 잘돼 환자들의 회복식으로도 적합하다. 특히 지방과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관심 많은 이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식품이다.? 꼬막은 시력 회복과 당뇨병 예방에 효과적이며 꼬막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타우린 성분은 담석을 용해하거나 체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능이 있다.
꼬막은 참꼬막과 새꼬막으로 나뉘는데 자연적으로 채취한 것을 참꼬막, 양식꼬막을 새꼬막이라고 하지만 꼬막알을 갯벌에 뿌려 자라게 하는 점은 같다. 참꼬막의 경우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계속하는 갯벌에 있다 보니 성장이 더딘 편이지만 항상 물에 잠겨 있는 새꼬막은 참꼬막에 비해 빨리 채취할 수 있다. 참꼬막과 새꼬막을 비교할 때는 표면의 색깔과 골을 보면 되는데 참꼬막은 20개 정도의 골이 깊게 파여 있고 검게 묻은 개흙을 씻어내도 누르스름한 색을 띤다. 반면 새꼬막은 ‘개꼬막’이라고도 부르는데 참꼬막과 모양은 거의 흡사하지만 참꼬막보다 부챗살형 골이 더 많고 표면이 깨끗하며 예쁜 편이다. 맛에도 차이가 있는데 참꼬막이 부드러우면서 졸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면 새꼬막은 그에 비해 조금 더 질긴 편이다. 아직까지 벌교에서는 새꼬막은 꼬막으로 치지도 않을 만큼 자연산 참꼬막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이 외에 피꼬막은 꼬막과 흡사한 모양이지만 어른 주먹만 한 크기에 골이 40개 이상으로 많고 피조개와 닮았는데 주로 회로 먹는다.
고운 갯벌에서 자란 벌교 꼬막은 모래가 많은 갯벌에서 자란 조개류처럼 오랜 시간 해감을 빼지 않아도 된다. 단, 개흙이 많이 묻어 있어 껍데기끼리 수차례 비벼가며 찬물에서 깨끗하게 씻는 것이 중요하다. 집에서는 빳빳한 솔이나 칫솔을 사용해 골 사이사이를 닦으면 편리하다.
끓는 물에 우르르 꼬막을 넣고 휘휘 저어가면서 삶다 물이 다시 끓어오르면 불을 끈다. 꼬막은 껍데기가 벌어질 때까지 삶으면 살이 질겨져 맛이 없기 때문에 껍데기가 벌어지기 전까지 삶는다. 만약 무침으로 사용할 경우 데친 후 바로 찬물에 헹구면 탱탱한 조갯살을 유지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통경로가 빨라져 대부분의 바다 생산물이 신선함을 유지하지만, 구입 시 꼬막 껍데기가 깨져 있거나 골이 선명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검은색인 것은 피한다. 쉽게 상하는 조개류의 특성상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사용하고 남은 꼬막은 삶아서 살만 발라 냉동실에 보관한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현부자네꼬막정식’은 소설 속 꼬막 맛을 재현이라도 하듯 맛깔스러운 꼬막요리로 유명한 곳. 해도 갯벌에서 캐온 참꼬막만을 사용해 신선하고 믿을 수 있다. 푸짐한 남도 밥상에 참꼬막으로 만든 요리들이 하나둘 올라오면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듯하다. 더불어 나오는 반찬들 맛도 예사롭지 않으니 조금씩이라도 전부 맛보기를 권한다.
메뉴 꼬막정식 1만2천원, 특꼬막정식 1만7천원, 주꾸미삼겹살 3만원, 꼬막전 추가 5천원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9시 주소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 383-1번지 문의 061-857-8700 주차 가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