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시 경상북도 동남부의 동해안에 위치한 시. 동쪽은 동해, 서쪽은 영천시, 남쪽은 경주시, 북쪽은 영덕군·청송군에 접한다. 동경 128°59′∼129°35′, 북위 35°50′∼36°20′에 위치하며, 면적 1,127.24㎢, 인구 513,391명(1999년 현재)이다. 2개 구 25개 동 4개 읍 10개 면 84개 이로 되어 있으며, 시청 소재지는 북구 덕수동이다. 자연환경시의 북서부지역은 태백산맥의 남단에 해당되어 고도가 높고 기복이 심하다. 북쪽에는 수석봉(水石峰, 821m)·면봉산(眠峰山, 1,113m)·베틀봉(862m)·자초산(紫草山, 763m)·구암산(九巖山, 807m)·바데산(646m)·동대산(東大山, 791m)·내연산(內延山, 700m) 등이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향로봉(香爐峰, 930m)·천령산(775m)·침곡산(725m)·장구재(일명 德城山, 586m)·성법령(709m)·비학산(飛鶴山, 762m)·호학산(呼鶴山, 512m) 등의 높은 산들이 북서부지역 곳곳에 솟아 있다. 그러나 경주-안강-신광-청하를 잇는 구조선의 동쪽지역은 태백산맥과 별개의 지괴로 고도가 비교적 낮은 용산(龍山, 190m)·곤륜산(176m)·운제산(雲梯山, 481m)·동악산(東嶽山, 253m)·옥녀봉(225m)·삼봉산(291m)·성적산(219m)·금오산(231m)·흥개산(215m)·뇌성산(雷城山 또는 磊城山, 213m) 등의 산들이 솟아 있고, 지질적으로는 제3기 및 제4기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송면 운제산 북쪽사면에서 발원한 형산강(兄山江)은 시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서남쪽의 송리 부근에서 흘러오는 칠성천(七星川)을 합해 북류하는 오천(烏川) 등과 합류한다. 이 때 퇴적물을 운반·퇴적해 넓은 삼각주평야(三角洲平野)인 연일평야(延日平野)를 형성한다. 그리고 오천은 하류에 충적평야인 어미들을 형성하고 있다. 형산강의 현재 하구는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원래는 송도(松島)의 뒤를 돌아 항구동 부근에서 바다로 흘러들었다. 또한, 북쪽에서는 곡강천(曲江川)이 신광분지(神光盆地)·흥해분지(興海盆地)를 형성한 뒤 동해로 흘러들었다. 남쪽에서는 냉천(冷川)이 오천읍과 경주시 양북면 경계지역에서 발원해 북류하다가 남서쪽의 오천읍 문덕리 부근에서 흘러오는 항사천(恒沙川)을 합류한 뒤, 오천읍 시가지 서쪽을 지나 영일만에 유입한다. 냉천은 하류에 충적평야인 어미들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현재 포항제철관련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해안선은 비교적 굴곡이 적고 단조로운 편이나 해안선을 따라 해안단구가 발달되어 있다. 기후는 해안에 위치한 관계로, 내륙지방보다 연평균기온이 다소 높고 겨울이 따뜻하고 연교차가 작은 편이다. 연평균기온 15.4℃, 1월 평균기온 2.2℃, 8월 평균기온 28.8℃이며, 연강수량은 600㎜이다. 역사〔고 대〕 이 지역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 초기부터이다. 이 지역에서 신석기 유물·유적이 발굴된 바는 없다. 그러나 최초의 한반도 원시무문토기 유적이 동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인간이 생활한 것은 청동기시대이다. 이 시기 이후 활발한 계층분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오천읍 항사리와 흥해읍의 지석묘를 통해 알 수 있다. 변진 24개국의 하나인 근기국(勤耆國)이 이 곳에 비정된다. 이는 후일 신라에 복속되어 군현체제 아래서 퇴화군(退火郡 : 흥해읍)·지답현(只沓縣 : 지행면)·아혜현(阿兮縣 : 청하면)·근오지현(斤烏支縣 : 연일읍·오천읍·대송면)·모혜현(芼兮縣 : 거제면)·동잉음현(東仍音縣 : 신광면) 등으로 나뉘었다. 〔고 려〕1018년(현종 9) 지방제도의 정비에 따라 이 지역은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처음으로 흥해군에 감무가 파견되었고, 1367년(공민왕 16) 국사(國師) 천희(天熙)의 고향이므로 지주군(知州郡)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1390년(공양왕 2) 영일·장기현에 각각 감무가 파견되었다. 고려 후기에 이 지역은 동해안에서 가장 물산이 풍부한 곳이었으나, 왜구의 빈번한 침입으로 황폐해졌다. 그 뒤 1388년(창왕 1)과 1390년에 흥해·영일읍성이 각각 축조되어 백성들이 안주하였다. 〔조 선〕조선 초의 지방제도 정비에 따라 흥해군·청하면·영일현·장기현의 네 지역으로 나뉘어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발전하였다. 군사동원체제는 육군으로 1417년(태종 17) 영일진(迎日鎭)이 설치되어 흥해·영일·장기가 예속되었다. 그리고 해군으로 흥해에 통양포만호(通洋浦萬戶), 장기에 포이포만호(包伊浦萬戶)가 설치되었다. 이 때 청하는 따로 영해진(寧海鎭)에 예속되었다. 당시 영일·장기는 비옥한 반면, 청하는 척박했고, 흥해는 반반이었다고 한다. 전체인구는 ≪경상도지리지≫에 따르면, 흥해가 423호 4,036인, 영일은 417호 3,628인, 청하는 235호 1,209인, 장기는 203호 1,736인이었다. 임진왜란 때 다행히 주력부대가 통과하지 않아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장기현감 이수일(李守一)과 흥해의병장 김현룡(金見龍)·김우정(金宇淨) 등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궐기함으로써 경주·영천·울산 등에서 커다란 공을 세웠다. 〔근 대〕1895년 을미개혁으로 전국이 23부로 개편되자 4개의 군현은 모두 군이 되었다. 그러나 다음 해에 13도제를 실시함으로써 모두 4등군으로 경상북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4개 군이 통합되어 영일군으로 개편되어 1읍 16면으로 조직되었다. 그 뒤 1934년 죽북면·죽남면이 통합되어 죽장면으로, 장기면·봉산면이 통합되어 지행면으로 개칭되었다. 1942년 창주면이 구룡포읍으로 개편되었다. 한말 이래 근대적 사립학교가 설립할 때 군수·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연일학교(延日學校)·장명학교(長明學校)·남명학교(南明學校)·양명학교(陽明學校) 등을 차례로 설립해 인재를 양성하였다. 일제의 침입에 대항해 1896년 청하의진(淸河義陣)이 결성되었고, 1905년 산남의진(山南義陣) 결성시에도 이 지역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이 이어지다가 3·1운동 때에는 송라면 대전리 동민을 중심으로 3월 22일 청하면 덕성리 장날에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현 대〕1949년 포항읍이 시로 승격되어 시군이 분리되었다. 1956년 흥해면·곡강면이 통합되어 의창면이 되었으며, 1957년 달전면이 폐지되었다. 1973년 의창면이, 1980년 연일면·오천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의창읍이 흥해읍으로, 1991년 지행면이 장기면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포항시와 영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포항시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21일에는 남구 동해면의 일부가 장기면에 편입되었고, 1998년 6월 9일에도 부분적인 행정개편이 있었다. 유물·유적선사시대의 유적으로는 흥해읍의 영일칠포리암각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청하면 월포리고인돌, 흥해읍 용곡리·흥안리고인돌, 신광면 냉수리·만석리고인돌, 기계면 내단리·성계리·문성리·고지리·봉계리고인돌이 있다. 삼한시대 유물로는 신광면 흥곡리 출토인 진솔선예백장동인(晋率善穢伯長銅印, 보물 제560호, 호암미술관 소장)이 있고, 유적으로는 흥해읍 옥성리고분군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청하면 용두리·월포리고분, 신광면 흥곡리·냉수리고분군, 흥해읍 흥안리·용곡리·남성리고분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송라면 중산리의 보경사 경내에 있는 보경사원진국사비(寶鏡寺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보경사부도(寶鏡寺浮屠, 보물 제430호)·보경사오층석탑(寶鏡寺五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보경사대웅전(寶鏡寺大雄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1호)·보경사적광전(寶鏡寺寂光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4호)가 있다. 그리고 신광면 상읍리의 법광사지(法廣寺址, 경상북도 기념물 제20호), 오천읍 항사리의 오어사대웅전(吾魚寺大雄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8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효자동의 영일향교와 영일향교대성전(迎日鄕校大成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호), 흥해읍 옥성리의 흥해향교와 흥해향교대성전(興海鄕校大成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7호), 구룡포읍 성동리의 광남서원(廣南書院), 오천읍 원리의 오천서원(烏川書院)과 장기면 읍내리의 죽림서원(竹林書院), 죽장면 입암리의 입암서원일원(立巖書院一圓, 경상북도 기념물 제70호) 등이 있다. 고건축물은 기북면 오덕리에 오덕동애은당고택(五德洞愛隱堂故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0호)·오덕동사우정고택(五德洞四友亭故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1호)·오덕동이원돌가옥(吾德洞李源乭家屋,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6호)·용계정(龍溪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3호) 등이 있다. 또한, 기계면 현내리에 영일기천고택(迎日杞泉故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5호)·봉강재(鳳岡齋,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1호)·분옥정(噴玉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7호), 연일읍 달전리에 달전재사(達田齋舍,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2호)·상달암(上達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0호), 흥해읍 성내리에 제남헌(濟南軒,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0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동해면 발산리의 모감주나무·병아리꽃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제371호)가 있으며, 기념물로는 신광면 우각리의 영일우각동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57호), 송라면 중산리 보경사의 탱자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1호), 홍해읍 옥성리의 이팝나무군락(경상북도 기념물 제21호), 죽장면 입암리 입암서원의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71호) 등이 있다. 교육·문화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이 있었다. 향교로는 영일향교·장기향교·흥해향교·청하향교가 있다. 조선 초기에 장흥에 설립된 영일향교는 숙종조에 성좌로 이건했다가 1870년(고종 11)에 포항시 효자동으로 이건하였다. 흥해읍 옥성리에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흥해향교가 있다. 이는 그 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1396년에 창건된 장기면 읍내리의 장기향교는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지만, 1600년(선조 33)에 중건하였다. 뒤에 1725년(영조 1) 현감 황익진(黃益鎭)이 마현돈으로 이전하고 그 뒤 군수 김영주가 수리하였다. 1398년에 세운 청하면 덕성리의 청하향교는 1713년(숙종 39)에 현감 노세환(盧世煥)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고, 1811년(순조 11) 현감 박민순(朴民淳)이 중건하였다. 서원으로 오천읍 원리에 있는 오천서원(烏川書院)은 1613년(광해 5)에 사액되었으며,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75년에 복원되었다. 곡강서원(曲江書院)은 1607년(선조 40)에 건립되었으며, 학산서원(鶴山書院)은 1692년(숙종 18) 송라면 중산리에, 죽림서원(竹林書院)은 1707년 장기면 읍내리에, 광남서원(廣南書院)은 1791년(정조 15) 구룡포읍 성동리에, 학삼서원(鶴三書院)은 1692년 장기면 창지리에 각각 세워졌다. 근대 교육기관인 초등학교는 1902년 호상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그 뒤 1906년에 연일소학교가, 1908년에는 흥해공립보통학교가 세워졌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1911년 포항영흥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한 뒤에 24개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1939년 포항고등여학교가 세워져 오늘날의 포항여중·고로 이어졌으며, 1943년에는 포항공립중학교가 세워져 현재의 포항중학교로 이어졌다. 교육기관으로는 1998년 현재 남구에 초등학교 26개교, 중학교 13개, 고등학교 7개교, 북구에 초등학교 35개, 중학교 32개, 고등학교 8개교와 전문대학교 2개교, 포항공과대학교·한동대학교가 있다. 그 외에도 특수학교 1, 방송통신고등학교 1, 산업체부설특별학급 1, 사설학원 572개소가 있다. 문화 시설로는 도서관 3, 박물관 2, 문화재 61, 문화공간으로는 공연시설 12, 전시시설 2, 문화복지시설 10, 그리고 문화원이 하나 있다. 문화활동으로는 포항 문인들이 발간하는 〈포항문학〉이 있으며, 매년 10월 문화축제인 형산문화제(兄山文化祭), 일월문화제(日月文化祭) 등 각종 행사들이 실시되고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사찰 139개, 개신교교회 285개, 천주교 성당 10개, 원불교 1개, 기타 9개소가 있다. 민속〔민속놀이〕 이 시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별신굿을 들 수 있다. 별신굿은 동제와 마찬가지로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위해 거행하는데, 제의적 성격뿐만 아니라 축제로서의 특성도 지니고 있다. 별신굿의 유래는 상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그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어촌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동해의 별신굿은 강원도와 경상도 해안 여러 지방에서 행해지며 포항의 별신굿도 다른 동해안에 산재해 있는 별신굿과 별다름이 없다. 포항에서는 한말부터 풍어에 감사하고 기원하기 위해 10년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굿판을 벌여 3일 혹은 1주일씩 밤낮으로 별신굿을 거행해 왔다.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는데 현재는 뜸한 상태이다. 별신굿의 형태를 보면, 심청굿·손님굿·성주굿·거리굿 등의 연극적 제차(祭次)가 두드러지며, 또한 굿 장면에 동민들이 직접 참여해 남녀노소가 춤과 노래를 부르며 즐기는 놀음굿이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이 때가 되면 뱃일을 쉬기 때문에 배를 전부 사장에 끌어올려 놓은 뒤 마을사람들은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는 등 정성을 들이며, 가무와 음주를 즐긴다. 〔동 제〕이 고장의 대표적인 동제는 앞에서 언급했던 별신굿이다. 이 밖에도 기록에 따르면, 매년 정월에 제관과 축관을 선출해 마을 동쪽 입구에 있는 신목에서 동신(洞神)에게 제를 올리는 동제와 여제(閭祭)가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전승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재구성하기 어렵다. 설화·민요〔설 화〕 대표적 설화로는 연화봉(蓮花峰)에 얽힌 〈열녀와 망부산〉을 들 수 있다. 용흥동에 있는 연화봉은 도음산맥(禱蔭山脈) 동남쪽의 가장 뛰어난 봉우리로서 속칭 솔개재 또는 망부산이라고도 하는데, 1,000여 년 전부터 애달픈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찬란했던 신라왕조가 말기로 접어들자 음탕하고 방종한 임금들이 즉위하고 조정대신들도 부패·타락해 나라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하였다. 이 혼란한 조정에서도 소랑(蘇郎)이라는 덕망 높은 중신이 있었다. 그 부인 또한 빼어난 미모에다가 부덕이 높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음탕한 왕은 소랑의 부인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번 보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랑의 집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왕은 인사를 하러 방에 들어온 소랑 부인의 미모에 반해 소랑을 물리치고 부인을 범할 꾀를 꾸미게 되었다. 때마침 일본사신이 신라조정에 조공을 바치러 왔기에 그 답례를 할 사신으로 소랑을 보낸 다음, 그 틈을 타서 왕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왕은 소랑이 일본으로 떠나자 그 부인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금력과 권력 등 갖은 수단을 다 써보았으나 부인은 끝끝내 왕의 뜻에 불응하였다. 이에 왕은 대로했지만, 차마 부인을 죽이지는 못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도성에서 추방하고 말았다. 추방당한 부인은 소랑의 애마(愛馬)와 개 그리고 종들을 이끌고 사방을 방랑하다가 동해가 잘 보이는 연화봉 정상에 움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밤낮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렸다. 한편, 왕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간 소랑은 귀국하는 뱃길에 심한 폭풍우와 격랑을 만나 불행하게도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남편의 슬픈 소식을 전혀 알 길이 없는 부인은 사철주야로 연화봉 움막에서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 사람들은 부인의 죽음을 불쌍하게 여겨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고, 또한 그 정렬을 추모해 망부사(望夫祠)라는 사당을 지어 부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비록 지금은 부인의 묘지나 사당의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사람들은 연화봉을 망부산이라 부르며 아직껏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칠성강(七星江)의 효자전설〉, 학이 죽어 산이 되었다는 〈학산동 이야기〉, 권선징악의 교훈을 가르쳐 주는 〈두호지(斗湖池)의 이야기〉 등이 전한다. 〔민 요〕이 고장에 전해 오는 대표적인 민요로는 〈모심기노래〉·〈베틀노래〉·〈그물당기기노래〉 등을 들 수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 일대는 농업과 어업을 겸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요가 다수 전하고 있다. 이 중 〈모심기노래〉는 농업노동요의 대표적인 예로 농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배어 있는 반면, 삶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한탄하는 내용도 들어 있어 농민들의 애환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가락은 4·4조, 4음보의 연첩으로 단조롭고 힘을 모아야 하는 모심기에 알맞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진개 맹개 너른 들에/점심참이 늦어오네/아흔아홉 정지칸에/돌고 나니 더디도다/……/해는야 빠지고 저문 날에/곳곳마다 연기나네/우리 님은 어디를 가고/연기 낼 줄을 모르는가.”와 같다. 어업노동요는 출어에서부터 각 작업과정마다 노래가 있다. 그 중에서도 〈그물당기기노래〉는 뱃사람들의 남성미 넘치는 진취적 기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살 저살 이여차/양살 중에 이여차/어느 살이나 이여차/땅가 주소 이여차.” 이 노래는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로 되어 있는 교환창인데, 메기는 소리조차도 사설이 짧고 급박하게 이어져 힘차고 건강한 가락을 자아낸다. 이 밖에도 비기능요로 〈아리랑타령〉·〈달노래〉·〈댕기타령〉·〈시집살이요〉 등의 민요들이 전하고 있다. 산업·교통1995년 현재 산업 구조를 살펴보면 1차 24%, 2차 41%, 3차 35%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고, 전체 가구 150,762호 중 농가(農家) 11.5%, 어가(漁家) 3.2%로 농어업의 비중이 낮다. 경지면적은 171.46㎢로 총면적의 약 15%를 차지하며, 그 중 논이 117.35㎢로 약 68%를 차지하고 밭은 54.11㎢로 약 32%를 차지하여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주곡을 비롯하여 채소·담배·복숭아·포도·양송이 등이다. 참외·토마토·상치·오이·호박·사과·배·감의 생산량이 늘고 있는 반면, 땅콩·복숭아·포도·수박·배추 등의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다. 또한 뽕의 재배 가구 수도 1991년 418가구에서 1994년 133가구로 감소 추세이다. 한우사육은 기계면·흥해읍·신광면·지행면의 순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다. 특수한 가금 사양으로 한때 기계면에서 밍크 여우를 사육하여 우리 나라 모피업계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나, 1993년 들어 여우 사육은 수익성이 결여되어 사육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포항은 동해 유수의 어항으로 도내에서 수산업이 가장 활발하며, 꽁치·방어·오징어·쥐치 등이 많이 잡힌다. 구룡포에서는 천초 재배와 전복·미역 등의 양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구룡포항은 연근해 어업의 중심 기지이다. 예전에는 수산업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이었으나, 1994년 현재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가구 수는 4,049가구, 어가 인구는 16,181명으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며 수산물 어획고는 106억 9,283만 8,000원이다. 특산물로는 바람이 차고 깨끗한 동해 바닷가에서 과메기·노가리·양미리 등을 말린 토산 건어물과 부추·오징어가 있다. 광업을 보면, 1994년 현재 광구 수 130개 중 가행 광구는 39개로 규사·고령토·규조토·불석 등이 생산되고 있는데, 경상북도 내에서 봉화·문경에 이어 생산량 제3위를 차지하고 있다. 총광산수는 317개인데 대부분이 신고하지 않은 채 휴업에 들어가 있으며, 기동하지 않는 광구 수는 286개로 90.2%를 차지하고 있다. 광산물 생산량은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규사·규조토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공업은 1970년대 초 포항공업단지가 조성·분양됨으로써 단지가 형성되어 입주 업체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영일 일대에 많은 공장이 설립되었다. 1970년대 이후 공장설립이 활발히 전개되어 공장 수가 늘어났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공장의 규모가 대형화되고 기업화가 이루어졌다. 1994년 현재 공업단지는 모두 604만 평이며, 228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 중 포항종합제철이 261만 3,000평, 철강공단 319만 평, 청림공단 17만 8,000평, 농공단지가 5만 9,000평을 차지하고 있다. 포항종합제철은 현재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였으며, 제철단지의 인근 지역에는 수십 개의 관련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포항시는 1970년부터 착수된 포항종합제철단지의 개발로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철강금속·자동차부품·석유화학·수산가공품·통조림류 등이다. 그 외에 동해면에 동해백토화학공장과 구룡포읍에 수산물·과일 등의 가공 공장이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는 연일읍 유강동에서 강원도 최북단에서 구한 대나무를 재료로 50차례가 넘는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궁도인들을 위한 화살이 제작되고 있고 이 밖에 잠자리채·낚시대·붓 등 다양한 죽세품이 생산되고 있다. 상업을 보면 1994년 현재 모두 34개의 시장이 분포하고 있으며, 구룡포·흥해·오천·신광·청하·송라·기계·죽장·동해·장기·대보·기북 등 12개의 정기 시장과 일반 시장 17개, 그리고 대형점 1개, 백화점 1개, 쇼핑센터 2개, 연쇄점 1개가 있다. 관광이 시는 동부에 영일만과 동해를 끼고, 북부에는 태백산맥의 여맥이 자리잡고 있는 풍광명미(風光明媚)한 산악·임해관광지이며, 문화적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또한 포항종합제철공장이 있는 대표적 공업도시이면서 산업관광지이기도 하다. 보경사를 중심으로 한 사찰 및 계곡관광과 송도·도구·구룡포·화진·월포·칠포·북부 등의 7개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한 피서관광, 그리고 긴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횟집과 바다낚시터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송라면 중산리의 내연산(710m) 동쪽 기슭에 위치한 보경사에는 보물 제252호로 지정된 원진국사비와 부도가 있고, 그 뒤편 광천 상류에는 경상북도 3경의 하나인 12폭포가 있어 일대장관을 이룬다. 12폭포는 층암 절벽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수와 울창한 수림이 잘 어우러진 절경이다. 계곡을 따라 제1폭포인 상생폭포와 삼보폭포·보연폭포·잠룡폭포·무봉폭포, 그리고 12폭포 중 가장 아름답다는 관음폭포가 나온다. 그리고 구름다리인 연산교에 이르면 일대장관인 연산폭포를 지나 연이어 12폭포가 나온다. 또한, 보경사의 단풍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오어사는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雲梯山, 481m) 동쪽기슭에 위치하는데 신라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항사사였다. 현재 대웅전·나한전·자장암·원효암이 계곡에 있으며, 운제산 북쪽기슭의 홍계폭포와 절 입구의 오어저수지 등의 풍치가 뛰어나다. 마치 호수 위에 둘러싸인 듯해 풍광이 아름다우며 한적해서 낚시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송도해수욕장은 예로부터 은빛 모래와 주위의 우거진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이름난 해수욕장이다. 그러나 공단 설립과 일부 백사장 유실로 지금은 폭 10∼40m, 길이 1,700m 정도이다. 도심권에 위치해 이용이 편리하며, 1983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서린 동해면 도구리의 도구해수욕장은 수심이 완만해 해안선에서 먼 곳까지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최근 해수욕장에서 많은 양의 조개가 잡히고 있어 휴식과 함께 피서객들의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다. 조개를 이용한 음식도 별미이다. 구룡포읍의 구룡포해수욕장은 우리 나라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 부분, 즉 영일만을 업고 있다. 반달형의 백사장은 길이 2.5㎞, 폭 100m나 되어 야영을 즐길 수 있으며, 인근 산에는 30여 년 묵은 소나무들로 가득 차 정원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고깃배들이 잡아오는 싱싱한 광어·도다리·장어·도미 등의 생선회가 일품이다. 송라면 화진리의 화진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400m, 폭 100m, 평균 수심 1.5m의 작은 곳이지만 나무가 많고 물이 맑으며 주위경관이 좋아 가족과 함께 피서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게다가 보경사 12폭포를 인근에 두고 있어서 이를 구경하고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들를 만한 곳이다. 청하면 월포리의 월포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1.2㎞, 폭 70m의 해수욕장으로 물이 맑으며 수심이 얕고 민박이 가능하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되는 곳으로 동물성 플랑크톤이 많아 꽁치 등 바다고기가 풍부해 월포방파제에서의 낚시는 일품이다. 흥해읍의 칠포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2㎞, 폭 70m, 평균수심 1m로 총 넓이 9만7000평에 하루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또한, 1903년에 세워진 우리 나라 최초의 등대인 장기곶등대(26.4m)와 1984년에 신축된 등대박물관도 새로운 관광명소로 등장하였다. 대송면 대각리에 있는 영일만온천은 수온 33.4℃, 수소이온과 불소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천이다. 구·읍·면〔남구 南區〕 1917년에는 포항면이 포항 지정면(指定面)과 형산면(兄山面)으로 분할되었으며, 1931년에는 포항 지정면이 포항읍으로 승격되었다. 1938년에는 포항읍이 형산면 전역과 대송면의 일부를 편입하여 28개 동으로 확장되었으며, 1942년에는 창주면이 구룡포읍(九龍浦邑)으로 승격되었다. 포항읍은 1949년 시로 승격되었고, 1973년에는 제철동이 신설되었다. 한편, 영일군에서는 1956년에 흥해면과 곡강면이 의창면으로 통합, 개칭되었고, 1973년에는 의창면, 1980년에는 연일면과 오천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에는 의창읍이 흥해읍으로 개칭되었고, 1986년 대보(大甫)와 기북(杞北) 출장소가 각각 면으로 승격되었으며, 1991년에는 지행면이 장기면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에는 포항시와 영일군이 도농 복합으로 포항시로 통합되었다. 지형은 대부분이 산지로, 북서부 지역을 흐르는 형산강(兄山江) 하류 및 대각천 유역과, 동남부 지역을 흐르는 장기천·대화천 유역에 각각 충적평야가 좁게 발달되어 있다. 산지는 대송면에 있는 운제산(482m)과 오천읍의 삼봉산(326m)을 제외하고는 300m 미만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토지는 1998년 말 현재 임야(65.9%)로 이용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 외는 경지 16.2%(논 9.7%, 밭 6.5%), 공장 4.1%, 대지 3.4%, 하천 2.8%, 도로 2.3%, 학교 0.2%, 기타 5.1%로 이용되고 있다. 제조업이 대표적인 산업이나, 상업·서비스업과 농·어업도 주요한 산업이다. 농업은 관내 모든 읍·면 지역과 제철·효곡·대이동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장기면에서 가장 성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와 각종 채소류(특히 부추)이며, 소를 비롯한 각종 가축의 사육도 행해지고 있다. 어업은 바다에 연한 구룡포읍을 중심으로 장기면·대보면·동해면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연·근해에서 꽁치·오징어·복어·멸치 등의 어류가 많이 잡히며 우렁쉥이와 광어 등의 양식도 활발하다. 철강업과 그 관련 업종(조립금속업)은 포항종합제철 외에도 포항철강산업단지(1∼4단지)에 1998년 현재 210개 업체가 입주해 2만 6,000여 명이 종사하고 있을 만큼 가장 발달된 산업이다. 상업 및 서비스업에서는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운수·창고 및 통신업 등의 순으로 종사자가 많은데, 도·소매업은 상대 1동과 효곡동에서, 숙박·음식점업은 상대 1동과 해도 2동 및 오천읍에서 특히 발달해 있다. 교통은 포항 공항이 입지해 있고 동해남부선 철도가 통과하며, 간선도로가 많이 건설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으로는 장기면에 장기읍성과 모포줄, 동해면에 모감주 및 병아리 꽃나무 군락지 등이 있고, 대보면에는 장기곶 등대가 있다. 관광지로는 호미곶(장기곶) 해맞이 광장 및 등대 박물관·오어사·영일만 온천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0년 현재 초등학교 27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9개교, 포항공과대학교가 있다. 상도(上島)·대도(大島)·해도(海島)·송도(松島)·청림(靑林)·일월(日月)·송정(松亭)·송내(松內)·동촌(東村)·괴동(槐東)·장흥(長興)·호동(虎洞)·인덕(仁德)·지곡(芝谷)·효자(孝子)·대잠(大岑)·이(梨) 등 17개 동이 있다. 〔북구 北區〕시의 북부에 위치한 구. 면적 734.41㎢, 인구 24만9668명(1999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덕산동이다. 1896년 당시의 경상북도 흥해·연일·장기·청하 등 4개 군에 해당된다. 이들 4개 군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영일군으로 폐합되면서, 신설된 포항면을 비롯한 17개 면으로 분할되었다. 1917년에는 포항면이 포항 지정면(指定面)과 형산면으로 분할되었으며, 1931년에는 포항 지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8년 포항읍이 형산면 전역과 대송면 일부를 편입하여 28개 동으로 확장되었으며, 1942년에는 창주면이 구룡포읍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포항읍은 1949년 시로 승격되었고, 1973년에는 제철동이 신설되었다. 한편, 영일군에서는 1956년에 흥해면과 곡강면이 의창면으로 통합, 개칭되었고, 1973년에는 의창면이, 1980년에는 연일면과 오천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에는 의창읍이 흥해읍으로 개칭되었다. 1986년에는 대보와 기북 출장소가 각각 면으로 승격되었으며, 1991년에는 지행면이 장기면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포항시와 영일군이 도농 복합으로 포항시로 통합되었다. 지형은 거의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으며, 남단부의 구(0xB997)시가지 지역과 기계천·곡강천·청하천 등의 하류 유역에 각각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산지는 죽장면·기북면·송라면·신광면 등이 속하는 서북부 지역에 발달해 있는데, 향로봉(930m)·수석봉(821m)·괘령(820m)·동대산(791m)·비학산(762m)·내연산(600m) 등의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토지는 1998년 말 현재 74.1%가 임야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 외는 경지 16.1%(논 10.7%, 밭 5.4%), 하천 2.6%, 대지 1.7%, 도로 1.6%, 공장 0.2%, 학교 0.2%, 기타 3.5%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산업은 상업 및 서비스업과 농·어업이다. 농업은 관내 모든 읍·면과 우창·장량동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흥해읍과 기계면이 중심 지역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외에 보리·콩, 채소류(특히 시금치), 과실류(특히 사과) 등이며, 소·돼지·닭 등의 사육도 활발하다. 포항항, 흥해읍 칠포, 청하면 월포 등을 기점으로 연·근해 어업과 양식업이 이루어지며. 주요 어종은 꽁치·오징어·멸치·광어 등이다. 제조업으로는 구시가지의 죽도·중앙·학산동 등지에서 식료품업이 약간 행해지고 있다. 상업 및 서비스업은 그 종사자가 전 산업의 70%에 달할 만큼 가장 발달된 산업으로서, 그 중에서도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이 중심 업종이다. 도·소매업은 대형 시장(죽도시장)과 쇼핑센터가 각각 위치한 죽도 1동과 2동에서, 그리고 숙박·음식업종은 중앙동과 죽도 2동 및 흥해읍에서 특히 발달해 있다. 교통은 포항항 여객 터미널과 동해남부선 철도의 종착역(포항역)이 위치하고, 동해안고속화도로를 비롯한 여러 국도 및 지방도와 시내 간선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는 신광면 냉수리의 신라비(新羅碑), 송라면의 보경사 원진국사비·보경사 부도·보경사의 탱자나무, 학산동에 거주하는 김동학의 전통장 등이 있으며, 주요 관광지로는 내연산 계곡, 칠포·월포 해수욕장, 영일 민속박물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00년 현재 초등학교 30개교, 중학교 20개교, 고등학교 16개교, 포항1대학, 선린대학, 한동대학교 등이 있다. 신흥(新興)·남빈(南濱)·상원(上元)·여천(余川)·중앙(中央)·대흥(大興)·덕산(德山)·덕수(德壽)·동빈1가(東濱1街)·동빈2가·학산(鶴山)·대신(大新)·항구(港口)·득량(得良)·학잠(鶴岑)·죽도(竹島)·용흥(龍興)·우현(牛峴)·창포(昌浦)·두호(斗湖)·장성(長城)·양덕(良德)·환호(環湖)·여남(汝南) 등 24개 동이 있다. 참고문헌三國史記, 高麗史, 世宗實錄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覽, 增補文獻備考, 내고장전통(포항시, 1981),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2), 慶尙北道史(慶尙北道史編纂委員會, 1983), 韓國觀光資源總覽(韓國觀光公社, 1985), 浦項市史(浦項市史編纂委員會, 1987), 浦項의 歷史와 傳統(浦項市, 1990), 地方行政區域要覽(行政自治部, 2000). 백과사전 카테고리 |
첫댓글 포항의 모든 것을 보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남은 것은 포항의 아름다운 마음과 사랑이군요 ㅎㅎ
밑에 꼬부랑글은 뭐 에요?
음.. 고래님은 퐝 홍보대사 ^^
바다 고래님 공부좀 했네요,,ㅡ
바다와고래님! 소개도 좋은데 너무 깁니다. 글이~~ 아마 모르긴해도, 에덴동산님이 읽기전에 기겁부터 했을것 같네요!ㅎㅎㅎ
포항가고 시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