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월)
오늘은 일정이 여유만만이다.
아침식사를 적당히 마치고 수목원 숲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있게 돌아보고 들어왔다.
각자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고 10시경 숙소를 나섰다.
첫 방문지 낙가산 보문사로 갔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많은 상점들의 유혹을 뒤로하고 절 현판(懸板)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지나 큰
소나무밭을 따라 가파른 언덕 길을 올라갔다.
다른 큰 절과 같이 범종각(梵鐘閣)이 있고 정면에 극락보전(極樂普殿), 좌측에 오백라한상(五百羅漢
像)들이 도열되어 있고 와불전(臥佛殿)에는 거대한 암석으로 조각된 부처님이 편하게 누워 계시고 선재
동자승들을 모신 석굴암(石窟岩)도 있다.
대웅전 우측으로 이절의 상징인 암벽(岩壁)에 새겨진 마애불(磨涯佛)로 올라가는 층계가 끝이 안보일 정도로
이리저리 이어져 있다.
불자(佛者)인 석해호를 모시고 각 전각에 들려 참배하고 끝으로 있는 힘을 다해 마애불님을 뵈러 올라갔다.
불상위로 천연의 바위가 처마처럼 가려져 있고, 인자하신 표정의 부처님이 강화 앞바다의 무사(無事)함을
주재(主宰)하시며 훤히 내려다 보시고 있다.
보문사는 가파른 암벽에 기대어 거대한 암석을 활용해 제일 위에 마애불을 위시해 대웅전의 부처님과 오백
나한상, 岩窟속의 동자승, 전각 안의 거대한 臥佛등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고 다양한 불상(佛像)들을 모시고
있고, 남해 보리암,양양 낙산사,여수 향일암과 같이 우리나라 4곳의 해수관음성지(海?觀?聖地)로 알려져,
많은 불자들이 찾아오고 최근에 이들을 위해 새로운 불사(佛事)들을 많이 벌여 새로운 전각들과 부속 건물들이 들어
선 듯하다.
모두 돈 되는 일이니까?
주차장도 넓고 절 앞에 상점들이 많은 것도 그 이유 아닐까?
석해호와 같이 깍듯하게 인사드리고 발원 기도를 잘 받아 주신다는 보문사에서의 참배를 모두 마치고 경내를
나와, 주점(?)에서 막걸리 한잔씩 걸친 김영과 조철식을 만나 교동도(喬桐島)로 향했다.
이제 끝으로 연산군 유배지이며 북한을 마주보는 전방지역으로 알려 진 교동도,
통행증을 받고 교동대교를 건너 교동도로 들어갔다.
옛날 시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대룡시장으로 가서 좁은 골목에 나트막한 상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촘촘히 들어 찬 시장을 둘러 보았다.
월요일에 궂은 비가 조금씩 내려서인지 시장이라 하기엔 너무 한산하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 시장변두리의 옛날 우물가 옆에 아낙네 셋이 빨래하는 모습의 조형물을 재현해 놓은 옛
정취의 동네 음식점에서 아구매운탕, 젓국 돼지 두부찌개로 푸짐한 식사를 하고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곳 역사의 흔적인 조선 최고의 폭군 연산군(燕山君)의 처절한 유배지를 보며 미흡하지만 이번 강화지역 탐사를
마쳤다.
역사의 죄인은 영원한 죄인,절대로 죄 짓지 말고 살자!!!
강화도!
우리 민족의 많은 한(恨)이 서려 있는 곳이다.
고려때 몽고의 난을 피해 천도했던 곳이며 이씨조선의 연산군,광해군을 비롯해 많은 왕족들의 유배지이기도
했던 곳이다.
근래의 조선 말기 개화기에는 외국세력들의 수시로 넘보았던 곳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리가 힘을 키워 다시는 이러한 어려움없이 아름답게 가꾸면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좋은 곳이 될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다.
이번 탐사에 편안한 숙소를 마련해 준 김종국, 불고기와 김장김치를 통째로 가져오고 찌개도 손수 끓여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련해 준 김 영,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같이 해 준 친구
김부경, 김성진, 석해호, 조철식 친구들 고마웠읍니다.
하루 더 지내고 올 친구, 김부경, 김 영, 김종국 좋은 시간 보내고 올라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