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근, 국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돌려준 사람’
“수십 년 동안 집안에서 지켜온 국보를 팔지 않았다. 자녀에게도 남기지 않았다.”
2020년,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은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조건은 없었다. 대가도 받지 않았다.
한국 미술사에서 손꼽히는 국보를 한 개인이 아무 조건 없이 국가에 내놓은 것이다.
《세한도》는 단순히 값비싼 그림 한 점이 아니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작품으로, 오랜 세월 한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아왔다.
시장에 나온다면 얼마에 거래될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손창근에게 이 그림은 가격보다 더 무거운 의미를 가진 물건이었다.
아버지 손세기 때부터 이어져온 집안의 가장 귀한 소장품이었기 때문이다.
손세기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며 옛 서화와 고서들이 흩어지던 시기에 우리 문화재를 모으고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그렇게 모인 유산은 아들 손창근에게 이어졌다. 손창근 역시 오랜 세월 작품을 보존했다.
그에게 문화재 수집은 단순한 취미도, 재산 증식의 수단도 아니었다.
한 시대가 남긴 흔적을 다음 세대까지 안전하게 넘기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세한도》보다 앞선 2018년에도 자신이 소장하던 문화유산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안에는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를 비롯해 《용비어천가》 초간본 등 귀중한 자료들이 포함돼 있었다.
한두 점을 내놓은 것이 아니었다. 한 가족이 오랫동안 모으고 지켜온 방대한 문화유산을 통째로 사회에 돌려준 선택에 가까웠다.
그런 손창근에게도 《세한도》만큼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집안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작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었다.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개인 미술관을 세워 평생의 소장품으로 남길 수도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그 작품은 그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 ‘소유’를 선택하지 않았다.
국가에 기증했다.
한 집안의 금고 안에 있던 국보는 그렇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손창근이 소유권을 내려놓은 순간, 《세한도》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훨씬 많아졌다.
한 사람이 지키던 그림이 국민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 된 것이다.
손창근의 선택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귀한 작품을 많이 모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평생 지켜온 것을 마지막까지 자신의 것으로 붙잡지 않았다는 데 있다.
보통 사람에게 가보는 물려주는 것이다.
좋은 물건일수록 자녀에게 남기고 싶고, 값이 오를수록 더욱 놓기 어렵다.
특히 한 집안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켜온 국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손창근은 가족의 소유보다 문화재의 미래를 먼저 생각했다.
누가 가지느냐보다 어디에 있어야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선택했다.
그 선택 덕분에 《세한도》는 이제 특정 집안의 보물이 아니라 모두의 유산으로 남게 됐다.
수집가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어쩌면 작품을 사는 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사랑한 작품을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순간일 수 있다.
손창근은 문화재를 모았다. 오랫동안 지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돌려줬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단순한 ‘부유한 소장가’로 기억되지 않는다.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가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을 언제 놓아줄 줄 알았는지로 남게 됐다.
진정한 소장은 끝까지 붙잡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안전하게 보존될 곳으로 보내는 것.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이 그 가치를 함께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손창근이 《세한도》를 사랑한 마지막 방식은 소유가 아니라 놓아주는 일이었다. (스타의 발자취)
세한도(歲寒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