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28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마태오 13,44-46
물을 어디에 부어야 할지 모를 때 깨진 독이라도 찾게 된다
오늘 복음도 역시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이는 하늘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모든 에너지를 그것을 얻는데 쓸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도 말씀하십니다.
값진 진주를 발견하자 그도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오늘도 팔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도 있고, 건강한 몸도 있고, 각자의 재능이나 능력이 있으며, 물론 재산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어디에 사용하나요?
어차피 인생은 내가 지닌 에너지를 무언가 얻기 위해 소진하다 가는 삶입니다.
예쁜 여자를 얻기 위해 소진할 수도 있고, 명예를 얻기 위해, 혹은 부자가 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쓸 수도 있습니다.
사실 모든 에너지를 무언가 얻기 위해 쓴다면 그것을 얻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우리 옆에 ‘깨진 독’도 많습니다.
그래서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연예계를 보면 돈 잘 버는 자녀들을 이용해 부모가 그 모든 것을 챙기다 결국엔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가
끊어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얼마 전 ‘김혜수’ 씨의 예도 있었습니다.
김혜수 씨가 2012년까지 벌어들인 돈의 액수는 약 170억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2년 당시 김혜수 씨는 월세에 살아야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여기저기 투자하다 진 빚을 갚아주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결국,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대며 많은 빚을 졌고 이것이 언론에 나오자 김혜수 씨는 자신은 어머니와 8년간 만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관계를 끊기 그나마 잘했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연예인들은 장윤정 씨나 박수홍 씨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와의 인연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모가 가진 재산을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것으로부터 부모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부모도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하겠지만, 부모가 이미 성장하여 어른이 된 자녀의 것까지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지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가 독립적인 성인이 되었을 때 가진 재산과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살아야 하는지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와 자녀들을 위해 밭에 묻힌 보물이 무엇인지, 엄청난 가치의 진주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재물과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자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 쓸데없이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게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밭에 묻힌 보물은 ‘하늘 나라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성령님’입니다.
이를 위해 가진 것의 100%를 사용할 줄 알게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땅을 사기 전까지는 그 보물이 나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할 용기가 있는 사람의 것이 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삼구를 이기고 기도할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니 돈이나 시간을 어디 사용해야겠습니까?
일단 ‘세속’에서 멀어지기 위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육욕’에서 멀어지기 위해 운동하며,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겸손을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위한 시간, 곧 미사나 피정 같은 것을 가고 아침기도나 저녁기도 시간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합니다.
그 시간까지 바쳐가며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물을 어디에 부어야 하는지 몰라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있는 깨진 독에라도 붓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목마르면 먼저 내가 마시고 다른 사람이 마시게 하고 또 그 물을 더 얻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것을 안다면 굳이 옆에 있는 깨진 독에 물을 붓는 어리석은 삶은 살지 않을 것입니다.
오랜 무명생활로 간신히 월세살이하며 군고구마라도 팔아야 했던 ‘임영웅’ 씨.
그가 ‘미스터 트롯’을 통해 받은 상금 1억 원은 어머니에게도 드리고 그동안 여기저기 갚아야 할 곳에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렉스턴 차량 첫 단독 광고를 찍고는 그 모든 수익을 전액 기부하였습니다.
자신도 월세 살면서 첫 광고수익 전액을 기부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아동복지 재단에 1억 원이라는 거액을 통 크게 기부하고 코로나 여파로 행사가 많이 줄었음에도 알게 모르게 기부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선행은 사실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예를 들면 2017년 아침마당에서 5연승을 하며 받은 상금 100만 원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전액 기부하였습니다.
그 당시 임영웅은 군고구마를 팔며 월세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수입이 없던 시기에도 연탄 나누기 봉사활동을 다니며 묵묵하게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어디에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명확히 안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올바른 교육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부모는 재산을 쓸 때, 하느님 나라 곧 마음의 떳떳함, 그리고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목적으로 쓰도록 교육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을 모르는 사람, 그래서 그 감정을 위해 에너지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것들을 깨진 독에라도 붓게 되고 결국 인생을 헛살았다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부자는 자녀에게 어렸을 때부터 용돈을 주며 10%는 십일조를 내고, 10%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며, 30%는 저축을 하고 나서 나머지를 원하는 대로 사용하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돈을 사용할 때 얻게 되는 마음의 떳떳함과 기쁨과 평화를 알게 먼저 알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에너지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깨진 독에 물을 부으며 느끼는 감정이 싫어서 에너지를 잘못 사용하며 사는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할 때,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먼저 깨닫게 해야 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7월28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마태오 13,44-46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외딴 바닷가 언덕 위에 위치한 저희 집의 경비견이자 귀염둥이 친구들이 둘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언제나 시선과 귀가 아래로 향해있습니다.
낯선 사람이라도 포착되면 얼마나 맹렬히 짖어대는지 놀랄 정도입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근무를 서는 것 같습니다.
가끔 비상 상황에서 체구가 작은 친구가 짖는데 소홀했다 하면, 큰 녀석이 절대로 가만있지 않습니다.
‘너 지금 근무 소홀히 하는 거야?’하며 왕왕 짖으면, 할 수 없이 작은 친구가 따라서 왈왈 짖는 모습이 정말 웃깁니다.
녀석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바라보면 정말이지 재미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먹는 것입니다.
매일 두 번 먹는 사료 말고, 햄이나 고기조각 같은 특식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립니다.
특식을 들고 가면 꼬리뿐만 아니라 온 몸을 흔들며 기쁨을 표현합니다.
특식에 못지않게 녀석들이 좋아하는 것은 산책입니다. 평소에는 인사도 잘 하지 않는 녀석들이 ‘산책가자’하면
즉시 달려 나와 기쁨을 표현합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어 안달입니다.
여기저기 코를 들이대며 냄새를 맡고, 나름 자기 영역을 표시하며 산책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그러나 그 외 다른 것들은 강아지들에게 별 의미나 가치가 없습니다.
녀석들 눈앞에 5만 원 짜리 한 장을 펼쳐서 흔들어 봐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돈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 돈이면 자기들이 먹을 최고급 사료 한 달 치 살 수 있는 대단한 가치라는 것을 모릅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과정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입니다.
복음 말씀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하늘나라며, 정말 대단하고, 값지고, 중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잡동사니 취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당부가 오늘따라 더욱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여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오 복음 13장 44절)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며,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잠시 쥐고 있었지만 즉시 날아가 버릴 재산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 마음 안에 간직할 수 있는 불멸의 보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더 이상 고통이 다가와도 울부짖지 않습니다.
더 이상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다시 획득해야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회개의 곡괭이로 자신의 그릇된 과거를 갈아엎는 사람, 믿음의 쟁기로 자신의 부끄러운 하루를 뒤집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 만남이라는 큰 선물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2021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와 하늘 나라의 만남을 보여 주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모세가 두 번째로 십계명 판을 들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온 장면을 보여 줍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탈출 34,32)
모세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 뜻의 전달자이고 중개자입니다. 그의 역할은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이 하느님 백성답게 살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성조 때부터 하느님에게 선택되었으면서도 그분 소유의 하느님 백성이 되는 길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이스라엘에게 그 가치를 보여주고 증명하는 존재입니다.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이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탈출 34,30)
하느님과 마주한 모세는 그 얼굴에 빛이 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시는 덕이나 영적 자질들이 대개 감추어져 있는 반면 모세 얼굴의 빛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실제적입니다. 백성이 가까이 하기 두려울 정도로 물리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빛입니다. 긴 광야 여정에서 모세를 오해하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할 백성이지만 이 빛은 그들이 하느님을 감지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입니다.
복음은 하늘 나라와 우리 상호간의 극적인 발견과 소유 과정을 간결히 보여 줍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이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하늘 나라는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눈에 띄지 않지요. 모세가 빛나는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는 것도 보물이 함주로 노출되지 않고 감추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밭과 관련이 없는 이는 보물을 발견할 확률이 적고, 주인이라면 다시 밭을 살 필요가 없으니,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아마 밭 주변을 맴돌며 뭔가를 찾고 탐색하고 뒤지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보물만 몰래 챙겨서 떠나지 않고 제자리에 다시 숨겨둔 뒤 밭 전체를 삽니다. 그렇게 하려니 가진 재산을 다 팔 수 밖에 없지요. 하늘 나라는 딱 그것만 도려내듯 소유할 수 없고, 그것을 품고 있는 밭 전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비록 거칠고 메마른 박토여도 그래야 합니다.
아마 흥정할 때에 보물을 발견했다는 말은 빼고 밭에 매겨진 시세를 치렀을 겁니다. 어쩌면 보물에 대해 밭 임자에게 말을 했어도 결국 그 밭을 얻었을 것이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이기도 하지요. 그 보물이 누구에게나 보물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하늘 나라는 이를 간절하고 열렬히 추구하는 이에게나 전 재산과 맞바꿀 보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마태 13,45)
밭에 묻힌 보물로 비유한 하늘 나라는 수동적입니다. 발견되길 기다리며 감추어져 있기에 존재적이고 신비적이지요. 그런데 두 번째 비유는 하늘 나라를 최상의 값진 진주를 찾는 상인에 비견합니다. 상인은 뚜렷한 목표의식 아래 부단히 찾아다니며 흥정하고 쟁취합니다. 여기서 하늘 나라는 매우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신의 가치를 아는 이가 자기를 찾아주길 기다리며 인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그를 찾아다닙니다. 또 하늘 나라를 추구하는 이도 부단한 노력으로 하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그 자신이 하늘 나라에 의해 발견되고 지명되어 소유됩니다.
이 과정에는 과감한 배팅이 요구됩니다. 버림과 투신이 뒤따르지요. 하늘 나라를 발견한 이나, 그 가치를 아는 이를 발견한 하늘 나라나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보물을 쟁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세상 것을 다 움켜쥔 채로 곁들여 소유할 수 있는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게 하늘 나라에 소유되었지요. 주님께서 큰 희생일 치르고 우리를 얻으셨으니까요.
그렇다면 하늘 나라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 하늘 나라는 우리를 어렵지 않게 알아 봅니다. 그리고 기꺼이 값을 치러 우리를 소유하지요. 창조 때부터 우리를 선택하신 하느님께서 하늘 나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늘 나라를 알아 보고 그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복음 환호송에 들어 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으니,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복음 환호송)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와 우리 사이의 중개자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알아 보고 그분 뜻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다 내놓아 아버지를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아버지 역시 우리에 대한 성자의 보증과 대속으로 우리와 화해하십니다. 우리가 아드님의 친구니까요. 값진 진주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우리를 얻기 위해 하느님(하늘 나라)은 당신 자신을 죽음에 넘기시는 어마어마한 값을 치르셨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숨겨진 보물, 하늘 나라를 찾기 위해 각자에게 허락하신 삶의 여정과 지금 지나고 있는 광야를 주의깊게 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거칠고 황량한 박토까지 떠안아야 할지라도 그 깊이에 하늘 나라가 감추어져 있다면 모든 것을 걸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늘 나라를 찾고 있는 여러분, 또 하늘 나라에 의해 발견된 값진 진주인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알타반의 말씀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