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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우리가 매일 바치는 기도에도 성장과 쇄신이 필요합니다!
지난 세월 돌아보니, 정말이지 헛되고 부질없는 것, 청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임없이 청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또 전혀 의미 없는 노력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죽기 살기로 청하는 과정에서 응답없음으로 인해 절망하고 탄식하던 중에, 아, 내 청원이 그릇된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그 이후 다가온 작은 배움 하나는 정말 간절히 청해야 하는 바는 이 세상 그 너머의 것, 보다 이타적인 것, 보다 보편적인 것, 보다 공동체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바치는 기도의 폭이 넓어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청을 흔쾌히 들어주실뿐더러, 그 외의 작은 청들도 덤으로 들어주신다는 것을 자주 체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간절히 바치고 있는 기도의 질과 수준은 어떠합니까? 물론 절박한 현실에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청도 아버지이신 주님께 열정적으로 청해야 마땅합니다. 나와 가족,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과 안녕, 평화와 성공도 열심히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오로지 그 방향으로 쏠리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기도 안에 함몰되어 있다면 많이 부족한 기도입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상태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기도에도 성장과 쇄신이 필요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의연히 견뎌내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모습, 정말이지 성숙한 기도 생활입니다.
희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의 시선이 늘 주님을 향해 있고, 부단히 절망 속에서도 희망한다면, 기도 잘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내가 이웃에게 해주는 것이 주님께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복음: 마태오 7,7-12
오늘 복음에서 청하는 것은 다 받는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받고 있나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남'은 이웃들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주님께 청하라고 하는 것이니 주님도 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해 주시기를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웃도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때리고 와서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부모에게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형제에게 그것을 주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친구들을 위해 빵 세 덩어리를 청하는 비유에서 만약 친구들이 없이 그냥 빵만 청했다면, 그 친구는 밤에 일어나서 그가 원하는 것을 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이기적인 거인'은 사랑과 자비를 통해 결국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거인은 거대한 성을 지닌 자랑스러운 거인으로, 자신의 정원을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으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정원은 아름답고 넓었으며, 봄이 오면 꽃들이 피고 나무들이 푸르러지며, 새들이 지저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인은 자기를 위해서만 그 공간을 차지하며, 어린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렸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거인의 정원을 찾고 싶었지만, 그는 그들을 쫓아내기만 했습니다. 그 결과, 정원은 황폐해지고 봄의 기운도 멀어졌습니다. 나무들은 시들고 꽃들은 지고, 날씨는 추워지며, 정원은 겨울의 차가운 바람에 휩싸였습니다. 거인은 점차 외로움과 불행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거인은 한 아이가 그 정원 안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에게 마음이 풀리면서, 거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이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그 아이에게 정원을 열어주기로 결심하고, 모든 아이들을 다시 초대합니다. 그 순간, 정원은 봄의 기운으로 가득 차고, 꽃들이 다시 피고 나무들이 푸르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인은 이제 자신이 이웃에게 나누지 않았던 사랑과 자비가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은혜로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거인은 더 이상 그 아이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거인이 나이가 들었을 때 겨울임에도 흰 꽃이 핀 나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곳으로 갔을 때 그때의 작은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손과 발에는 못자국이 있었습니다. 거인은 그 아이가 봄이 오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아이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상처에요. 이제 내 정원으로 함께 가요 내 정원은 천국이랍니다.”
다음날 아이들이 정원에 와서 늙은 거인을 보았습니다. 하얀 꽃이 가득 핀 나무 밑에 누워 깨지 않는, 깊은 잠이 든 모습이었습니다.
성당에 저에게 찾아오시는 분 중에서 정신적으로 아픈 분들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아픈 분들은 물질적으로도 가난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는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최대한 들어주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들 특징 대부분은 신자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신자들을 막 대하면 자신이 이야기하고 안수도 받으려는 사제가 자신들에게 그것을 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입니다.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그 사람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자신이 얻고 싶은 만큼 잘해야 합니다.
저는 ‘탕자의 비유’에서 돈을 다 탕진하고 온 둘째에게는 황소를 잡아주고, 자신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한 첫째에게는 염소 한 마리 잡아주지 않은 것이 약간은 의아했습니다. 오늘 복음대로라면 형은 동생을 비난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마음도 몰라주고 동생을 비난한 형에게, 그가 비록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염소를 잡아줄 마음이 생길까요? 우리는 하느님께 무언가 청하기 전에 내가 형제들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는지, 무엇을 주고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7,7-12: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려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7-8절). 문은 청하고 구함으로써 두드리는 이에게만 열린다. 우리가 청하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완수하는 힘을 청하는 것이며, 찾는다는 것은 복된 삶을 위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참된 지식은 복됨으로 가는 길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열렬한 마음으로 청하여야 한다. 찾으라는 의미가 이런 뜻이다. 무엇을 찾는 사람은 찾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며 주변 상황에는 관심이 없다. 두드리라는 말씀은 열정적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곧 열어 주시는 것 같지 않아도 우리는 그곳에 남아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분께 항구하게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으로 설명하신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9-11절). 우리가 악하다 해도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을 골라 준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속이지 않듯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속이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12절). 예수님께서는 이 한 마디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요약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덕은, 즉, 선행은 간단하고 쉬우며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너의 동료가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도 네 이웃에게 해 주어라.’ 하신 것이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12절) 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 안다. 몰랐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할 때, 이중적으로 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현세적인 이익을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참된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는 것 같이 우리도 이웃을 대할 때 그런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내가 청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지 않는가?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가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90년대 이전의 생활상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됩니다. 학교 앞에서 팔던 불량식품을 먹고 싶어서 손수레 근처에 모여 있는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있는 모습, 동네잔치와 같은 가을 운동회, 동네에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도 보입니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산과 계곡에서 불을 피우고 밥을 해 먹는 등산객, 아무렇지도 않게 무단횡단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직접 살았던 저로서는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었는데, 요즘의 어린아이들은 너무나 낯선 모습으로 비칠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고 또 성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는 성장합니다. 과거의 불편함을 극복하면서 살기 좋은 곳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성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과거의 나보다 못한 모습, 그냥 불편함을 간직하면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후회를 반복했던 것이 아닐까요?
세상이 성장하듯, 우리도 성장해야 합니다. 문제는 세상 기준으로의 성장만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돈, 명예, 세상의 지위 등의 성장만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적합한 사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사랑 가득하신 주님께서는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적합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잊지 말라고 하시지요. 바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인 이것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사랑의 삶, 하느님과 일치의 삶, 평화의 삶을 사는 우리의 성장을 지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 뜻에 철저하게 맞추어야만 합니다.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순간이면 충분하다. 아무리 짧은 순간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삶에 만족할 수 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 7,8)
하느님께
우리가 가장 먼저
청해야 할 것은
건강한 영혼과 육신이라네.
올바른 진리의 길을 구현할
힘이 있는
영육간 건강한 이들은
진리를 찾아
진리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진리를 얻은 이들은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리며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오늘 깜찍이가 청하는 것
사랑하는 길.
이웃에게 사랑을 담아 나누는 길.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
세상의 멍에를 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는 길.
목자가 양들을 지킬 수 있는 길.
교우들을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길.
나를 버리고 모난 원석을 아름답게 다듬어 가는 길.
성령을 만나고 자신을 성장하고 살찌우는 길.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길.
오늘도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갈 수 있는 이 길 들을
기도 안에서 가르쳐 주십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주님,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 에스테르기의 말씀입니다.4,17(12).17(14)-17(16).17(23)-17(25)
그 무렵 17(12)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였다.
17(14)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의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17(15)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17(16)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조상들 가운데에서 저희 선조들을 영원한 재산으로 받아들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17(23)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임금님, 모든 권세의 지배자시여!
17(24)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17(25)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