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와 결혼기념일
신혼여행을 워커힐 일박으로 끝냈다는 걸 아들딸이 기억하고 2023년 12월 21일, 결혼기념일에 워커힐 일박을 예약했단다. 세심한 배려, 기획, 연출로 49년이 지나 우리 부부는 또 하룻밤을 같은 호텔에서 묵고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인상 깊었던 해돋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큰 건물이 아니라 전망이 좋은 단독 건물 중 한 곳에서 묵었는데 짧았던 신혼여행 기간을 뒤늦게나마 배로 늘린 셈인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특별한 날을 경험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큰아들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 몸은 운이 좋아 결혼까지 하고 세 자녀를 둔 것이다. 내년에는 꼭 결혼하기를 기도한다. 조카들을 대하는 걸 보면 두 동생보다 부모 역할을 더 잘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인생의 반려자, 친구로 노후를 함께 보낼 사람을 꼭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먼저 1062호에 들어 몇 가지 간단한 짐을 풀었다. 50여 년 전 둘이 들어갔던 호텔에 늘어난 가족과 함께 다시 들어서니 먼 과거와 현재가 엉기면서 꿈을 꾸는 듯하다. 기분이 묘하다. 창밖을 보니 여기저기 아차산 골짜기 경사면을 딛고 서 있는, 아담한 2층 별장들이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저들 중 한 곳에 묵었었는데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어 정겹다. 한강 양변을 따라 난, 넓은 도로에는 차량이 줄을 잇고 강 건너편 서울과 미사 신도시가 아파트로 가득한데 멀리 검단산과 예봉산이 보인다. 잠시 확 트인 전망에 취해 있다가 점심 예약한 호텔 2층 온달 식당으로 내려갔다. 안내된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를 살펴보고 있는데 불현듯 은은하게 들리는 음악이 시간을 거꾸로 돌려 앞에 앉은 50대를 바라보는 아들딸은 사라지고 1974년 12월 21일이었다.
결혼식을 끝내고 워커힐에 도착했는데 좀 피곤해 객실 소파에 잠깐 앉았다가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와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식사 후 그 유명한 워커힐 쇼를 보고 돌아왔는데 벨 소리가 난다. 호텔 직원이 결혼 축하 선물로 포도주를 갖고 온 것이다. 미리 탁자에 놓여 있던 결혼 축하 케익에 촛불을 켰는데 그 작은 불빛에 오늘이라는 시간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면서 어디선가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하늘이 점지한 삼 남매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엔 전혀 알 수 없는 얼굴로 불청객일 뿐이어서 마음이 불편할 뿐이었다. 그런데 둘만의 황금 시간에 눈치도 없이 한참 떠나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간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남매라는 세 사람이 미래에서 왔다며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는가. 오늘은, 무수한 쪽이 겹쳐 쌓인 시간의 마지막 쪽이니 과거에서 왔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흘려들었는데 딱 한 가지가 똑똑하게 들린 건 어렸을 때 '선린촌'이라는 마을에 산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었다.
웨이터의 목소리에 시간은 다시 2023년으로 솟구친다. 우리 부부가 터미네이터 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젖는다. 웨이터가 보이고 목소리가 들린다. 코스 한정식 궁중상차림을 주문했는데 마지막 코스는 밥인데 전복비빔밤, 도가니곰탕, 궁중육개장, 평양식 물냉면, 소고기뭇국 중 택1이라며 각자 정하란다. 좀 기다리니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그릇이 인상적이었다. 수저부터 모든 그릇이 유기로 통일되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유기 빛깔이 금빛과 통해서인가. 아들이 늘 하는 것처럼 코스마다 인증 샷을 찍었다. 나오는 요리 순서가 적힌 쪽지를 식탁 가운데 세워 두었는데 물어보지 않아도 요리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먹었는지 알 수 있어 편리했다. 나중을 위해 그 쪽지도 사진 찍었다.
식사하며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중간중간 내 마음에는 단독주택 단지였던 선린촌의 전원 생활이 자꾸 떠올랐다. 이사한 해 1979년 11월에 막내아들 백일 잔치를 했고 셋 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생 때까지 생활한 곳이니 그럴 만하다. 우리 가족에겐는 고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밥이 나왔는데 내가 시킨 궁중육개장은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유기그릇과 식기, 도자기와는 격이 달랐고 어딘가 분위기가 깨짐을 느꼈다. 사진을 찍고 보아도 전체적 흐름과 어울리지가 않았다. 상차림 빛깔이 이처럼 중요했던가.
“궁중에서 쫓겨났어.”
저절로 터져 나온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찰나의 실망은 곧 지워진다. 내 마음은 앞에 앉은 아들딸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하다. 무엇으로 보답을 할까.
첫댓글 아름다운 추억을 되 새김질 하시니 행복 하셨겠습니다
훌륭한 자식들을 두셨으니 쪼그라드는 둥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수를 누리시고 자녀분들도 건강한 삶이 지속되기를 기원합닏.
붓볼님 Evergreen님, 방문 감사!
망설이다가 결혼과 출산이 만든 미래와 터미네이터 영화를 생각하며 수필을 써 보았습니다.
네
그렇게 내가 갖고있는 소중한 것으 ㄹ함께 나눌 수있고
공감을 할 수있는 공간과 동무를 갖고 있는 일은 행복 그 자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