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6일 밤이었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구 개목마을은 초겨울을 예고하는 심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에 밀려온 거센 파도는 방파제를 때렸고, 뒷동산 나무들은 부러질 듯 흔들렸다.
그날 저녁 인천을 출발해 늦은 밤 개목마을에 도착했다. 바람은 밤새도록 불어댔고 아침이 열리자 잦아들었다. 고요한 아침이 열리는 그 때까지 마을주민들은 검은 기름이 닥쳐오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를 지날 무렵이었다.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해상크레인이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1만2천 킬로리터가 넘는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었다. 먼저 기름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시시각각으로 기름띠가 몰려왔다. 개목마을 해안은 온통 검은색으로 변했다. <2007. 12. 12.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안에서 촬영> 청천벽력이었다.겨우내 주민들의 소득원이 될 굴 양식장도 검은 기름으로 덮였다. 주민들이 넋 놓고 있을 때였다. 전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태안군으로 몰려왔다. 매서운 칼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헌 옷가지와 흡착포로 바위와 돌에 달라붙은 기름을 닦아냈다. 전 국민이 힘을 모아 태안의 기적을 일궈냈다. <2007. 12. 12.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안에서 촬영> <2007. 12. 12.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안에서 촬영> 올해는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일어 난지 5년째가 되는 해이다. 주민들은 굴 양식을 포기하고 갯벌에서 바지락을 채취해 수익을 올린다.
기름유출의 흔적이 사라진 바다로 우럭, 광어, 놀래미, 붕장어, 쭈꾸미, 해삼이 다시 돌아왔다.
그런가하면 100만 자원봉사자가 일궈 낸 기적의 현장을 기억하기 위해 태안해변길 2코스 바라길(태배길) 구간도 만들어졌다. 바라길 구간은 순례, 고난, 복구, 조화, 상생, 희망 등 여섯 개 구간으로 나눠 의항2구 마을의 해변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태안해변길은 원북면에서 시작해 안면도가 있는 고남면까지 120Km를 이어갈 예정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간이 살아 숨 쉬는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바라길(태배길) 구간이 있는 의항2구 개목마을은 처갓집 동네다. 집사람과 막내동서와 동행하여 아침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길을 걷기로 했다.
신두리해수욕장이 있는 갯골 건너 동산으로 태양이 솟아올랐다. 바라길(태배길) 5구간 상생길에서 출발해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2012. 10. 2.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태안 해변길에서 촬영> 싸늘하지만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상쾌한 기분이 든다. 코스모스와 아침인사를 나눈다. 노랗게 익은 감은 이슬담요를 뒤집어썼다. 고개 숙인 벼이삭을 만나고 퇴색해 버린 고추밭을 지난다.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의 굴뚝은 연기대신 대나무를 품었다. 폐가를 지나 고개를 넘으니 다시 바다가 보인다. 신너루 해변이다.
신너루 해변은 햇볕이 앞산에 가려 아직 닿지 않았고, 방풍림 뒤편 논으로 떨어진 햇살은 아침안개를 만든다. 몽환의 안개가 피어오른다. 안개는 솔숲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만든다. 솔숲 야영객의 코고는 소리에 놀란 안개가 하늘로 사라진다.
안태배 해변으로 넘어 가는 길은 데크를 깔아놓아 걷는 이를 편하게 해준다. 해변길전망대에 올라섰다. 신두리해수욕장이 보이고 방금 걸어온 신너루 해변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안태배 해변도 한눈에 들어온다.
안태배 해변의 부드러운 모래를 밟았다. 어제 이곳을 지난 사람들의 발자국이 썰물에 흔적을 지웠다. 파도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신선하다. 시원한 바람에 땀방울 식혀가며 걸으니 즐겁다. 지난 8월 서해안으로 지나간 태풍 볼라벤은 안태배 해변 나무의 잎사귀를 모두 앗아갔다. 잎이 떨어진 자리는 새잎이 돋아났다. 철 잃은 해당화도 피었다. 새잎과 해당화가 어울려 봄이 다시 온 것처럼 풍경을 만들고 있다.
안태배 해변에서 태배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황톳길이다. 흙길 걷다보니 온 몸이 자연을 느낀다. 태배전망대에 올랐다. 태배는 당나라 시인 이태백(李太白)이 갯바위에 오언시를 남겨 유래된 지명이다. 군부대 초소를 개조해 장애인 편의시설과 화장실을 만들어 전망대로 개조했다. 전망대에 올라 태배해변, 칠뱅이섬(일곱 개의 섬), 신두리 해안사구를 둘러본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칠뱅이섬 전설이 적힌 안내판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칠뱅이섬은 태배 앞바다에 올망졸망 떠있는 대뱅이, 굴뚝뱅이, 거먹뱅이, 동뱅이, 수리뱅이, 질마뱅이, 새뱅이 등 일곱 개의 섬을 합친 이름이다.
칠뱅이섬에 내려오는 전설은 이렇다.
지난날 오랑캐가 자주 출몰하자 태안군 일대는 한때 사람이 살지 못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오랑캐가 자주 나타나자 맞서 싸우기로 하고 군사를 출동시켰다. 오랑캐 무리는 군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학암포 앞바다까지 다가왔다.
이때 대나무가 무성한 대뱅이가 굴뚝처럼 생긴 굴뚝뱅이를 불렀다.
“총소리가 들리니 오랑캐가 쳐들어 온 거야!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저 놈들이 짓밟고 있으니,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라며 힘을 합쳐 싸우자고 말했다.
여섯 개의 섬이 모여 자기 몫을 다해 싸우기로 결의했다. 이때, 전라도에서 달려온 섬이 자기도 한 몫을 하겠다고 하여 칠뱅이섬이 되었다.
대뱅이는 대나무를 흔들어 군기가 펄럭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굴뚝뱅이는 수레에 군인이 가득 찬 것처럼 위장하고, 나머지 뱅이들은 주먹크기의 돌을 오랑캐 군함을 향해 날렸다. 이에 놀란 오랑캐 군함은 복병이 숨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허겁지겁 후퇴하게 되었다.
지금도 칠뱅이 섬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태배 앞바다를 지키고 있다.
칠뱅이섬이 힘을 합쳐 기름유출사고를 막아주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이루지 못한 꿈을 상상하며 ‘이태백의 오언시’를 찾아 태배해변으로 내려선다.
바닷가 모래 언덕 위에 한 가족이 야영을 하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아빠를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길옆으로는 아무렇게나 쌓인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야영하는 이와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버린 흔적이다.
문득 장인어른의 말씀이 떠오른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도 아무 소용없어.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물건을 팔면 소득이 있겠지만 농사짓고 뱃일하는 사람은 쓰레기 때문에 골치만 아파.”
쓰레기로 몸살 앓는 해변길에서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간이 살아 숨 쉬는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 올바르게 조성될까.
길을 만들면 걷는 이가 찾아오고, 여럿이 모이면 먹고 마시고 버려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편의시설이 부족하니 해변길이 더렵혀지는 것은 당연하다.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태백의 오언시를 찾아 태배해변으로 내려 왔건만 그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실망하고 다시 해변길 따라 걷는다. 길옆 풀숲에는 가을꽃이 피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고운 자태를 뽐낸다. 싸리꽃, 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잔대꽃, 오이풀이 화려하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다양한 꽃들도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구름포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을 걷다 노부부를 만났다. 노부부는 자신들이 소유한 임야에 수목원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노부부의 안내로 구름포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산마루에 올랐다.
“사진작가한테는 오늘 처음 공개하는 장소여.” 사진작가라는 말이 쑥스럽다.
할아버지는 군부대가 있을 당시는 이 땅이 숨은 진주에 불과했다며 살아생전에 아름답게 수목원을 꾸미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신다.
노부부와 작별하면서 소중한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기원하겠노라고 인사를 나눴다.
노부부와 다시 만날 확률은 많지 않지만 아름답게 꾸며진 수목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때 나를 기억할까. 아무튼 노부부의 아름다운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솔숲에서 불어오는 솔향기를 맡으며 다시 언덕을 넘어 걷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계속 불어오고 있다. 산 아래 구름포해수욕장의 너른 모래사장이 보인다. 20년 전 쯤 조개 잡던 추억이 아련하다.
구름포해수욕장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조개가 많았다. 발에 밟히는 모든 것이 조개였다. 하지만 지금 조개는 없다. 해수욕장을 찾은 이들의 손에 잡히고, 오염된 바닷물 탓에 흔적을 감췄다. 언덕을 오르자 의항2구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오른쪽으로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인 의항해수욕장이 보이고, 마을 가운데로 의항포구도 보인다. 염전이 있던 자리는 여러 채의 펜션이 들어섰다. 염전이 사라진 것처럼 훈훈했던 마을 인심도 점점 퇴색하고 있어 아쉽다. 언덕을 내려오다 길옆에 세워진 이태백의 오언시가 적힌 표지판을 만났다. 이태백의 동상도 함께 서 있다. 다른 표지판에는 오언시를 쓰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조선 땅을 밟은 이태백이 빼어난 절경에 빠져 수많은 날을 보내다가 해안가 육중한 바위에 시를 적으니 그 후부터 주변을 태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적혀있다.
그 당시 이태백이 붓으로 썼다는 오언시를 옮겨 적는다.
先生何日去(선생하일거) 선생은 어느 날에 다녀갔는지 後輩探景還(후배탐경환) 문생이 절경을 찾아 돌아오니 三月鵑花笑(삼월견화소) 삼월의 진달래 꽃 활짝 웃고 春風滿雲山(춘풍만운산) 춘풍은 운산에 가득하네.
태배해변에서 이태백의 오언시를 찾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큰 바위에 붓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곳에 세워둔 오언시와 동상을 태배로 옮겨 세우는 것이 옳지 않을까.
태안해변길과 구름포해수욕장으로 갈라서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표지판을 따라 내려가면 구름포해수욕장이 나온다.
구름포해수욕장은 모래해변과 좌우의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지형이 반달처럼 둥글게 구부러진 아랫부분을 ‘구름’이라고 부르는데서 연유하여 ‘구름미(雲山尾) 또는 구리미’라고 불렀다. 이후 운산(雲山)을 운포(雲浦)로 부르다 1996년부터 구름포구로 바꾸어 부르면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구름포해수욕장으로 내려가지 않고 의항해수욕장 방면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화영섬이 보인다. 화영섬은 조선시대 안흥항으로 들어오던 중국사신이 풍랑으로 표류하다 이 섬에 상륙했다. 중국사신을 환영하였다는 뜻으로 ‘환영섬’으로 부르다 세월이 흘러 화영섬으로 변했다. 마을사람들은 ‘행섬’이라고 부른다.
화영섬에는 몇 해 전까지 역사극 드라마 세트장이 있었다. 흉물스럽게 변한 세트장을 철거한 뒤로 예전 섬 모습을 다시 찾았다.
화영섬과 의항해수욕장 사이에 독살이 있다. 독살이란 해안에 돌로 담을 쌓아 밀물에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돌담에 갇히게 되면 맨손으로 잡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을 말한다. 지금은 학생들의 전통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의항해수욕장은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다. 5년 전 검은 기름으로 가득 덮였던 장면이 자주 언론에 보도되었던 해수욕장이다. 자원봉사의 기적을 실감할 수 있는 복구의 현장이기도 하다. 검은 모래의 흔적은 사라졌고, 흰 모래가 밀물과 썰물에 몸을 맡겨두고 일렁인다. 석양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2007. 12. 12.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 <2012. 10. 2.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 의항리(蟻項里)는 개미 목을 닮았다하여 개미목말이라 불렀다. 개미목말의 변형된 말로 개목이 되었다. 위성사진을 보면 갯벌을 매립하기 전 마을입구가 개미 목을 닮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리포로 이어지는 32번국도 송현 삼거리 도로표지판에는 지금도 개목항으로 표기하고 있다.
다시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마을 안길은 아직 포장되지 않았다. 마을의 발전을 원하면서도 도로가 포장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가진 이의 배려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울타리를 따라 나팔꽃이 반기고, 쭈꾸미 잡이에 쓰일 고둥껍질은 출항을 기다린다. 태풍 볼라벤에 시달린 벚나무는 꽃을 피웠다. 가을이 봄이고, 봄이 가을이 되어버려 혼란스럽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포구에 가득 찼던 바닷물은 갯골 아래로 빠졌다. 마을주민들은 바지락 캐러 갯벌로 갔다. 집집마다 배정된 60Kg의 바지락을 캐기 위해 손길이 바쁘다.
올해는 더 이상 바지락을 채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지락 작업이 끝났으니 가을 들녘에서 추수로 바쁜 날들을 보낼 것이다. 겨울이 오면 허리 펴고 쉴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세 시간동안 검은 기름 걷힌 바라길(태배길) 구간을 천천히 걸었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연에 동화되었고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자연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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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행복찾아 떠난 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고향청솔
첫댓글 태안의 기름 유출사고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죠...
태안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 땀흘린 봉사자 여려분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어려웠을텐데...모두에게 박수를...
지금의 태안은 너무 보기 좋은거 같아요.
오래 걸릴거라는 많은 우려와는 반대로 해산물 축제도 다시 다양해 지고...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된거 같아 흐뭇~~저도 올 겨울에는 태안쪽으로 함 여행 할까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