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믿음의 방식을 포기하고 인간의 계산을 도입할 때 (찬 359)
1. 본문은 사라(사래)가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것은 본문의 줄거리를 관통하는 긴장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약속하셨지만(15:4) 그 약속이 성취될 가능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희박해지자, 사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처음 가나안 땅에 왔을 때 기근이 들어서 애굽으로 가야 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은 자식을 약속하셨지만 자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애굽에 갔을 때 많은 소유를 얻었고 그 중에는 바로에게서 얻은 노비도 있었다. 하갈은 그 때 얻은 종이었을 것이다. 창세기 12장의 실패가 창세기 16장의 실패와 연결되는 점을 주목하라. 사라가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얻고자 한 것은 ...고대 근동의 법률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한편 고상한 인간의 노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주권에 대한 불신앙일 뿐이다. 그 불신앙의 모습은 사라가 자신이 아들을 얻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데서 볼 수 있다(2). 이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은 에덴 동산 선악과 앞에 선 아담과 같이 철저하게 수동적이다. 사라의 계획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기억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했고 하갈은 임신하게 되었다. 임신한 하갈은 사라를 멸시했다(4). ‘멸시했다’는 말은 창 12:3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이라고 하실 때 사용된 단어와 같다. 가볍게 보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성취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사라는 이제 다시 남편을 원망한다(5). 아브라함은 역시 수동적이다. 사라는 남편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학대하였다(6). ‘학대하다’라는 단어 역시 바로 앞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라고 할 때 쓰인 단어와 같다(15:13). 하갈은 도망하였다.
2. 일단 믿음의 방법을 포기하고 인간의 계산을 도입하면 그 사람, 가정, 교회는 오래도록 곤경의 원인과 결과라는 사슬에 매여서 고통을 겪게 된다.
인내의 기다림이 인간의 계산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면, 본능적인 충동들과 올바른 행동들이 서로 얽히게 된다. 이 과정이 일단 진행되기 시작하면 갈등으로 치닫게 되기에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가 바로 이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3. 이야기의 뒷부분은 하갈과 그녀를 만나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샘물 곁에서 하갈을 만나주셨다. 그리고 그녀와 낳게 될 아들을 축복하셨다. 이스마엘이란 이름을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이다. 이 이름은 고대 세계에서 매우 인기 있는 이름이었다. 하나님은 하갈의 고통을 아셨고 들으셨다. 그래서 하갈은 하나님을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다(13). 그리고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다. 이는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물’이란 뜻이다.
하갈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아브라함에게로 다시 돌아가는데, 돌아가서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다 고했을 것이다. 후에 하갈이 아이를 낳았을 때,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란 이름을 지어준 것에서 알 수 있다(15). 하나님께서 사라의 학대를 못 이겨 도망한 하갈을 들으셨다는 것을 이스마엘을 보고 부를 때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기억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이것은 자신들의 불신앙을 기억하게 하는 고통이고 부끄러움이 되었을 것이다.
4. 아브라함과 사라가 배워야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도 들으신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처지와 형편을 아셨던 것처럼, 그들의 처지도 아신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렇다면 사라와 아브라함은 한나가 그랬듯이, 또 그들의 아들 이삭이 후일 아내 리브가가 아들을 낳지 못할 때 기도했듯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어야 했다. 그러나 사라는 부르짖는 대신 인간의 계산을 취했다.
성도들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인간적인 계산 보다는 살피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은 살피시고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이 오래 참지 못하고 걱정에 빠져서 자기를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자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시는 분께 부르짖는 대신 경솔한 계획과 계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 것을 본문은 우리에게 교훈한다. 하나님은 인내의 소망과 약속들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의 뜨거운 기도를 요구하신다.
5.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더딜지라도 인간적 계산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불신앙의 자리에서 서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주시옵소서.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리에 서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