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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교수(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우리는 흔히 창작의 세계를 끊임없는 몰입과 노력으로 이해한다. 밤을 새우고 아이디어를 쥐어짜며, 한 줄의 문장이나 한 획의 그림을 위해 온 시간을 집중하는 모습이 예술가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작품을 완성하기 전, 반드시 행하는 공통된 습관이 있다. 바로 ‘거리두기’, 즉 의도적 ‘잠시 멈춤’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행동은 창작뿐 아니라 모든 창의적·지적 활동에서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된다. 심리학자 그레이엄 월러스(Graham Wallas)가 1926년 저서 ‘생각의 기술(The Art of Thought)’에서 제시한 창작의 4단계 모델, 즉 준비·숙고·통찰·검증에서 숙고(Incubation) 단계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를 위한 필수 과정으로 여겨진다.
연구에 따르면,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품에서 일정 시간 떨어져 있는 ‘거리두기’는 새로운 통찰을 촉진하고 문제 해결과 작품 개선에도 실질적 도움을 준다. 현대 창의성 연구 역시 이러한 경향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이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창작과 혁신을 요구받는 모든 영역에서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전략임을 시사한다.
거리두기의 심리학적 근거
거리두기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심리학 연구에서는 이를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능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창작 과정에서 작가는 수많은 선택과 판단을 반복한다. 색을 칠할지, 글의 순서를 바꿀지, 음을 올릴지 내릴지 선택하는 순간마다 에너지가 소모된다. 거리를 두고 잠시 작품에서 물러나면, 뇌는 자연스럽게 정보를 재정리하고 새로운 연관성을 발견한다. 마치 정리되지 않은 서류 더미에서 중요한 문서를 쉽게 발견하듯, 멀리서 바라보는 시점이 창의적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술가와 음악가, 작가들 중 상당수가 완성 직전, 일정 기간 작품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진다. 예를 들어, 화가들은 한두 주일 동안 그림 앞에서 떨어져 관찰하거나, 음악가들은 녹음 직후 일정 기간 듣기를 멈춘 뒤 다시 청취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약점과 강점이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다. 뇌는 ‘새로운 눈’으로 작품을 재평가하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미묘한 결점을 포착한다.
이는 단순히 예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자, 기업가, 디자이너, 개발자 등, 창의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직종에서도, 일정 기간 작업을 멈추고 다른 활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면, 문제 해결과 아이디어 생성 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노력-회복 모형(Effort-Recovery Model, Meijman & Mulder, 1998)’이라고 부른다. 일정 시간 집중한 뒤 회복과 재정비의 단계를 거치면, 이후의 작업에서 더 높은 효율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작의 리듬과 거리두기
우리는 흔히 생산성과 창의성을 단순히 ‘속도’로 판단한다. 하지만, 실제로 효율적인 창작은 집중과 휴식의 주기적 조화, 즉 리듬에서 나온다. 집중만 하고 쉬지 않으면, 피로가 쌓이고 판단의 질과 아이디어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 반대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의도적 거리두기를 하면, 다음 작업에서 더 높은 정밀도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포모도로 기법(Pomodoro Technique)은 25-50분 집중 후 5-10분 휴식을 반복하고 일정 주기마다 긴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단순한 시간 관리 도구를 넘어 집중과 회복의 리듬을 조절하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비록, 생체리듬을 기반으로 설계된 기법은 아니지만, 뇌의 피로 누적을 줄이고 주의 전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인지심리학적 메커니즘과 잘 맞아떨어진다. 실제 연구에서도 이러한 주기적 집중–휴식 구조가 창의력, 의사결정 능력, 기억력 향상에 긍정적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술가의 거리두기와 포모도로 기법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지속적 몰입’보다는 ‘리듬과 쉼’을 통해 높은 완성도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효율 향상이 아니라, 장기적 성과와 창작 품질을 지탱하는 근본 원리다.
삶 속 거리두기와 자기관리
거리두기는 작품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삶 자체도, 끊임없이 달리기만 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보지 못한 채 달리기만 하는 존재가 된다. 하루를 마친 뒤, 잠시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 휴대폰을 끄고 외부 자극을 차단하는 행동, 한 달에 하루 스스로를 ‘비우는 날’로 삼는 습관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자기관리와 자기 성장의 핵심 도구가 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작업에서 물러나 스트레스를 낮추고 마음을 정리하는 ‘심리적 거리두기’는 장기적으로 창의성, 의사결정 능력, 집중력을 높인다. 다양한 심리·인지 연구들은 일정 기간 작업을 중단하고 다른 활동을 할 때, 문제 해결 속도와 아이디어의 질이 향상된다는 점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실제로, 직장인, 지식노동자, 창업가들 역시 프로젝트가 막힐 때,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산책이나 취미 활동을 한 뒤 돌아오면, 해결책을 더 빠르게 찾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작은 쉼의 습관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자기관리의 품격’을 만드는 열쇠다. 쉬는 동안 단순히 피로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고 선택을 검토하며, 다음 행동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창작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의도적 거리두기는 ‘완성’을 향한 필수 조건이다.
현대 사회에서 거리두기의 실천 전략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연결과 속도를 요구한다. 스마트폰, SNS, 이메일, 업무 메시지, 미팅. 하루를 돌아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입력과 반응 속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서는 창의성과 깊이 있는 사고가 발생하기 어렵다. 따라서, 작은 ‘거리두기’ 전략이 필요하다.
하루 단위: 하루를 마친 뒤 15-30분 걷기, 명상, 독서 등으로 마음 정리
주간 단위: 주 1회,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나 취미 활동으로 외부 자극 최소화
월간 단위: 한 달에 하루, 혹은 반나절 정도 ‘비움의 날’을 갖고 계획·업무에서 완전히 떨어지기
이런 반복적이고 의도적인 실천은 집중과 휴식의 리듬을 몸에 학습시키고 장기적 업무 효율과 창의적 성과를 극대화한다. 예술가가 작품과 일정 거리를 두고 완성도를 높이는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다.
‘계속 움직이는 것’이 곧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완성하기 전 잠시 멈추듯, 우리도 삶과 일에서 의도적 거리두기와 쉼을 실천해야 한다. 집중과 쉼, 속도와 리듬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 창의성과 성취는 현실로 나타난다.
작품을 완성하는 예술가의 방식은 곧 현대인의 자기관리, 업무 효율, 삶의 완성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완성은 ‘멈춤’ 속에서 온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결과와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임을 기억해야 한다.
김성수(現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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