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9]‘필사筆寫’라는 것
한 문장가 선배 덕분에 ‘필사筆寫’라는 것을 해봤다. 필사는 책이나 문서, 좋은 글 등을 베껴 쓰는 것. 허겁지겁 구입한 『김택근의 묵언』에 「필사노트」 별책부록이 포함돼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기발하고 생각이 가상했다. 요즘같은 세상에 아무리 명문名文이라해도 누가 손글씨를 쓴단 말인가? 그런데, 글들이 하도 아름답고 좋아서 생전에 안해본 일을 해보고 싶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나 『혼불』을 통째로 원고지에 옮겨 적은 ‘필사본’을 보면서 ‘열혈독자’들의 정성에 혀를 내두른 적은 있었으나, 적은 분량이나마 저자의 수필 3편을 직접 필사해보니 느낌이 남달랐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글씨를 못써도 너무 못쓴다’는 것.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같다. 졸필拙筆이고 악필惡筆, 난필亂筆이었다. 내가 썼는데도 읽기가 어렵다. 언제 제대로 볼펜이나 연필로 글을 써본 적이 있던가. 요즘 초중등생들은 글씨 쓰는 수업시간이 있는지 궁금했다. ‘라때’(꼰대들이 흔히 말하는 ‘우리 때는’의 준말이라고 한다)는 습자지에 펜으로 글씨를 쓰는 수업이 있었는데. 몇 줄이나마 써본 게 몇 년만일까. 그러니 이름 석 자 아니고는 잘 쓸 수가 없다. 아니, 자기 이름조차 삐뚤빼뚤 잘 못쓰는 사람도 있다. 컴퓨터 자판이 있고, 바로 그 옆에 프린터가 있는데, 글씨를 쓸 일이 어디 있는가. 요즘 아이들은 연애를 할 때 편지 한 통도 쓰지 않을 것같다. 제사 지낼 때 지방도 출력해 붙인다고 한다.
그 다음 생각은, 이렇게 좋은 글은 글씨를 잘 쓰나 못쓰나, 한번쯤은 써보는 게 좋겠다는 것. 눈으로 읽든, 소리내어 읽든, 쓰면서 읽든 느낌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이든 쓰려고 하면, 일단 심호흡을 하게 된다. 마음이 차분해져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으나 경건敬虔해지는 기분이다. 호흡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명상冥想도 그럴 것이다. 글의 주제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 좋았다. 필사는 문학도들이 하는 소설이나 불멸의 고전인 『논어』나 『성경』만 하는 줄 알았다. 우리의 심금心襟을 울리는 좋은 시들을 필사해보는 것도 좋겠다. 앞으로는 아주 좋은 글들을 읽다가 베껴쓰고 싶으면 주저없이 필사노트를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그럴 경우가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저자 덕분에, 출판사 기획 덕분에 오랜만에 ‘손목운동’ 한번 잘 했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님은 『묵언』추천사에서 딱 이렇게 단언했다. “이 책은 필사 책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필사해야 할 책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김택근의 문장을 부럽게 훔쳐봤다. 읽고 또 읽었다. 베끼고 흉내냈다. 가슴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문장투성이다. 부럽게 훔쳐보고 감미롭게 전율했다” 그러니 어찌 김대중 대통령의 필사筆士였던 김택근의 글을 필사하지 않겠는가.
부기: 여담餘談이지만, 필사를 하면서 떠오른 오랜 기억이 최인호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이어령 박사와 같이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천상 작가였다. 투병 중에 쓴 마지막 작품 『낯 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으며, 그의 문학혼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소설과 수필 등을 손으로 썼다. 컴퓨터를 멀리 했다. 문호 조정래 선생이 그러하듯. 오죽했으면 오른손 검지 중간마디에 굵은 굉이가 박혔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천하의 악필이어서 어지간한 사람도 원고지에 쓴 몇 단어를 읽지 못한다는 거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의 연속이어서 그 자신도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한다.
1980년대 중반, 중앙일간지 D일보에 연재소설을 쓸 때이다. 그때는 납활자를 일일이 뽑아서 인쇄하는 시절, 조판組版부에 ‘최인호 원고 담당자’가 따로 있었다. 그분이 아니면 도무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난필, 악필이었기 때문. 그렇게 찍힌 ‘게라(교정지)’를 보는 전문 교열기자가 또 둘이 있었다. 그중의 한 명이 나. 여자 선배와 내가 교대로 읽거나 고치면서 교정校正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번은 작가가 편집국에 인사차 들렀는데, 우리에게 ‘어떻게 내 글씨를 알아보느냐’며 점심 한번 사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신문사 수장고에 작가의 육필원고가 보관돼 있을텐데, 지금도 보면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