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방편이 되어버린 습관이여.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단계에서 단계를 밟아 올라가면 최후의 벼랑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우울 氏의 이마에 시간의 장인이 새긴 굵게 팬 물결 주름들 무릎 접었다 펴는 동안 몸을 빠져나가는 검붉은 감정들 생각이 많은 얼굴을 기피하는 계단들 오르면서 우울 氏는 표정을 잃어간다
계단 오르며 나는 아직 세상 버리지 않는다 이 정직한, 한결같은 보폭은 언젠가 내 몸을 지상으로 인도할 것이다 계단처럼 단순하고 확실한 것이 어디 있으랴 계단 오르는 이들은 고개 들지 않는다 그것이 결코 발에 대한 불신 때문만은 아니다 목표는 언제나 우리를 조급하게 만든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희망은 또 한 번 뻔뻔한 얼굴로 검은 가래를 우리들의 수고 앞에 던질 것이다 그러나 계단을 오르며 나는 세상을 믿는다 그것은 계단을 걷는 자의 의무이기도 하므로
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투덜거리는 무릎 관절 이 이상 신호는 탄력 잃은 기관들의 이음새가 느슨해지고 녹 슬어간다는 징후이리라 누구는 칼슘 결핍에 운동부족이라 탓하고 혹자는 식습관을 고쳐라 처방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의 참다운 기원은 설운 생활에의 마음의 굴절에 있다는 것을 썩지 않는 기억은 유구하다 세상은 내게 없는 살림에 뻣뻣한 무릎이 문제였다고 말 한다 내키지 않은 일에 무릎 꿇을 때마다 여린 자존의 살갗 뚫고 나오는 굴욕의 탁한 피 하지만 범사가 그러하듯이 처음이 어렵고 힘들 뿐 거듭되는 행위가 이력과 습관을 만들고 수모도 겪다 보면 수치가 아닌 날이 오게 된다 굴욕은 변명을 낳고 변명이 합리를 낳고 마침내는 합리로 분식한 타성의 진리를 일상의 옷으로 껴입고 사는 날이 도래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신하고 제가하는 동안 마음 연골이 닳아왔던 것 생의 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무릎은 뼈아픈 질책을 던져온다 지불한 수고에 대한 값 너무 헐하지 않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