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8일(주)
* 시작 기도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앎이라.
주님...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를 너무 오용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는 물러갈지어다.’ 하면서 대적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적 기도는 진짜 마귀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자신의 영이 상할 뿐입니다.
따라서 이런 비존재 세력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시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십자가형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얼마든지 자신의 힘을 절대화하여 그런 세력들을 대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모든 상황을 수용하시고 결국 죽음의 잔을 받으셨습니다(히 5:7-8).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오늘도 공동체로 드리는 각 처소마다의 예배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민 24:10-25
제목 : 한 별이 야곱에게서,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10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11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12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신들에게 내가 말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13 가령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에 내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20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21 또 겐 족속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네 거처가 견고하고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22 그러나 가인이 쇠약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23 또 예언하여 이르기를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24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힐 것이나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메소포타미아의 점술가인 발람의 마지막 예언이다.
앞선 세 번의 예언과 오늘 본문의 마지막 예언의 다른 점이 있다.
앞서 행한 예언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발락의 요구에 응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받은 예언이라면, 마지막 예언은 발락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발람을 통해 주시는 예언이다.
내용면에서도 보면 앞선 세 번의 예언은 이스라엘을 저주가 아닌 축복하는 내용이다.
오늘 본문은 축복의 차원을 넘어서 모압과 에돔 그리고 아말렉 등 이스라엘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가나안 주변 민족들의 장래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와 뜻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로 보면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니라 아주 먼 훗날 일어날 일이다.
야곱에서 한 별이 나오고 이스라엘에서 한 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함으로써 이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17-19).
물론 발람의 예언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장차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서 주변의 국가들을 정복할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람은 자신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메시야가 장차 오실 것에 대한 예언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발람이 장차 오실 메시야를 ‘한 별과 한 규’로 묘사한 것이다.
한 별은 오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의 성격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항해를 할 때 방향을 잃을 일이 거의 없다.
그 이유는 항해를 하는 모든 선박들마다 나침반과 같은 방향타가 전산화되어서 정확하게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이 기록될 당시나 고대 근동에서는 항해자나 여행자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 바로 별을 보는 것이었다.
그것도 항상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는 북극성이 모든 항해자들의 지표가 되었다.
이와 같이 발람은 별의 특성을 두고 장차 오실 메시야를 ‘한 별’로 묘사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시는 인생의 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오실 메시야를 ‘한 규’로 표현하고 있다.
규는 왕들이 손에 드는 작은 지팡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은 왕의 절대적인 권위와 영광을 상징한다.
따라서 메시야를 한 규로 표현한 것은 오실 그리스도가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왕이시며 그에게 이런 권능과 영광이 있음을 묘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메소포타미아의 점술가이지만 그의 입을 주권적으로 사용하셔서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도록 하셨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나라들을 멸하실 것이다.
모압 에돔 아말렉 그리고 강대국인 앗수르나 이들을 공격하는 깃딤의 민족들은 어느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묘사한다.
그 나라들이 아무리 강하고 힘이 세다 할지라도 결국 한 별로 오시는 메시야가 그들을 심판하시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당연히 심판 받고 죽어야 할 죄악 덩어리요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창세전부터 택하시고 예정하셨으며 부르셔서 영생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딛 1:2).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주님은 영생 얻은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인 태어난 생명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는 내가 지금 살아가는 여기서부터 영생을 누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영생을 얻은 자요 하나님의 자녀의 본분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영생의 의미도 모르고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도 전혀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왔었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주셨고 이 복음으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날마다 하나님과 말씀으로 교제와 사귐을 갖는다.
그 안에 주님이 주시는 영광이 임한다.
그 영광은 곧 나의 영광이다.
이스라엘의 주변부에 있던 내가 이제는 진짜 이스라엘 곧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이다(갈 3:7-9).
이것은 나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만물 안에서 무언가 이루려고 했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던 나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었다.
이제는 내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상황을 초월하여 나를 인도하시는 한 별 되신 주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한다.
나는 나의 왕 되신 주님의 지팡이, 곧 말씀의 지팡이를 잡고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이스라엘의 주변부만 맴도는 그런 주변부 인생이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 나를 주님은 어떻게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여 당신의 이스라엘로 삼으셨나요?
나의 우둔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가득한 주님으로 인하여 믿어지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믿으려 함이 아니라 주님의 강권적인 섭리로 믿어지는 것이 은혜인줄 아나이다.
발람과 같은 자도 쓰시는 주님께서 내 안에 주님만 담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니 이런 나를 온전히 사용하시어 주의 말씀을 날마다 향유하며 그것으로 참 기쁨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발람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금은보화와 같은 존재물이 아니라 오직 생명의 양식인 주의 말씀의 지팡이만 붙잡고 한 별을 바라보며 가게 하소서.
하루하루가 날마다 주의 날이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