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중요한 참견
- 문하 정영인(文霞 鄭永仁) 수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참견을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들의 매우 중요한 참견을 날마다 입에 닳도록 한다. “얘야, 차 조심해라, 밥 굶지 마라, 잠을 잘 자라 ….”
초등학생을 둔 한국 엄마들이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하는 매우 중요한 참견 중에 하나가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이지만 외국 엄마들이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하는 매우 중요한 참견 중에 하나가 “선생님께 질문 많이 하거라” 고 한다.
시골 할머니들은 길을 가다가 호박줄기가 딴 곳으로 벋어 나가면 호박줄기 방향을 돌려놓고 간다. 그 할머니에겐 매우 중요한 참견이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닌데도 내일처럼 내 일처럼 참견하는 것이 아름다운 중요한 참견이다. 호박줄기가 길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나 있는 것을 방향을 바꾸어 쓸데없이 옮겨놓는 것은 살아가는 진정한 참견에 속한다.
참견이란 쓸데없이 끼어들어 감 내놓으랴 배 놓으랴 하는 것이다. 자신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에 공연이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다. 마치 장기꾼들에게 훈수 두는 것처럼….
나이 든 분들은 참견하기를 좋아한다. 이건 한국인의 특유한 정서라는 ‘정(情)’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딱한 사정에 처해있는 남을 도우려는 마음은 따뜻한 중요한 참견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중요한 참견을 꼰대짓이라고 궁시렁거린다. 혹가다 중요한 참견을 하다가 낭패를 보거나 뒤통수를 맞는 경우도 많다. 내가 아는 분이 저녁에 골목에서 담배 피는 중학생 정도 아이들에게 담배피우지 말라고 중요한 참견을 했다. 그 녀석들은 뒤따라와 벽돌로 뒤통수를 후려쳐 한동안 고생을 했다. 그래서 중요한 참견을 할 것이 눈을 찔끈 감는 것이 상수라고 한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는 학생의 훈육을 위해 중요한 참견을 해애 하는데 손을 놓다시피해야 한다고 한다. 학부모가 웬만하면 아동인권학대라고 걸고넘어지기 때문이다. 그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해서도 국민은 중요한 참견을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선거는 국민의 중요한 참견에 속한다. 그 중요한 참견을 잘못해서 나라가 결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사회는 점점 중요한 참견이 사라져 간다.
언덕 비탈길을 내려가던 고등학생이 탄 자전거가 넘어졌다. 학생은 나동그라졌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그 학생을 일으켜 세우고 옷의 먼지를 털어주면서 “조심해서 타야지” 하면서 중요한 참견을 한다. 밭길을 지나가던 어르신이 남의 밭에 느닷없이 들어가 환삼덩굴을 훑어 밭둑에 버린다.
어찌 보면 중요한 참견은 소소한 일이다. 그 속에는 정(情)이 배어 있다. 어느 과자회사의 초코파이 이름이 ‘情쵸코파이’다. 정다운 사람끼리 나누어 먹으라는 뜻일 것이다. 이제는 그 제품이 세계적인 과자가 되었으니 참견은 정일 것이다.
논두렁에서 일밥을 먹던 사람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부른다. “여보시오, 한 술 뜨고 가시구려.
잘못하면 잔소리라고 생각하는 세상이라 매우 중요한 참견도 저물어 간다. 매우 중요한 참견을 AI가 알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