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누스 푸디카*
-박연진-
옛날, 옛날, 옛날
(뭐든지 세번을 부르면 내 앞에 와 있는 느낌)
어둠을 반으로 가르면
그게 내 일곱살 때 음부 모양
정확하고 아름다운 반달이 양쪽에 기대어 있고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지
아름다운 틈이었으니까
연필을 물고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다
등허리를 쩍, 소리나게 맞았고
목구멍에 연필이 박혀 죽을 뻔했지 여러번
살아남은 연필끝에서 죽은 지렁이들이 튀어나와
연기처럼 흐르다 박혔고
그렇게 글자를 배웠지
꿈, 사랑, 희망은 내가 외운 표음문자
습기, 죄의식, 겨우 되찾은 목소리, 가느다란 시는
내가 체득한 시간의 성격
나는 종종 큰 보자기에 싸여 버려졌고
쉽게 들통났고,
맹랑했지
(끝내 버려지는 데 실패했으니까)
어느 여름 옥상에서 어떤 감정을 알게 됐는데
떠난 사람의 길고, 축축한, 잠옷이
펄럭이는 걸 보았지
사랑이 길어져 극단까지 밀고 가다
견디지 못하면
지구 밖으로 밀려나는구나
피가 솟구치다 한꺼번에
증발하는구나
후에 책상 위에서 하는 몽정이 시,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엔 그의 얼굴을 감싼 채 그늘로 밀려나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일곱살 옥상에서 본 펄럭이는 잠옷만큼은
무엇도 더 슬프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모든 면에서 가난해졌다
*Venus Pudika. 비너스상이 취하고 있는 정숙한
자세를 뜻하는 미술용어. 한 손으로는 가슴을,
다른 손으로는 음부를 가리는 자세를 뜻함.
첫댓글 얼굴붉어지는 단어하나에 꽂혀
뭔 댓글을 달까? 망설여집니다.ㅋ
다행히(?) 옮겨온 시군요. ^^
詩語는 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어느 분의 말이 생각납니다.
폭력적이란게 뭔 뜻인가 했는데
저렇게 사람을 당황시키는 것이었군요.
암튼 색다르지만
좋은시 감상 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시어가 폭력적이어야 할까요? ㅎ
하긴 저도 그런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언어에 폭력을 가한 것,
폭력을 당한 언어.
그것이 시어가 된다는...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균희 폭력을 가해야 한다..를
어설프게 알아듣고
폭력적이라고 말했나 봅니다. ^^
위에
옮긴글이라는 표제를 보았어도,
읽어 내려가면서
균희님의 시라고
철썩 같이 믿었습니다.
잘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 시에 함축된 언어가
참 깊구나.. 하면서
읽었습니다.
균희님은 이렇게 내면의
성숙을 표현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시는 잘 모르지만,
상징성, 비유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무한한 생각의 깊이를
함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존경하는 수수님,
제가 수수님을 존경하는 이유를
설마 모른다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저도 수수님만큼의 연륜을
갖게 된다면
과연, 현재 수수님께서 지니고 계시는
그 감각을 수용할 수 있을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수수님,
저는 저 시인처럼
맹랑할 수가 없어서
대담할 수가 없어서
도대체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일찌기 포기 아닌 포기를...
그래도
저 시인의 시를
제가 쓴 것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으로는
저보다 더 한 글도 써보고 싶은데
감히 용기가 나질 않아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균희
오모나..
균희님의 답글은
충격 그 자체 입니다.
어떻게 그런 심오한 답변으로
놀라게 하시옵니까..
어제,
동네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러 갔는데.
서예를 하는 친구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칭 모든 예술가는
자기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성숙해진 다음에
발표할꺼야 하는 것으로
미루어 놓는다면,
그 성숙은 계속 늦어질 것이다.
작품에 대한 만족은
아마도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균희
사람이
누구나,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기를
소원 하듯이,
예술가는
공감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나의 작품의 첫걸음이
된다고 믿으니까요..
@수 수 수수님,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메어 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당췌 이해를 못 하겠나이다
그걸 뭐 이해하시려고 하십니까?
골드훅님께선
너무나도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계신 것을요.
늘 응원합니다 ~^^
깊은 의미는 몰라도
그냥 편하게 읽고 갑니다.
시어는 항상 난해해요ㅡ ㅎㅎㅎ
편하게 읽으셔야 합니다.
암만요, 그러셔야지요~^^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한 시인닝도도 대닫하지만
님도 그에 못지 않군요
님은 아마도 더 직설적으로 음과 양을 표현하실 것 같은데
어디 한 번 기대해 볼까요? ㅎㅎ
아아 아닙니다
저는 그럴만한 자질이...
제가 글을 마치는 순간
밤에 쓴 편지가 되어 버려
차마 저도 읽지 못하고
그냥 흘려버리는 걸요~^^
"사랑이 길어져 극단까지 밀고 가다
견디지 못하면
지구 밖으로 밀려나는구나
피가 솟구치다 한꺼번에
증발하는구나"
언제 이런 사랑을 했었나 ?
서른에 이미 죽은 영혼이었거늘 .....
엄살이 심하십니다 오선배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인과 배틀이라도 하실 작정이신지...
아직 오선배님은
열정이 활화산 같으심을,
제가 알고, 선배님이 알고,
화솔방이 모두 알고 있는 걸요~^^
@균희 껍데기 포장술이 뛰어나니 .... 그러지 못했다면 쭈글이로 살아야 한다네 .
운명이지요 ~~~☕️
@오분전
@균희 저도 규니누이의 오늘과 내일에 사랑이라는 응원 보냅니다 ~
사랑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인데..
시인님이 너무 조숙하십니다...
저 박연진 시인이 장석주 시인의 부인 됩니다.
두 분 나이차가 25세로 유명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