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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寫經 : 제751호-제757호) 1984.05.30 지정
제751호 :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정원본<권34>(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貞元本
<卷三十四>) 호림박물관.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당나라의 반야(三臟般若)가 번역한『화엄경』정원본 40권 가운데 권34에 해당한다. 검푸른 빛이 도는 종이에 은색 글씨로 불경의 내용을 옮겨 적은 것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세로 30.6㎝, 가로 805.7㎝이다. 책을 지탱하고 있는 막대기 모양의 축(軸)에는 꽃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금칠이 되어있다.
금색과 은색의 꽃무늬가 장식된 표지에는 4각의 두 줄 안에 금색으로 제목이 적혀 있고, 제목 아래에는 정원본임을 나타내는 ‘貞(정)’자가 적혀 있다. 책의 맨 앞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다.
이 화엄경 정원본은 권31과 권34가 전해지고 있는데, 권31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고려 충숙왕 복위 6년(1337) 최안도의 부인 구씨(具氏)가 내세에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제752호 :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정원본<권34>(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貞元本<卷34>) 호림박물관
이 책은 당나라 반야(般若)가 번역한『화엄경』정원본 40권 가운데 권34에 해당하며,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부처의 공덕을 얻기 위해 닦아야 할 10가지 계율을 설법한 보현행원품의 내용이 들어있다. 검푸른 종이에 금가루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으며,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고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4㎝, 가로 11.5㎝이다.
권의 첫머리에는 고려 충숙왕 복위 3년(1334)에 원나라의 안새한이 부모의 훌륭한 가르침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간행기록이 있다. 이어 설법한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으며, 그 뒤에는 본문이 역시 금색으로 쓰여져 있다. 개인의 뜻에 의해 만든 것이기는 하나 그 품격이 정교하고, 고려시대 불경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제753호 : 상지금니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권상·하>(橡紙金泥大方廣圓覺修多羅了
義經<卷上·下>) 호림박물관
대방광불원각수다라요의경은 줄여서 ‘원각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우리나라 승려들의 교과과목으로 채택되어 불교 수행의 길잡이 구실을 하는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의 지눌이 깊이 신봉하여 ‘요의경’이라고 한 뒤 크게 유행하였다.
이 책은 갈색 종이에 금색 글씨로 불경을 정성스럽게 옮겨 쓰고,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를 그려 화려하고 장엄하게 꾸민 것이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있는데, 권 상·하를 합쳐 한 권의 책으로 엮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26.5㎝, 가로 11.5㎝이다.
간행기록을 보면 고려 공민왕 6년(1357)에 최적과 김청 등이 계항(戒桁)의 명복을 빌기 위해 펴낸 것이다. 책 앞부분에는 신장상과 변상도가 금색으로 그려졌고, 본문에는 지공 스님의 무생계법문(無生戒法文)과 혜능(慧能)의 법보단경(法寶壇經)이 실려 있다.
글씨를 쓴 사람을 알 수 없으며 전체적인 솜씨가 떨어지지만, 고려시대 불경의 격식을 갖추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제754호 :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37>(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周本
<卷三十七>) 호림박물관
이 책은 당의 실차난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을 옮겨 적은 것인데, 그 가운데 권37의 일부분이 전해지고 있다. 검푸른 빛이 도는 종이에 금·은가루를 이용하여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고,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0.5㎝, 가로 15.2㎝이다.
금·은색의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표지에는 금색 글씨로 제목이 적혀있는데, 제목 끝에 ‘주(周)’자가 있어서 화엄경 주본을 옮겨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의 첫머리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있고, 이어서 불경의 내용이 금색 테두리 안에 은색 글씨로 적혀있다. 당시의 기록이 없어서 만들어진 연대와 만든 사람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불경의 격식과 기법을 잘 갖추고 있어서 14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제755호 :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5,6>(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周本
<卷五,六>) 호림박물관
이 책은 당의 실차난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가운데 권5와 권6의 내용을 옮겨 적은 것으로, 검푸른 빛이 도는 종이에 은가루를 이용해 글씨를 썼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1㎝, 가로 10.5㎝이다.
표지에는 화려한 꽃무늬와 제목이 금색으로 처리되었고, 권5의 첫머리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의 가는 선으로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본문은 금색 테두리 안에 은색 글씨로 정성들여 쓰여져 있다.
불경을 만든 경위를 적은 글이 없으나 표지, 변상도, 본문의 글씨 등이『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37(보물 제754호)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14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제756호 : 감지금니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7>
(紺紙金泥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권7>) 호림박물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또는 ‘능엄경’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속으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체득하여 힘을 갖는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으며, 스님들이 수련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한 능엄경 10권을 검푸른 빛이 도는 종이에 금색 글씨로 옮겨 쓴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것은 권7에 해당한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접었을 때 크기는 세로 81.4㎝, 가로 11.1㎝이다.
표지에는 제목과 화려한 꽃무늬가 있고 본문은 금색 글씨로 정성껏 쓰여 있으며, 책의 마지막 2절은 없어진 것을 다시 써서 보완하였다.
책의 간행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표지나 본문의 글씨체로 보아 14세기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757호 :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46>
(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周本<卷四十六>) 통도사
이 책은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가운데 권46으로,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의 전반부 내용이 들어 있다. 검푸른 빛이 도는 종이에 금색으로 정성껏 글씨를 써서 만든 것이며, 표지부분은 떨어져 나가 새로 붙여 놓은 것이다.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었으며, 펼쳤을 때의 크기는 세로 28.3㎝, 가로 758.2㎝이다.
권 앞부분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고, 본문의 내용이 금색글씨로 정성껏 쓰여져 있다. 변상도의 오른쪽 아랫부분이 약간 훼손되었으나 그밖의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종이의 질이나 그림과 글씨의 솜씨 등으로 미루어 14세기에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제758호 :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삼성출판박물관
당나라 승려 현각이 지은 선종(禪宗)의 지침서로 각 구절에 송나라 남명선사 법천이 그 뜻을 구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이 책은 고려 고종 26년(1239)에 최이(崔怡)가 이미 간행한 금속활자본을 견본으로 삼아 다시 새긴 것 중 하나가 전해진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크기는 세로 27.5㎝, 가로 16.6㎝이다.
책 머리부분에는 1077년에 오용천용(吳庸天用)이 지은 글이, 끝부분에는 1076년에 축황(祝況)이 판을 새길 때 지은 글이 실려 있다. 그 뒤에 최이가 선종에 있어 ‘증도가’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전해지지 않자 금속활자본을 거듭 새겨냄으로써 후대에 오래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글자에 닳은 곳이 있는 점으로 보아 판을 만들고 훨씬 지난 뒤인 고려 후기에 다시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글자의 배열이 고르지 않고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이미 새겨져 있던 글자를 모아 만든 인쇄판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글자의 크기가 일정치 않으면서도 모양이 바른 점 등을 통해 초기 금속활자본의 면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적어도 13세기 초에 인쇄한 것으로 생각되며, 고려시대 활자인쇄의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제759호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1∼10>(大佛頂如來密因修證
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一∼十>) 국립중앙박물관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석한 것을 조선 태종 1년(1401)에 태조의 명으로 간행한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권1∼10의 내용을 5권의 책으로 엮었으며, 크기는 세로 38.5㎝, 가로 22.9㎝이다.
책 끝에 있는 권근의 글을 통해서 목판을 새기는 작업에 대덕(大德) 명호(明昊)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으며, 윤모(尹某)가 총괄적인 책임을 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숭유억불책을 국시로 삼고 실천하던 당시에 태조의 명에 의해 불경이 간행되었다는 점이 주목되며, 능엄경 전체의 내용이 전하는 독자적인 판본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제760호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1>(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
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一>) 조병순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7.5㎝, 가로 23.8㎝이며 전 10권 중 권 제1이 전한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였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제761호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2,5>(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
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二,五>) 서울대학교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전 10권 중 권 제2와 권 제5가 2권의 책으로 전해진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고 찍어낸 것이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제762호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7∼8>(大佛頂如來密因修證
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七∼八>) 동국대학교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세로 37.5㎝, 가로 23.8㎝ 크기의 활자본으로, 전 10권 중 권7과 권8이 2권의 책으로 전해진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고 찍어낸 것이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제763호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7∼10>(大佛頂如來密因修證
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七∼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해설한 것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7㎝, 가로 24.6㎝이며 전 10권 중 권7∼10이 2권의 책으로 전해진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한 것이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제764호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2∼4,권6∼10>(大佛頂如來密
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二∼四,卷六∼十>) (재)아단문고
이 책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풀이한 것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세조 8년(1462)에 우리말로 번역하여 간행한 것이다. 간경도감은 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왕실에서 설치한 기구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처음 찍어낸 듯 인쇄상태가 좋으며, 권2-4, 권6-10을 각각 한권의 책으로 엮었고 크기는 세로 35.5㎝, 가로 21㎝이다. 처음에는 속지를 꿰맨 뒤 겉에다 두꺼운 표지를 감싼 포배장(包背裝)으로 만들었으나 나중에 겉표지까지 같이 꿰맨 선장(線裝)으로 바꾸었다. 표지에 쓰인 제목은『대불정수능엄경』으로 되어 있고, 권 제2, 3의 제목 밑부분 여백에는 교정을 했다는 도장이 찍혀있다.
간경도감에서 펴낸 최초의 능엄경으로, 편찬체재나 글자체 등이 뒤에 간행된 국역본의 규범이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제765호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
萬行首楞嚴經) 서울대.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나라의 계환(戒環)이 풀이한 능엄경을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새긴 국역본으로, 권5, 8, 9(3권 3책), 권1, 4, 4(3권 3책), 권2, 3, 6, 7, 10(5권 5책)의 11권 11책이다. 권5, 8, 9는 세조 8년(1462)에 간경도감에서 목판으로 찍어낸 국역본으로, 전체 10권 10책 중의 남아있는 3책이다. 권5의 책머리 아랫부분에 주홍색의 교정 도장이 찍혀 있다.
권1, 4, 4는 세조 8년(1462)에 간행한 간경도감판에서 다시 찍은 3책이며, 인쇄가 깨끗하지 못하고 종이도 조잡한 편이다. 권4에 찍혀 있는 학열(學悅)의 도장과 인쇄조건, 그리고 종이의 질 등으로 보아 인쇄시기는 성종대(재위 1470∼1494)일 것으로 추정된다.
권2, 3, 6, 7, 10은 세조 8년(1462)에 간행한 간경도감판에서 다시 찍은 5책이다. 판을 새기고 한참 뒤에 찍어낸 것이기 때문에 인쇄 및 종이의 질이 처음 찍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
(이 책들은 보물 제765-1호에서 765-3까지 구분.지정되어 있음)
제766호 : 묘법연화경<권4∼7>(妙法蓮華經<卷四∼七>) (재)아단문고
이 책은 세종 30년(1448)에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과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뜻을 같이하여 간행한 것으로, 현재 권4부터 권7까지 한 권의 책으로 묶은 부분이 남아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이며 크기는 세로 29.5㎝, 가로 17.8㎝이다. 권4의 첫머리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있고, 권7의 끝부분에는 안평대군이 책을 만든 경위를 적은 글이 있다.
글씨가 뛰어나고 목판의 새김이 정교할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의 명필가였던 안평대군의 글씨가 후대에 별로 남겨지지 않은 현실에서 그의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제767호 :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綠) 동국대학교
『몽산화상법어약록』은 법어(法語), 즉 부처님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적어놓은 것으로 승려들의 수행에 있어 길잡이 구실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되었다.
이 책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크기는 세로 30.5㎝, 가로 20.2㎝이며, 세조 13년(1467)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펴낸 것으로 보인다. 간경도감은 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왕실에서 설치한 기구이다.
원나라의 유명한 승려였던 몽산화상의 법어 가운데 고려의 보제존자(普濟尊者)가 필요한 대목만 가려 뽑고 토를 달아 놓았다. 이를 혜각존자 신미(信眉)가 한글로 풀어 썼는데, 언제 펴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세조 13년(1467)에 나온『목우자수심결』에 신미가 풀이한 법어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조선 전기에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불교서적 중의 하나로서, 불교사뿐만 아니라 초기 훈민정음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제768호 :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綠)
원나라의 유명한 승려였던 몽산화상의 법어 가운데 고려의 보제존자(普濟尊者)가 필요한 대목만 가려 뽑고 자신의 법어 1편을 덧붙여 묶은 책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신미(信眉)가 토를 달고 한글로 번역하여, 나무판에 새긴 후 닥종이에 찍어낸 것으로 크기는 세로 26.5㎝, 가로 17.1㎝이다.
몽산화상 덕이는 고려의 승려들과 교류가 많았었는데 특히 혜감국사 만항(萬恒), 보감국사 혼구(混丘)와 깊은 교류가 있었다. 그는 고려말이후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 그가 편집한『육조단경』과 법어는 중국의 승려가 지은 책 가운데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유통되었다. 간행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간행연도를 알 수 없으나,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진『목우자수심결』에 신미가 한글로 번역한 법어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조선 전기에 한글로 풀어 간행한 불교서적 중의 하나로서, 불교사 뿐만 아니라 초기 훈민정음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제769호 :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 책은 조선 혜각존자 신미가 토를 달고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맨 앞장의 제목에 ‘慧覺尊者信眉譯解(혜각존자신미역해)’라고 그의 이름이 적혀있다. 목판에 새긴 뒤 질이 좀 떨어지는 종이에 찍어낸 것으로, 가로 30.9㎝, 세로 22㎝의 크기이다.
책 끝에 있는 김수온이 쓴 발문(跋文:책의 끝에 내용의 대강과 그에 관련된 일을 간략하게 적은 글)에는 조선 성종 3년(1472)에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조 13년(1467)에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왕실에서 설치한 기구>에서 찍어낸 책에는 신미의 이름이 있으나 성종 3년(1472) 인수대비가 찍어낸 다른 책에는 그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 맨 앞장은 이전에 찍어낸 다른 책에서 떼다 붙였음을 알 수 있다.
종이의 질이 조금 떨어지고 찍어낸 시기가 다른 두 판본으로 꾸며진 책이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인쇄가 정교한 귀중본이다.
제770호 :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沁訣) 서울대학교
『수심결』은 호가 목우자인 보조국사 지눌이 쓴 선(禪)수행의 필독서로, 세속화된 불교이념의 폐단적인 현상에 대해서 선종과 교종의 대립적인 입장을 지양하고 인간의 참다운 모습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 책은『수심결』에 경복궁 비현합(丕顯閤)에서 토를 달고, 혜각국사 신미(信眉)가 한글로 번역하여 세조 13년(1467)에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간행한 것이다. 당대의 명필가인 안혜(安惠) 등이 정성들여 써서 목판에 새긴 후 닥종이에 찍은 것으로, 크기는 세로 23.1㎝, 가로 17㎝이다.
책 앞부분에는 신미가 번역한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몽산화상시중법어, 고담화상법어가 함께 묶여 있는데, 이는『수심결』과 함께 같은 해에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정성껏 쓴 판본으로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간경도감의 성격 및 초기 훈민정음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제771호 :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 서울대학교
당나라의 현장(玄奬)이 번역한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대해 법장(法藏)이 해설을 단 주석서이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은 줄여서 ‘반야심경’이라고 부르는데, 여러 종파에서 공통적으로 읽고 외우는 보편적인 경전이다.
이 책은『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에 송나라의 중희(仲希)가 자신이 지은 ‘현정기(顯正記)’를 붙여 다시 편찬한 것으로,『반야심경소현정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목판에 새긴 후 닥종이에 찍어낸 것으로, 세로 28.1㎝, 가로 19㎝의 크기이다.
책머리에는 중희가 지은 ‘현정기’의 서문이 있고, 책 끝에는 조선 세조 10년(1464) 효령대군과 한계희 등이 왕명을 받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간경도감은 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왕실에서 설치한 기구이다.
책 끝장의 일부를 도려냈으나 보관상태가 양호하고, 목판의 새김이 정교하며 인쇄상태가 좋은 점으로 보아 판을 새긴 뒤 처음 찍어낸 책으로 보인다.
제772호 : 금강경삼가해-권1,5(金剛經三家解-卷1,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 책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하고 당나라의 종밀·종경·기화가 풀이한『금강경삼가해』를 세종의 명으로 한글 번역을 시작하여 성종 13년(1482)에 완성하여 간행한 것이다. 글자를 하나하나 파고 고정된 틀에 끼워 찍어낸 활자본으로 권1과 권5가 각각 1책로 되어 있는데 크기는 세로 38.7㎝, 가로 25.3㎝이다.
본문의 큰 글씨는 정축자(丁丑字)로 쓰고, 풀이한 글은 중간자와 작은자로 을해자(乙亥字)를 사용하였다. 정축자는 세조 3년(1457)에 만들었는데 그 해의 간지를 따서 정축자라고 부르며, 을해자는 세조 1년(1445)에 강희안의 글씨를 바탕으로 만들었고 역시 그 해의 간지를 따서 을해자라 한다. 이 책은 불경의 간행을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계승사업으로 추진하였다는 점과 함께 한글의 표기형식이 혼용되어 있어 초기 훈민정음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제772-2호 : 금강경삼가해(권2-5) : 서울대학교규장각
제772-3호 : 금강경삼가해(권1) : 보림사
제772-4호: 금강경삼가해(권2) : 계명대학교
제774호 : 선종영가집<권상,하>(禪宗永嘉集<卷上,下>) 동국대학교
『선종영가집』은 당나라 영가 현각대사가 선을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것을 적은 글에, 송나라 행정(行靖)이 주를 달고 정원(淨源)이 수정하여 항목별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은『선종영가집』에 세조가 토를 달고 신미(信眉) 등이 한글로 번역한 상·하권 2책이다. 상권은 세조 10년(1464)에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목판에 새긴 후 볏짚과 닥나무 껍질을 섞어 만든 종이에 처음 찍어냈으며, 크기는 세로 33.1㎝, 가로 20.3㎝이다.
하권은 연산군 1년(1495)에 정현대비가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대대적으로 간행한 것 가운데 하나이며, 원각사에서 간경도감판을 가지고 다시 찍어낸 것으로, 크기는 세로 32.6㎝, 가로 21.2㎝이다.
책 끝부분에는 고승 학조(學祖)가 쓴 간행기록이 목활자로 찍혀있다. 이 목활자는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모든 경전에 똑같은 내용의 간행기록을 붙이기 위해 정교하게 만든 것으로 인경자(印經字)라고 부른다.
이 책은 인쇄가 정교하고 글자의 먹색에 윤이 나며, 종이의 질이 좋아 책의 품위가 돋보인다.
제775호 : 세소자금강반야바라밀경(細小字金剛般若波羅蜜經)
이 경전은 후진의 구마라습이 번역한 금강경을 목판에 새겨서 얇은 닥종이에 찍어낸 것이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가 세로 6.7㎝, 가로 5㎝로 소매속에 넣어가지고 다닐만큼 자그마한 책이다.
경전 뒤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고려 충선왕 3년(1311)에 승려 각원이 여러 비구와 불교신자들과 뜻을 같이하여 목판에 새기고, 고려 충숙왕 복위 8년(1339)에 강금강의 시주로 찍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외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고려시대 불교 신앙의 한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리움미술관 소장본, 제776호-789호)
제776호 : 환두대도(環頭大刀)
제777호 : 금동 자물쇠 일괄(金銅鎖金一括)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제 빗장 유물로 빗장 길이 26㎝, 문고리 길이 10.5㎝, 못 길이 4.9㎝의 크기이다.
금동 빗장 1점, 금동 문고리 1점, 금동 못 2점이 출토되었는데, 금동 빗장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도금도 잘 남아있다. 이처럼 금동 빗장과 문고리 등이 함께 출토된 예는 극히 드문 편으로, 탑과 부도에 새겨진 문짝 장식에서만 볼 수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문짝 형식을 새롭게 밝혀준 귀중한 자료이다. 빗장은 왼쪽 부분에서 분리 접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열쇠구멍도 왼쪽 옆에 뚫려 있다.
문고리는 둥글고 고리판 역시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못은 고리로 된 머리 부분과 짧은 목 아래로 박히는 뾰족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고리 전면에 장식된 무늬는 매우 유려하고 섬세하여 뛰어난 공예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제778호 :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향완(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香垸)
이 향완은 전면에 은입사되어 있고 크기는 높이 30.4㎝, 입지름 27.5㎝, 밑지름 22.3㎝이다. 은입사 기법은 청동의 표면에 홈을 파서 가는 은선을 넣어 무늬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러한 기법으로 장식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향완 및 금속기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향로 몸체에는 버드나무 아래에 물오리가 있는 포류수금문이 새겨 있다. 또한 연꽃무늬를 갖춘 위패형의 장식이 있고, 그 안에 5행 34자의 글이 입사 기법으로 새겼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 향완의 제작 시기를 알 수는 없다. 향로 받침대 위쪽에는 연꽃무늬가 있고, 나팔 모양의 받침대에는 덩굴무늬가 있으며, 바닥 부분에는 구름무늬가 새겨 있다.
포류수금문은 상감청자나 금속으로 된 정병류에서 주로 사용된 문양으로, 당시 만들어진 향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무늬로 이 향완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제779호 :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 높이 25.4cm의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그 위로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묶음이 솟아있다. 둥근 얼굴에는 눈·코·입 등이 날카롭게 표현되어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옷은 양 어깨에 두껍게 걸쳐 입고 있으며 U자형으로 넓게 드러난 가슴 안에는 속옷이 표현되었다. 양 다리에 표현된 옷주름은 U자형으로 흐르면서 다리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손가락을 편 채 밖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반대로 아래를 향하고 있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연꽃이 새겨진 8각이며, 하대에는 귀꽃이 높게 솟아 있다.
제780호 :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호암미술관에 있는 높이 28cm의 보살상으로으로 목의 일부는 수리하였고 오른손은 없어졌지만 조형미가 아름다운 금동보살상이다.
머리는 큼직하게 묶어 올렸고, 관(冠)의 일부와 그것을 끼운 자국이 남아있다.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 상체는 가슴이 두툼하고 허리가 잘록해져 조형성이 강조되었고, 하체는 길어 늘씬한 모습이다. 옷은 물결무늬를 이루고, 하체의 옷은 얇아서 두 다리의 윤곽이 뚜렷하며 긴 타원형의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인체 비례가 매우 시원스럽고 표정도 부드러운 7세기에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이다.